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번 읽었던 책을 다시 찾는 경우는 대략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는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때이고 두 번째는 화장실이 급한데 마땅히 읽을 거리가 없을 때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읽었던 책을 꺼낼 때는 느긋하게 살펴볼 수 있지만, 두 번째 경우는 괄약근에 힘을 주고 온몸을 비비꼬는 한계상황이 닥쳐도 책꽂이에서 재미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다시 읽기'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만한 일반적인 경우이고, 두 번째는 화장실에 갈 때 꼭 읽을거리를 손에 쥐고 가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에 한정된 경우이다. 책을 들고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변비와 치질에 걸리기 쉽다는 의사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정신 건강'과 '편안한 볼 일'을 위해 어쩔 수 없다.

이번에 헌책방에서 찾은 책으로 소개할 책은 1990년 1월부터 6월까지 박재동 씨의 한겨레 만평을 엮어 만든 '합당블루스'이다. 1992년 1월 30일 초판 발행본이니 나온 지는 벌써 10년이 다 되었다. 한번 주루룩 보고(만평이라 가능했다.) 책꽂이에 두었었는데 화장실이 급해 정말 온몸을 비비꼬다가 집어들었던 책이 바로 '합당 블루스'이다.

대학시절 박재동 씨의 한겨레 만평을 꼭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만평은 때때로 온몸에 전율을 느낄 만큼 강력한 것이었고, 한 컷의 만화가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만평이 나오기 위해서는 만평기자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박재동 씨는 책의 머리말에 그 고통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바쁘게 사는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1초'의 눈길을 더 끌기 위해 머리를 짰던 날들. 잘 되어 돌아갈 땐 얼마나 발걸음이 가벼웠고 잘 되지 못했을 땐 수십만 독자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언제나 마음은 쫓기고 일거리는 많아 생활은 바로 미친년 널뛰는 그것이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 생명을 갖게 된 한 컷의 만평을 화장실에서 본다는 것은 실례가 되겠지만 배변의 '쾌감'과 만평에서 건져올리는 '쾌감'은 야릇한 동질감을 갖는다. 책의 막판에 실린 황지우 시인의 '박재동 만화 아이콘, 분석'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쾌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 과민성 대장염에 즉효를 발생시키는 것은 만화다. 박재동을 보는 것(그렇다, 읽지 않고 본다)과 동시에, 막혔던 본노(분노의 오기, 초판 발행된 책에서 찾게 되는 오자는 또 다른 '쾌감'을 준다. '역시 편집자도 인간이다'라는...)의 똥이 빠지직 소리를 내며 염치 불구하고 쏟아지기 시작했으니까."

10년이 지난 '합당블루스'를 보면서 '권력에 대한 똥침 찌르기'의 쾌감과 배변의 쾌감을 동시에 느꼈을 뿐만 아니라, 불법, 탈법, 줄서기에 혈안이 된 정치꾼들과 고개를 치켜드는 '정계개편설'이란 것이 선거철만 되면 나타난다는 지고지순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박재동 씨의 만평을 신문에서 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한다. 단 하루의 생명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겨레 만평이 이렇게 책으로 엮어져 잠시 주인없이 헌책방의 신세를 지긴 했지만, 나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도 그의 만평을 사랑했던 나의 복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합당 블루스', 박재동 그림, 이론과 실천


합당 블루스

박재동, 이론과실천(199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