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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선 냄새가 난다. 누렇게 빛 바랜 페이지 페이지마다 22년 전의 세상 냄새가 난다. 1979년 '씨알의 소리'에는 내가 그리워하는 당신들의 냄새가 난다. 책이란 것이 모두 제각각의 냄새를 가지고 있겠지만, '씨알의 소리'에는 여느 책들과는 다른 고뇌와 생명의 냄새를 품고 있다.

"희망은 절망하는 사람만이 가집니다. 마치 반석에 이르지 않고는 산샘을 못얻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희망이 있다해서 웃고 없다해서 우는 사람, 한가한 사람입니다. 정말 살자는 마음이면 현실을 보고 절망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려고 애써보다가 팽개치고 종살이라고 하며 살아 가보자 하는 놈 산 놈이 아닙니다. 반항하다가 죽더라도 종살이는 못하겠다 하는 놈이 정말 산 놈이요, 산 놈이기 때문에 죽어도 삽니다. 산 생명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희망은 그런 사람과만 말할 수 있습니다. 생명 자체 안에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 다시 말하면 불멸의 생명을 믿어서만, 믿음 그 자체가 희망이요, 생명이란 말입니다."('씨알의 소리', 1979년 1월호, 27페이지)

함석헌 선생이 1월호에 '씨알의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다. 항상 현실에 안주하며, 고개를 숙이고, 눈에 생기를 잃은 채 살아가고 있기에 부끄럽다. 절망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은 당신들이 생명을 담보로 싸웠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씨알의 소리'를 알게 된 것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은 다음이었다. 함석헌 선생이 옮긴 '간디자서전 : 나의 진리실험이야기'를 처음 본 것이 93년이니 함석헌 선생과 책을 통해 만나게 된 것이 벌써 10년이다.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산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다시 그리워지는 함석헌 선생님' 등 함석헌 선생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선생의 뜻과는 상관없이 나만의 일방적인 구애가 시작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께서도 일면식도 없는 못난 제자 하나 둔 것'으로 생각하실 거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함석헌 선생이 살아 계셨다면 꼭 한번 찾아뵈었을 텐데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함석헌 선생을 '연모'하고 있던 터에 헌책방 사이트를 검색하다 찾은 '씨알의 소리'에 반가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른 책들이야 '함석헌 기념사업회'등 선생의 뜻을 기리는 목소리가 높아져 '함석헌 전집'등으로 재출간 되었지만, 잡지인 '씨알의 소리'는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주문하고 소포 꾸러미를 받을 때까지 기다림으로 지칠 정도였다.

빛 바랜 남색 표지로 제본되어 있는 1979년 11권의 '씨알의 소리'(4월과 5월은 창간기념 합본호)를 펼쳐 읽어 내려가던 그 기분은 글로 설명하기 힘들다. 남들은 그깟게 무어 그리 기쁜 일이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얼마 전 타계하신 참언론인 송건호 선생, 93년 진주교대 강연회 때 활짝 웃음을 짓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문익환 목사, '우리글 바로쓰기' '삶과 믿음의 교실'을 쓰신 이오덕 선생, 그리고 백기완 선생, 김동길 박사, 이기택 씨, 한완상 씨 등 (현재의 인물 평가는 접어두자) 당시 실천적 지식인들의 모습을 '씨알의 소리'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암울했던 시절 생명을 담보로 싸웠던 지식인들의 '희망'은 현재의 모순에 대해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내가 싸우는 것은 이기고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오, 믿고 믿음으로 붙잡아지는 '참에 대하여 증인'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고 "민중이 알아야 할 것은 숨기지 않고 보여주고자" 했던 '씨알의 소리'는 정간과 복간을 거듭하면서도 끈질긴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씨알의 소리'를 책꽂이에 둘 수 있다는 것은 나만의 기쁨이다. 그것도 뜻을 같이 했던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 옆자리에 말이다.

'씨알의 소리'는 바로 우리가 바라는 '참언론'을 말한다. 함석헌 선생이 '씨알의 소리' 창간호에 쓴 이 글이 가슴에 무겁게 얹힌다. 더 이상 글이 길어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집권자는 아무리 강해도 망하는 날이 올겁니다. 나라의 주인 씨알은 영원합니다. 그런데 그 짓을 하니 어찌 밉지 않겠습니까? 말은 죽을 수 없어 복종한다 하지만 그 소리 더 밉습니다. 죽기까지는 그만두고 배에 그름질 생각만 아니해도 충분히 버티어 나갈 수 있읍니다. 집권자에 꼬리 치지 않는 나도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는 정치 강도에 대해 데모를 할 것 아니라 이젠 신문을 향해 데모를 해야 한다고 했읍니다. 사실 국민이 생각이 있는 국민이면 누가 시키는 것 없이 불매 운동을 해서 신문이 몇 개 벌써 망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까진 시시한 소설이나, 음악회 운동회 쑈 따위를 가지고 민중을 속이려는 신문들! 그러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끼리 서로 씨알 속에 깊이 파고들어야만 합니다. 내가 몇해 전에 사상의 게릴라전을 해야 된다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씨알의 소리', 1970년 4월, '내가 왜 이 잡지를 내나'에서)

덧붙이는 글 | 글을 거의 다 써놓고 보니 계훈제 선생님을 기린 '흰 고무신' 출판 기념회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계훈제 선생님께서 '씨알의 소리' 남기셨던 글들도 있다지요. '흰 고무신'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사이트(http://www.ssialsori.net/)에 가면 '씨알의 소리'에 대한 좀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씨알의 소리

함석헌 지음, 함석헌선집 편집위원회 엮음, 한길사(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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