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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고 유홍준은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추사 김정희를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하지만 정말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도 없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
우리는 그동안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붓글씨를 잘 쓴 조선 시대의 위대한 서예가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홍준은 그에게서 뛰어난 예술성과 함께 천재성을 찾고 있는 듯 하다.
그동안 유홍준은 우리에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크게 고무시켜왔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광만 찾아 여행을 떠나던 우리에게 그는 '문화답사'라는 새로운 그러면서 정말 유익한 여행풍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던 그가 근래에는 본인의 전공을 한껏 살려낸 책을 펴내고 있다. 얼마 전 써낸 "화인열전(역사비평사)"이 세간의 호평을 얻었고, 이번엔 조선의 유명한 화가 중 '화인열전'에서 다루지 못했던 추사 김정희 한 사람만으로 2권의 책 '완당평전'을 내놓았다.
'완당평전'은 조선 후기 내로라 하는 명문가의 후손이자 천재성을 타고났다고들 하는 추사 김정희의 삶을 탄생부터 만년까지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정리한 김정희 평전이다. 아버지를 따라가 접한 연경(燕京:중국 베이징의 옛이름)학계와의 교류, 학예의 연찬(硏鑽:학문 따위를 깊이 연구함)과정, 출세와 가화(家禍:집안의 불행), 완당(阮堂:추사의 호)바람, 제주도 유배시절, 강상(江上)시절, 북청 유배시절, 과천시절 인간 김정희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 시와 문장의 대가, 금석학(金石學:금속과 돌에 새겨진 글자를 대상으로 언어와 문자를 연구하는 학문)과 고증학(考證學:옛문헌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아 經書를 설명하려고 한 학문)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 문인화(文人畵: 전문적인 직업화가가 아닌 시인, 학자 등의 사대부 계층 사람들이 취미로 그린 그림)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추사 김정희는 문사철(文,史,哲) 시서화(詩,書,畵)를 겸비한 고매한 학자로서 가히 일세를 풍미한 완당바람의 주역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추사가 혹시 사대주의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연경에서 중국의 많은 큰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보인 언동 때문이었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이러한 의혹은 해소될 수 있었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유학자 박규수(1807~1876)는 추사의 글씨를 "만년에 바다를 건너갔다(제주도 귀양살이) 돌아온 다음부터 (남에게)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되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一法)을 이루게 되는 신(神)이 오는 듯 기(氣)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 일본의 동양철학자 후지쓰카 지카시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모토로 한 청나라 고증학 연구의 제일인자”로 극찬한 것은 추사의 학문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서예의 대가로만 조망되던 추사의 인간적 면모와 북학의 근거인 조선과 청나라 학자들간의 끈끈한 교류를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베이징 골동가 유리창을 중심으로 펼쳐진 중국과의 학술교류사는 대단히 흥미롭기까지 하다.
당대 최고 수집가였던 옹방강은 추사를 아들처럼 아끼며, 그를 `경술문장 해동제일'이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는 얘기도 들려주고 있다. 청나라 스승과의 교류를 통해 추사는 학문과 예술의 자기화를 이루어 내고 결국 50대에 학문과 예술에서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
책은 2권으로 돼 있다.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이란 부제가 붙은 1권은 출생부터 제주도 유배 시절까지를,‘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라는 부제의 2권은 서울 용산에서 곤궁하게 살던 시기부터 완당의 서거와 사후 평가까지 다루고 있다.
추사의 서예 등 예술, 학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도판을 무려 389컷이나 싣고 있는 것은 이 책의 값어치를 한층 높여준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또 엄청난 자료의 수집과 발로 뛴 답사, 그것을 우리말로 옮겨내어 의미를 부여한 역정은 실로 감격적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틀린 곳 123군데, ‘화인열전’에서는 100군데를 찾았다. ‘완당평전’에서도 ‘무림 고수들’의 매서운 지적이 쇄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의 저술은 '높은 산이요 깊은 바다'인 완당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자신의 ‘만행’"이라고 겸손한 모습도 잊지 않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것이 평전이라는 한계를 갖긴 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겐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가장 전신(傳神)이 잘 되었다고", "연암 문하에서 종유했기 때문이다.", "그런 안체(顔體)를 느낄 수 없어" 등에서 '전신, 종유, 안체' 등은 좀더 쉬운 표현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시의 번역도 역시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얼마나 뛰어난 비지팅하우스(visiting house)가 될까"라며 영단어를 쓴 것은 조금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유홍준의 명성에 작지만 오점이 남길 수 있는 표현이 아닐까?
하지만 이 '완당평전'은 유홍준의 명성에 더욱 큰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되리라 믿는다. 나는 '화인열전'의 서평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국민들이 서양의 화가들만 아는 불행한 일을 막기 위해서도 정말 의미있는 작업이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 추사의 그림과 학문세계를 더듬어보고, 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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