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우리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권력을 장악하여 혁명군으로 위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기를 든 것은 단지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세상을 제안하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독자들에겐 칼 마르크스나 체 게바라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친숙해진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말이다.
헌데, 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최악의 일'이라니, '권력은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우는 전사
무기를 든 것도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이렇게 투쟁하는 것도 세상을 정복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제안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의미가 와닿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왕지사 거사를 했다면 무라도 잘라야 하는 것 아닌가.
검은색 스키 마스크를 쓰고 진실의 언어를 무기로 택한 혁명가 마르코스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 책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마르코스 지음·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윤길순 옮김·해냄 펴냄)는 바로 이 혁명가와 만나게 해준다.
사파티스타 초기의 편지와 성명서를 담은 '분노의 그림자'(삼인)나 마야족의 신화를 통해 멕시코 원주민의 정체성을 그린 우화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다빈치) 같은 책을 통해 만났던 마르코스는 이번에는 자신이 한 말과 글을 모은 선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뿌리깊은 멕시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가시화된 신자유주의 폭력에 맞서 싸운다.
해서 그를 포함한 사파티스타가 원하는 것은 500년간 이어진 원주민 수탈의 역사를 끝내고 지금 멕시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물리쳐 소수 세력인 멕시코 원주민이 진정한 멕시코 국민으로 사는 것이다.
이들의 싸움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이란 점에서 전세계 진보진영이 관심과 연대를 보이고, 자본주의의 최대의 이기인 인터넷이 이들의 중요한 투쟁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화제를 만들어낸다.
주제 사마라구 등 유명인사들이 후원자
지난 2001년 3월11일, 원주민 권익 보호를 위한 보름간의 평화행진으로 멕시코시티에 진입해 20만 군중의 지지를 받은 바 있기도 한 마르코스와 사파티스타는 내로라 하는 저명인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마라구를 비롯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프랑스 미테랑 전 대통령 부인인 다니엘 미테랑 등이 후원자들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크게 사파티스타의 변화 발전을 담은 정치적인 글과 게릴라 활동 초기의 경험담과 작가들에게 보낸 편지 등을 담은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글, 멕시코 원주민의 정체성을 담은 동화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은 잊혀지기를 거부하며 저항하며 살고 있는 멕시코 원주민 공동체의 불굴의 목소리가 정의와 민주주의, 자유를 바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열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은 자신의 침묵의 제국을 강요하려고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려고만 말을 사용합니다. 권력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고 침묵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귀기울이고, 서로에게 닿으려고, 침묵을 사용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무기입니다. 우리는 말을 외칩니다. 우리는 말을 들어올려 말로 우리 국민의 침묵을 깹니다. 우리는 말을 살게 함으로써 침묵을 죽입니다. 거짓말이 말하고 숨기는 것에는 권력 혼자 있게 내버려둡시다. 그리고 우리는 해방하는 말과 침묵으로 서로 손을 잡읍시다."
덧붙이는 글 | 해냄 / 768쪽 / 18,000
* 이 기사는 서평전문웹진 <부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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