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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불었으니 이제 쌍계사 십리의 곱던 벚꽃도 모두 날아가 버렸으리라. 고향이 그곳인지라 매년 봄이 되면 쌍계사 계곡의 너른바위에 등을 기대고 누워 흐르는 물에 꽃잎에 취하고, 향기에 취하고, 풍광에 취하는 것을 거르지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았던 쌍계사 벚꽃 십리길, 사람들이 몰리기 전 일찍 길을 나섰는지라 방해받지 않고 꽃놀이를 즐겼다. 4월 초 벚꽃이 한참일 때 휴일에는 차를 타고 온 것을 후회할 정도로 쌍계사 벚꽃십리는 유명세를 치른다.

유명하면 그만큼 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것은 당연지사, 쌍계사의 벚꽃놀이도 사람구경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한다. 길가에는 음식점들이 들어서고, 대번에 난리법석이 된다. 나도 그 중에 한사람이 되니 누가 누굴 욕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그래서인지, 되도록 조용한 때를 기다려 찾아가기 마련이고, 특히 집에서 가까운 곳이면 아예 일찍 길을 떠나거나 늦게 가는 경우가 많다. 꼭 조바심을 내지 않더라도 하동 땅은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한정없지 않은가.

쌍계사로 벚꽃놀이를 하러 가는 길에는 하동 송림, 토지의 배경이 되는 평사리, 이제는 별 볼품 없게 되어버린 화개장터가 있고, 하동읍에서 화개장터까지 섬진강의 반짝이는 모래밭과 전라도쪽 풍경도 아름답다. 쌍계사까지 굳이 갔다면 불일폭포도 한번 들러볼 것이며, 내키면 '아(亞)자방'으로 유명한 칠불사까지 구경갈 일이다. 운이 따른다면 상큼한 봄나물 절밥도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고.

섬진강 재첩국이야 워낙 유명해서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될 것이고, 만약 하동 진주간 국도로 길을 잡았다면 하동읍과 진주시 중간쯤에 위치한 횡천면 삼거리(진주시-하동읍-청학동으로 갈라진다)에 있는 '횡천분식'에서 별미로 따끈따끈한 '추억의 앙꼬찐빵'을 맛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곳 찐빵 맛은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데, 다른 별미도 많겠지만, 차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는 찐빵 맛은 일품이다.

보통 외지인의 경우 고속도로를 따라 하동을 찾게 되는데 하동에서 여행을 마치고 시간이 조금 남는다면 남해대교 건너 이순신 장군의 묘소가 있는 충렬사를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남해대교 주변의 경치만으로도 넉넉하지만, 이왕 온 것 다리 밑(남해쪽)으로 내려가면 충렬사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충렬사 앞에는 입장료 1천 원을 내면 승선이 가능한 모형 거북선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버티고 있는데 어설프긴 하지만 거북선 맛(?)이 나긴 한다. 볼거리를 생각한다면 충렬사를 찾은 사람에게는 실망밖에 가져갈 것이 없다. 하지만 충렬사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임진왜란 당시의 치열한 해전이 벌어졌던 곳임을 상기하고, 자신의 역사 지식을 꺼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묘소는 낮은 담장으로 막혀 있는데, 가만히 묘소 안쪽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외래종 침엽수가 훤칠하게 솟아있다. 아무리 기념식수라지만 묘소 굉장히 가까운 곳에 시야를 가리는, 그것도 외래종 나무를 심은 그의 사상(?)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조상 묘에 뿌리가 들면 집안 망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의 처사는 참으로 못마땅한 것이다. 충무공 성역화에 그가 기울인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이런 일을 했다는 건 용의 눈동자를 발바닥에다 그린 격이 아닌가.

쓸데없는 말이 길었나 보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하동의 봄은 아름답고, 봄에 취해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재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이제는 봄기운도 가라앉고 마음도 봄이 가는 것만큼 차분해 졌지만, 여느 곳보다 하동에서 맞이하는 봄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 놓는 매력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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