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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골에 사람이 없습니다.

그나마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에는 잠만 자는 곳이라도 사람이 늘고 있다지만, 겨울에도 흰눈 속에서 파릇파릇 대나무가 울을 치는 남도를 보라.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은 머리 허연 노인들과, 개들 밖에 없습니다.

집들은 주인을 떠나 보내고, 바람에 덜렁거리는 문짝과 숭숭 풀이 돋아난 기와 지붕만이 남아 있습니다. 거, 집이란 게 참 묘합니다. 사람이 살을 붙이고 드나들 때는 비록 허접스런 거적대기 문짝이라도 제대로 달려 있다가도 주인이 떠나면 누가 모질게 발로 내지른 거처럼 금세 문짝은 떨어지고, 담벼락은 후두둑 흙들을 흘러내리고, 속절없이 거미줄에 먼지는 켜켜이 쌓여 갑니다.

여름이 되어도 느티나무 밑에는 이제 장기알을 호기롭게 두드리는 노인들이 없습니다. 보아야 맨날 검버섯 빼곡이 들어찬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서로의 외로운 처지를 맞대기가 싫어 그저 집에서 영문도 모르는 테레비전만 들여다 봅니다.

장마가 져서 지붕이 새어도 누가 엽렵이 올라가 손볼 사람이 없습니다. 그저 두 노인네가 고추밭에 풀 자라지 못하게 덮어두던 비닐이나 꺼내서, 빨랫줄 치켜 세운 장대로 거적처럼 지붕에 얹어볼 뿐입니다. 그래도 서울 사는 자식들이 알면 마음 상할까 말도 못하고, 그저 그 질긴 장마비를 죄다 방안으로 불러 들입니다.

이젠 텃밭이 비어 있어도 참외 한쪽 심어서 먹지 않습니다. 참외도 더운 날, 땀투성이 자식놈 등물 끼얹어 주고나서, 뒤곁 샘물에 담가두었던 것을 꺼내다 코가 푹 빠지도록 어적어적 씹어먹는 걸 바라볼 때가 제 맛이지, 어디 이 빠진 노인이 우물거리는 걸 서로 들여다보다 보면 이건 참외가 아니라 오이 꼭지보다 쓰기만 합니다.

명절 때나 겨우 얼굴 보는 자식들, 손자들 생각하며, 때묻은 달력 들척이며 아직도 먼 추석이며, 설날이며 손꼽아 보지만 그것도 막상 사업이다, 아이들 공부다는 이유로 꼬박꼬박 찾아주는 것도 아닙니다.

모처럼 내려온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면 그 동안 보약이라도 지어 먹으라고 내려보낸 돈, 고쟁이 깊숙이 쟁여두었다가 장날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푸성귀며, 과일이며, 손자들이 좋아한다는 피자까지 사다 놓고, 이거저거 장만해 놓으면, 맛있다고 먹어 주기만 해도 고마운데...

뭐하러 이런 거 다 차렸느냐고, 이게 다 음식 낭비라고 군소리나 늘어 놓는 자식과 며느리를 볼 때면 노인은 슬픕니다.

지난 번 손자들이 할머니집 변소가 추워서 안 온다는 말에 여름내 고추밭 매어 번 돈 몽땅 털고, 개용돈 쓰라고 딸래미가 지 서방 모르게 찔러준 돈 몽땅 긁어내어 모처럼 집안에 화장실까지 지어 놓고, 한겨울에도 기름값 무서워 바라보기만 하던 기름보이라도 온종일 틀어 놓아도, 손자들은 심심하다고, 게임기 없다고 투정을 부리니 노인은 내 다음 여름엔 허리가 휘더라도 담배밭 일 나가, 그 게임기인가 뭔가 꼭 사놓겠다고 마음 다져 먹어 봅니다.

명절이 왜 그리 짧던가. 내려오기 무섭게 돌아갈 걱정부터 하는 자식 앉혀 놓고, 오봇이 얘기 한 번 나누지도 못했는데, 벌써 돌아갈 날입니다. 테레비전 들여다 보며, 줄줄이 늘어선 차들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자식을 보며, 덩달아 몸이 달아, 행여 길에서 고생할까 더 잡지도 못하는데, 며칠 전부터 시큰거리는 손 주무르며 담근 나박김치며, 시루떡이며, 겉절이며 바리바리 싸다 못해 사람이 앉을 자리도 없이 채워 주어도 텅 빈 듯 느껴지는 건 늙은 부모의 마음 뿐입니다.

그만 들어가라고 손짓하는 자식에게 행여 보일세라,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 억지로 참으면, 정이라곤 부엌의 부지깽이보다 더 없던 할아범도 돌아서서 컥컥 헛기침만 뱉아내는데, 걸어서라면 성황당 동구 밖까지 따라나가련만, 휭하니 떠나가는 자동차야 어디 따라잡을 수나 있을까.

잠깐 들렀던 자식이지만, 어찌나 빈 자리가 휭한지, 오늘 따라 컴컴한 집구석은 무덤 같고, 불도 켜지 않은 채 뜻도 모를 테레비전 뉴스만 들여다 보는 영감이 밉게 보여 웬 청승이냐고, 탁 소리 나게 방안 불마다 죄다 켜 보지만, 겹겹이 어두운 건 순전히 늙은 부모의 마음뿐입니다.

일찌감치 이부자리를 펴고, 때묻은 베개를 꺼내 펴면, 눈을 감아도 눈에 밟히는 손자의 말랑말랑 찰떡 같은 얼굴. 그래, 니들만 재밌게 살면 그만이다. 흥건히 괴어 나오는 눈물 꾹 짜내며 억지로 눈을 감아도, 여전히 삼삼하게 떠 다니는 자식의 모습. 그래, 니들만 재밌게 살면 그만이다.

깜박 잠이 들려다가 문득 들려오는 교통사고 뉴스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은 채 꾸벅이는 영감탱이 등짝을 후려치며, 크게 틀어보라고 외쳐보니, 뒷간의 휴지처럼 구겨진 자동차가 죄다 우리 자식 거 같으니...

아범 차가 뭐이유? 소나따유...소가따유..? 귀 어두운 영감 밀어내고, 달려들어 어둔 눈 비벼가며 보는데, 빠르기가 닭 채가는 족제비 같은 아나운서 말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대로 앉아 밤을 새우는데, 올라가서 전화한다던 자식에게선 감감무소식이고, 혹 우리 전화가 고장난 건 아닌지, 수화기를 몇 번이고 들었다가 내려놓다가, 이러는 새 전화나 걸지 않을까 조바심에 이제는 그 짓도 못한 채 벙어리 같은 전화기만 들여다 보는데...

뜬 눈으로 새우고, 날이 밝기 무섭게 전화를 넣어 보면, 자다 깬 자식의 졸음 섞인 목소리. 아, 새벽부터 무슨 일이래요. 피곤해 죽겠는데... 목소리만으로도 감지덕지다. 그래, 미안하다. 푹 자거라.

무뚝뚝한 영감도 "뭐랴, 뭐랴"되뇌며 벌써 끊어진 전화기에 어둔 귀를 들이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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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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