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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순례 특별취재팀: 이혜영, 박경화, 이유진, 정명희 기자

▲ 육상사격장 안. 폭격은 멈추었지만 여전히 농민들은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할 수 있다. ⓒ 녹색연합

▲ 매향리에 매화향기 가득할 그날을 위해. ⓒ 녹색연합


잔뜩 흐리고 찌푸렸던 하늘이 햇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르지 않아 한걸음 한걸음에 무게를 더했던 젖은 바지와 신발이 어느새 가벼워졌다. 군산에서 주민들은 매향리 사람들이 육상사격장을 폐쇄시키고 또 재판에서 승소하는 것을 보고 미군과 싸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녹색순례단은 오늘 그 희망을 만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남양방조제에서 걷기 시작해서 3시간의 도보를 마치고 매향리 육상사격장에 도착했다. 농번기라 매향리 육상사격장 안에서 농사일이 한창이다. 육상사격장이 폐쇄되긴 했지만 여전히 농민들은 출입증을 제시해야만 안에 들어가 농사를 지을 수 있다. 68년 국방부에서 그 땅을 강제수용해 미군에게 무상공여했기 때문이다.

땅주인은 국방부, 실제 사용하는 이들은 록히드마틴 그리고 주민들은 소작농이 되었다. 해안으로부터 2.4킬로미터 떨어진 농섬을 기준으로 630만 평의 매향리 앞 바다는 주중에는 미군 폭격연습장으로 사용되다 토요일과 일요일만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출입이 허락된다.

매향리의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지난 식목일, 육상사격장 철책선을 따라 심은 매화나무에는 연초록 잎이 돋아 이사온 매향리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쉼없이 나란히 걸어가던 순례단이 흠칫 멈췄다. 갑자기 터진 로켓포 실탄의 무시무시한 굉음에 가슴이 놀란 것이었다. 매향리 주민들은 평생동안 몇 번이나 이렇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 폭격이 자행되는 농섬을 침통하게 바라보는 순례단. ⓒ 녹색연합

▲ 안전은 모두 개인의 몫인가. ⓒ 녹색연합

매향리대책위 사무실에 도착하자 전만규 위원장이 마중을 나왔다.
"170가구 남짓의 작은 마을에 30명 이상이 자살을 했습니다. 전투기와 폭탄투하의 굉음이 만들어내는 공포감은 인간을 파괴합니다. 소음은 보이지 않는 흉기입니다. 매향리 사격장과 같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군사시설은 세계 어디에도 이주되어서는 안되며 지구상에 사라져야 합니다."

매향리 대책위 전만규 위원장은 매향리 사격장이 폐쇄되고나면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그들을 돕겠다고 말했다. 소음으로 받아온 날들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매향리에서의 점심식사. 이번 순례에 처음 참가한 이승정(22) 씨는 "국민들이 이런 고통속에 살도록 놔 두는 정부의 무기력함과 매향리의 현실에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식사가 끝나고 각자 준비한 노란 리본에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철책선에 묶었다. 매향리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있다고, 언젠가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매향리 대책위 사무실에서 철책선을 쭉 따라 농섬과 가장 가까운 해안가에 도착했다. 걷는 내내 귀를 윙윙 울려대는 전투기들이 농섬 위를 선회하는가 싶더니 이내 농섬은 하얀 포탄 연기로 뒤덮였다. F4E, A-10, OV10과 같은 전투기들이 마치 곡예비행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연달아 폭탄을 쏟아내고 원래 크기의 1/3밖에 남지 않은 농섬은 풀 한 포기 없이 맨살을 드러낸 것이 마치 백기를 든 것처럼 보인다.

아름드리 나무로 녹음이 짙어 짙을 농자를 붙여 농섬이라 불렀다는 옛날 모습은 이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한참을 그렇게 농섬을 바라보았다. 이제껏 순례를 통해 우리 땅이 동강나고 파괴된 장면을 지켜보았지만 이렇게 최신예 전투기 앞에 무차별 폭격당하는 이 땅 앞에서 모두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녹색순례단과 매향리는 인연이 깊다. 98년 처음 녹색순례를 시작했을 때 강화도에서 갯벌을 따라 내려오던 순례단을 가로막은 폭격기 굉음과 철조망. 매향리의 50여 년 역사를 접한 순례단원의 대부분은 그날에서야 처음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화성에서 심장을 찢어놓을 듯한 굉음 속에 미군 폭격훈련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매향리는 고립무원의 섬 같았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매향리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다. 50년대의 노근리에 이어 매향리는 이제 반기지 운동, 아니 평화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군문제와 기지 문제를 이야기하는 이들의 성지가 되어 있다.

이 시간동안 전만규 위원장과 주민들은 수차례 구속당했고 수백 번에 이르는 집회, 폭격이 감행되고 있던 농섬에 들어가 시위를 하는 목숨을 건 저항이 있었다. 육상사격장이 폐쇄된 2002년의 매향리는 1998년의 매향리에 비해 훨씬 평화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순례단이 농섬에서부터 마을들을 지나 매향리를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 추격하는 듯 따라온 폭격기의 굉음은 아직 우리에게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 쿠니사격장 철책을 따라서. ⓒ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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