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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참으로 눈부시다. 특히 내가 있는 시골 중학교 언저리마다 들꽃이 환하게 피어 보는 이의 마음을 밝힌다. 오늘 아침에 보니 노오란 꽃창포가 꽃등을 켜고 있었다. 지천으로 피던 아카시아는 이제 꽃송이가 말라 바람에 날린다. 흰꽃이 노랗게 바래 바람이 불면 우수수 떨어진다. 보랏빛 오동꽃은 풍성한 꽃송이를 나무 가득 안고서 처연하게 산기슭에 서서 옛사람의 정취를 되새기게 한다.

참 좋은 때이다. 이곳 남녘엔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보리물결의 색감에 가슴이 울렁인다. 노오란 고들빼기꽃은 내가 보기엔 참 예쁜데 우리 시어머니께서 무척 싫어하신다. 정구지 밭을 조금만 소홀히 하면 어느새 씨가 날아들어 노란꽃밭을 만든다고 마뜩찮아 여기시고 어저께 내내 뽑아내셨다. 난 우리 학교 화단에 무성하게 핀 노란 고들빼기 꽃이 예쁘기만 하던데...

그런데 오늘 이 아름다운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마음이 우수수 낙엽이 진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 65명의 작은 시골 중학교이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자기들끼리 학생회를 해서는 얼마씩 거두어 카네이션과 점심값을 마련한다.

올해엔 2천 원씩 거둔 모양인데 모두 합해야 십삼만 원이다. 이것으로 카네이션이랑 작은 꽃바구니 하나 하고 십만 원 정도의 돈을 봉투에 넣어 선생님 밥값이라고 내놓는다.

사실 이런 일이 나는 무척 싫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학생회를 개최하는 것도 싫고, 저희끼리 모여 얼마를 내야 하는지 흥정하는 것도 싫다. 시골아이들이라 선생님한테 큰 선물 줘본 일도 없고 해서 오백 원 내자고 하는 아이부터 천 오백 원 내자는 아이까지 천차만별이다. 그저 또 돈을 내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자리가 싫은 것이다.

사실 우리 학교엔 스승의 날을 싫어하는 선생님 참 많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이다. 시골 중학교에 스승의 날이라고 촌지 들고 올 학부형도 없고 선물 비싼 것 보내는 학부형은 더 더욱 없다. 어쩌다 양말 하나쯤 보내는 학부형이 있을 뿐이다(이것도 전교에서 한두 명이다).

이렇다 보니 스승의 날에 애들 코묻은 돈으로 아주 싼 점심 먹고 애들이 주는 작은 꽃 한송이 가슴에 달고 하루를 보낸다.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문제는 퇴근 후이다. 선생이라는 것을 아는 다른 사람들이 묻는다.

올해는 얼마나 받았느냐? 스승의 날이니 참 좋겠다, 자기는 얼마를 보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빈손으로 가는 선생의 가방 속에 엄청난 상품권 내지는 현금이 있는 것처럼 스윽 훑어 보는 것이다.

참 기분 나쁜 일이다.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하자. 나는 교사생활한 지 십여 년이 되었지만 촌지라는 것을 받아본 일이 없다. 시골중학교 선생이어서 내가 돈 내서 애들 밥 사주고 선물 사주고 한 일은 많아도 학부형이 꽃봉투 들고 찾아온 일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작년에 우리 아이가 아파서 시골 사시는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와 계셨다. 스승의 날 빈손으로 집에 가니 우리 시어머니(아주 시골 분이다) 표정이 이상했다. 스승의 날에 빈손으로 오는 며느리가 안쓰러웠는지 오히려 위로하는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집으로 선물을 바리바리 배달을 시키는 학부형들을 보다가 빈손으로 오는 나를 보니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이다. 내가 "우리 학교는 시골 중학교여서 스승의 날을 잘 모른다"고 설명을 했다.

하여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가 스승의 날이 싫다고 한다. 모두가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퇴근 시간도 싫단다.

그래서 그냥 스승의 날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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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남 의령군 지정면의 전교생 삼십 명 내외의 시골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 이선애입니다. 맑고 순수한 아이들 눈 속에 내가 걸어가야할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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