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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네 번 바람 불어 / 만화방창 봄이 드니 / 구경 가세 구경 가세 / 도리화 구경 가세."

우리나라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 신재효가 나이 60세에 지어 불렀다는 '도리화가'의 한 구절입니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각 고을 광대를 불러모아 판소리 이론을 세우고, 판소리 사설을 완성한 신재효가 사랑했던 여인 진채선의 존재를 이번의 고창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판소리는 남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이 나라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판소리를 불렀던 것이 바로 진채선이었지요. 경복궁 경회루의 낙성연(1869년)에서 남장을 하고 노래를 불렀던 진채선은 그만 흥선대원군의 눈에 띄어 버렸고, 결국 신재효는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홀로 고향에 내려와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노래를 지었다지요.

그때 진채선의 나이가 스물 넷. 바람이 스물네 번 불었다는 가사 안에 신재효의 애틋한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흥선대원군도 결국은 그들의 마음을 눈치채고 그녀를 신재효 곁으로 돌려보냈다는군요. 동리의 곁에서 평생을 살았고, 스승이 죽자 암자에 묻혀 세상을 마쳤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참으로 애틋하기 짝이 없네요.

고창의 판소리 박물관에는 이런 이야기말고도 즐길 거리가 꽤 많습니다. 동굴처럼 만들어 놓은 득음 체험장에서는 맘껏 소리를 지를 수 있게 해 놓아 자신의 성량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해 두었고, 영상을 통해 명창의 소리를 한 소절씩 따라 배울 수 있도록 북도 마련해 두었습니다.

한국 판소리의 계보를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신재효 고택을 둘러보는 것도 각별한 즐거움입니다.

신재효 고택을 지나 동리국악당을 지나면 바로 고창읍성이 나타납니다. 소풍 나온 식구들이 나무 그늘에 자리를 깔고 앉아 점심을 먹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1573년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이 곳은 둘레가 1.6km가 넘습니다. 담쟁이덩굴이 돌로 쌓은 성을 열심히 휘감아오르고 있습니다. 눈맛이 아주 시원한 성입니다. 조선조 초기 돌성으로는 가장 완벽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군요.

고창 사람들에겐 아주 일상적인 일, 답성놀이를 저도 해 보았습니다. 돌을 머리에 이고 고창 읍성을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다리병이 다 낫고, 두 바퀴를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를 돌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고 합니다. 돌을 이고 걷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성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봄철, 얼었던 땅이 녹을 때 성의 흙이 부풀어올라 물이 스며드는 걸 막으려고 사람들에게 한 바퀴씩 돌게 한 것이 이런 풍습으로 남아 있다는 건, 참 재미있는 일 아닌지요?

저도 사람들을 따라 성벽 위를 걸었습니다. 지금도 볕이 따가워서 한 바퀴를 다 돌기가 어려우니,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가면 아예 엄두를 내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성벽 위를 걷다가 성 안쪽 구경에 나섰습니다. 동헌 마당에 있는 형틀 모형은 사람들이 아예 의자로 쓰고 있는데, 사또가 호령하는 목소리가 녹음돼 있어 괜스레 비죽비죽 웃음을 웃게도 만들어줍니다. 심문받는 죄인들의 태도가 영 말씀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사람들 가까이에 와 있는 동헌을 보는 것은 아주 기꺼운 일이네요.

5월의 고창을 맛있게 둘러보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김제의 망해사에 들러 여행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절집 마당이 아예 바다인 곳입니다.

절 앞으로는 수평선을, 절 뒤로는 너른 만경 평야의 지평선을 지고 있는 곳입니다. 일망무제 서해 바다를 눈 앞에 두고,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일몰에 안타까워하다 왔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여행이 될 뻔했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아쉬움은 잠시 접어 뒀다가 언제고 다시 떠나는 핑계로 삼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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