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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귀국, 경희대학교 교정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박노자 교수(29, 오슬로 국립대 한국학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
러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으로,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박노자(29) 교수가 지난 10일 귀국했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러시아 이름을 버리고 '러시아의 아들'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박 교수는 섬세한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저술활동을 해왔다. 박 교수는 근작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의 폭력적인 군대문화, 이방인들을 배척하는 패거리 문화, 교수가 특권화된 대학사회의 전근대성을 비판했다.
| '제3세계 사람'은 귀화하지 말라는 말이다 - 강수연 기자 |
| "내가 교편을 잡는 건지, 그 반대인지" - 강수연 기자 |
| "한국에서 학생발언의 자유는 꿈만 꿀 뿐" - 강수연 기자 |
박 교수는 한국-포르투갈의 축구경기를 앞둔 14일 오후 경희대 교정에서 가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월드컵을 둘러싼 이상열기를 '광기(狂氣)' '집단적 히스테리'라고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또 송복 교수(연세대 사회학과)의 퇴임 기념강연에서의 학생 시위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교수들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대학사회 분위기가 학생들의 비판문화를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특히 과거 남북의 두 최고통치자 박정희와 김일성에 대해 "본질에 있어서는 개인을 부정하고 인권이 뭔지도 모르는 권력을 휘두른 사람들"이라고 싸잡아 평가 절하했다.
면접 인터뷰에 더해 이메일 답변을 추가해 그가 바라본 '한국사회의 초상'을 함께 들여다본다.
- 메일로만 연락하다가 이렇게 직접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지난 10일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축구시합이 있던 날이죠. 저는 세종로를 온통 벌겋게 물들인 군중들을 보며 광기(狂氣), 집단적 히스테리를 느꼈습니다"
축구시합 하나를 보기 위해 수십만 군중이 광화문과 시청으로 몰려가고, TV에서는 100분 동안 뉴스특보를 내보내는 나라. 전 국민적 열기를 입증이라도 하듯 국제전화로 남극기지의 반응을 소개하고, 거의 모든 연예인들이 '월드컵 16강, 아니 8강 진출'을 기원해야 하는 나라. '전 국민적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그의 발칙한 생각에 딴지를 걸고 싶었다.
- 하하,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안정환 선수의 '오노 세리모니'를 보며 통쾌함을 느낀 사람들도 많은데….
"축구시합에서 한국이 이겼다고 해서 노동자들에게 잘될 것도 없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리도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그 경기를 본 사람은 극소수라서 한미관계에 특별히 영향을 줄 것도 없습니다.
일상에서 일탈된 이런 분위기는 어렸을 때부터 주입된 국가주의가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스포츠 애국주의'가 한국처럼 성공한 예가 별로 없습니다. 노르웨이에도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축구 시합 하나 이겼다고 '우리 노르웨이 만세' 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사실은 국가라는 것 자체를 약간 혐오스러워 하거든요. 도둑놈들보다는 국가가 이 세상에서 (살인을) 가장 많이 하고, 또 가장 많은 공범들을 만들지 않습니까? 젊은이들을 군대로 강제로 끌고 가서 살인자로 만들고, 한국 같은 경우에는 모든 시민들을 축구 팬으로 만들고…자국팀을 응원하도록 주입시키는 것 아닙니까?"
- 스포츠로서의 축구는 좋아하십니까?
"(정색을 하며) 아이구, 좋아하죠. 저도 동네 아이들이 축구 하는 것은 좋아하고, 저도 할 수 있는데…. 국가와 국가의 대결이라는 것은 혐오스럽네요"
- 미국과의 축구경기를 보도한 TV뉴스에서 봉은사 스님들이 한국 선수가 골을 넣자 일반 신도들과 함께 끌어안고 기뻐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과거 승병의 전통이 있는 민족주의적 한국불교의 경향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인데, 스님들조차 이렇게 민족의 축제에 열광하는데, '광기'는 너무 매몰찬 평가로 비치지 않을까요?
| | ▲"축구라는 스포츠는 좋아하지만, '국가와 국가의 대결'은 혐오한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제가 불교를 믿기 때문에 '광기'라는 말을 씁니다. 불교 입장에서 '국가'나 '민족'의 허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망상'이라고 하는데, '망상'에 열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을 '광기'가 아니면 어떻게 불러야 하니까?
득도하신 뒤에 평생 이 도시 저 도시, 이 마을 저 마을에 돌아다니셨던, 여러 부족과 도시와 국가들의 출신들을 아무 차별도 없이 제자로 받아들이셨던 부처님의 국적이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이 물질적 우주 밖의 진리를 추구하는 스님이 제왕에게 예를 올릴 필요 없다'고 하신 중국 남북조 시대의 혜원 스님이야말로 불교와 국가의 관계를 제대로 생각하신 겁니다. 제가 정말 마음이 아픈 일이라면 한국불교가 일제시대식의 관제 민족주의의 구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 그리고 그걸 '호국'이라고 높여 부른다는 - 사실입니다"
- 주변에 지금과 같은 얘기를 하면 반응은 어떻습니까?
"경희대 교수들중에 '맞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남 앞에서는 그런 얘기를 못하더군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그런 것은 있어요. 서양사람 외모를 가진 사람에게 약간 봐주는 경향이요. '네가 설사 국적은 한국사람이라도 너는 어차피 '한국사람'이 아니니까'라는 의식이 있어요. 하지만, 같은 한국사람끼리 '집단의 광기, 히스테리' 이런 소리하면 또 사정이 다를 걸요?"
한국의 16강 진출로 박 교수가 본 '월드컵 광기'는 18일 대 이탈리아전에서도 재현될 것이 확실시된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 이메일로 추가 질문을 던졌다.
-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겨서 '광기'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민족적 에너지의 분출'이란 형식으로 옹호하는 경향도 있는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인은 전혀 없습니까?
"적어도 아직까지 인명피해 등의 훌리건 현상이 안 나타난 것은 긍정적이라고 봐야겠지요. '민족적 에너지'를 이야기할 때의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그 '민족'의 실체가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월드컵 때문에 철거를 당하는 노점상하고 월드컵 마케팅에 '특수'를 노리는 기업인들이 과연 같은 에너지를 함께 분출할 민족의 동등한 구성원입니까? 물론 기업인의 쪽에서 그러한 생각을 부추길 만한 이유는 있겠습니다.
민족의 이름으로 그들로부터 착취를 당하는 쪽에서 당분간이라도 계급 갈등을 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하는 쪽에서 민족이나 국익의 환상에 흘려 그것이 다 위로부터 만들어지는 허위의식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클릭! 박노자 교수의 한겨레 기고문 '월드컵의 빛과 그늘'(5월31일)>
- 연세대 송복 교수의 퇴임강연 당시 연세대 학생들의 시위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학생들을 비판하는 선봉에 있는데, 50∼60대 가운데는 조선일보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또 조선일보와 연세대 학생들을 함께 비판하는 양비론도 있습니다. 학생들을 지지하는 그룹에서도 "택일(퇴임 강연일)이 잘못됐다" "시위방법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제 직감으로는 학생들에게는 하나만 바라고자 합니다. 차라리 송 교수가 재직했을 때 한 번 데모를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지금 한 것도 나쁜 건 전혀 아니지만, 그 때부터 했으면 송 교수에게 본인이 하는 짓을 깨닫게끔 약간의 교육적인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요?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학생들의 얘기를 듣고 깨닫거나 자기 생각을 고치는 일이 없다는 거죠"
- 송 교수에 대한 비판 중의 하나는 그분이 교수들이 노조 만드는 것을 두고 '노조를 꼭 만들고 싶으면 공장으로 가라'고 비판한 칼럼도 있었습니다.
"(웃으며) 대학이 공장이 아니면 뭡니까? 송 교수 생각은 말이 안 되는 말이기 때문에 뭐라고 해야 할지…. (대학교수인) 저도 오슬로 대학 노조원입니다. 노르웨이에서는 모든 교수들이 다 노조원들이고, 교수노조는 소위 공무원노련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사무직원, 공무원과 같은 노련에 속하는 거죠.
우리도 임단협을 하고, 그게 잘 안되면 파업을 하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국가에 고용된 사람이고, 고용된 사람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교수라고 해서 고용된 자로서의 본질이 전혀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공무원노련 같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 활동도 합니다. 예컨대 팔레스타인 출신 교수들을 적극 지원하고, 이스라엘 제품을 가장 열성적으로 불매운동하는 것이 저희 단체입니다.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노르웨이 사람들은 전혀 이해를 못할 것 같습니다"
| ▲"연세대 송복 교수는 '노조를 꼭 만들고 싶으면 공장으로 가라'고 했는데요?" - "대학이 공장이 아니면 뭡니까?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그러나 '노르웨이는 노르웨이고, 우리는 우리'라며 한국적 특수성에서 송 교수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한국적 특수성에서 오히려 선비는 올바르지 못한 일이 있으면 목숨을 내놓고 상소를 하고 그렇지 않았습니까? 조선시대 선비들은 조정에 할 말을 다했고, 만인소(萬人疏)라고 1만명이 상소를 올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적극적인 활동을 하다가 아주 처참하게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 송 교수의 대외적인 처신이 부적절했다고 해도 이번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10여명에 불과했고, 대다수 학생들은 이를 외면했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저런 사람들은 재직중에 시비를 가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보복이 두렵기도 하고…."
- 보복이라는 게 무엇을 말합니까?
"송 교수나 그의 동료들이 자신들을 비판하는 학생들에게 학적이라든가 여러 가지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학적 처리는 실명으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노르웨이는 이를테면 시험을 볼 때 답안지에 이름을 쓰지 않습니다"
- 그렇다면 시험볼 때 무엇으로 구분을 하죠?
"이름대신 쓰는 응시자 번호가 있습니다. 교수가 채점할 때 누구의 답안지를 채점하는 지 알 길이 없고, 한 교수가 채점하지도 않습니다. 채점할 때 타 대학 교수나 덴마크나 스웨덴같은 다른 나라 교수가 와서 채점을 하는 외부시험관 제도가 있습니다. 이 외부시험관의 평가가 해당 교수의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즉, 교수가 어떤 학생에 대해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고 해도 학점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학점으로 화풀이를 못하는 거죠. 사실 그렇게 해야 학생의 발언의 기회가 보장되고,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관계가 되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꿈만 꿀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냉소적인 것도 있지만, 교수의 보복이 두려운 겁니다. 여러 가지 당할 일이 많다는 게 문제죠"
- 시위를 벌인 연대 학생들은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부조리를 비판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를 비판할 수 있겠느냐? 우리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이런 시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강의를 저지한 것도 아니고, 교수에게 욕을 하지도 않았지만, 교수에게 학생들이 그와 같은 형태의 피켓시위를 한 게 처음이었거든요. 학생들 주장에 공감은 하십니까?
| | ▲"한국에서 '교수님 말씀, 엉터리 같습니다'라는 말을 학생이 할 수 있습니까? 그런 얘기를 할 기회가 막혀있으니 피켓 시위밖에 못하는 게 아닙니까?"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제가 (노르웨이에서) 수업을 할 때는 제 수업이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학생들이 일어나서 발언을 합니다. 수업 자체가 대담형 수업이라 학생이 일어나서 '내 의견은 약간 다르다'고 말하고, 합리적으로 토론을 합니다. 언제나 토론이 가능하니 피켓시위까지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수업을 할 때 '교수님 말씀이 엉터리 같습니다' 이런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에서는 수업시간에도 그런 얘기를 할 기회가 막혀 있으니 피켓 시위 밖에 못하는 게 아닙니까? 나는 학생들 심정, 충분히 공감합니다"
- 아무리 그래도 '교수님 말씀 엉터리입니다'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노르웨이에서는 학생들이 저한테도 몇 번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 학설과 학생들 생각이 다를 때, 제가 그런 말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중국공산당이 고학력 노동자를 배출하는 데 상당히 노력했다'고 하자 한 학생이 일어나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중국에서는 대졸자가 2%밖에 안되고, 요즘 등록금 제도까지 도입돼서 대학 다니기가 힘들다'고 반박했습니다. 저는 뭐, 학생이 반박하는데 기분 나쁘고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듣는 학생이 관심을 기울여주니 도리어 고맙기만 하죠"
- 러시아도 그렇습니까?
"러시아는 권위주의가 심합니다. 민주주의의 발전 정도가 러시아와 노르웨이는 천양지차이기 때문에…. 러시아에서도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까지는 안 가지만 지도교수를 말 그대로 '모시는'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 송 교수의 수업 분위기가 어떤 지는 모르지만, 이번 시위에는 그분의 신문 칼럼 내용이 문제가 됐거든요. 그런데 박 교수는 책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교수들이 칼럼을 쓰는 일이 많지 않고, 교수집단이 한국처럼 귀족화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교수는 사회의 '어르신'도 아니고 지배계층도 아닙니다. 다른 전문가들이 많은데, 굳이 교수가 신문 기고에 매달릴 필요가 있습니까? 공식적으로는 신문 기고를 업적으로 보지 않지만 이를 연구 업적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 한국 교수사회의 풍토입니다. 노르웨이에서는 노조 활동가나 시민운동가들이 글을 훨씬 많이 씁니다"
- 연대 학생들의 시위 기사에 올라온 의견을 보면 "그래도 너희들은 '명문'이니까 화제라도 되지" "너희 때문에 명문대학의 명성에 금이 간다" "역시 연대생이다. 연대는 살아있다"는 등 학벌을 의식한 네티즌들의 의견들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지금 계신 노르웨이와 예전의 조국이었던 러시아에서의 학벌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은 어떻습니까?
"러시아의 경우 한국과 똑같습니다. 예컨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같은 명문대를 나왔습니다. 모스크바 대학 등 몇 개 대학을 나와야 관료로서 출세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에는 러시아와 같은 폐단이 없습니다. 어느 대학 나와도 사회 진출하는 데 전혀 걸림이 없습니다. 관료나 기업가 중에 출신대학을 보면 대개 골고루 되어 있으니 평준화를 아주 성공적으로 이뤄낸 것이죠.
한국의 명문대 선호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정상적인 구조는 절대 아닙니다. 노르웨이의 이웃인 스웨덴의 고란 페르손 총리는 노조활동가 출신인데, 전문대학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아무도 수상이나 장관이 어느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관심 가지지 않습니다"
| ▲"영문학이 좋아서 하는 영어 공부가 아니라 재벌기업에서 생존하기 위해 토익 점수를 올리는 대한민국은 '개인들의 묘지'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
- 저서에서 "조선조 말기 지도층에게 공부 그 자체가 아닌 시험결과에 따른 벼슬과 부유한 생활이 인생의 주된 목적이 된 것은 그 사회의 궁극적인 몰락을 예고하는 징조였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대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최근 대학의 풍토도 조선조와 같은 상황이라고 보십니까?
"요즘 대학생들과 선비를 비교하기는 어려운데…요즘은 공부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 '내 관심사가 되는 공부'보다는 내가 재벌이나 정부라는 집단에 들어갈 만한 공부, 말하자면 내가 남에게 잘 붙을 수 있는 공부를 하겠다는 겁니다. 사실 이러면 공부도 아닙니다. 한 마디로,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공부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요즘은 재벌들이 좋아하는 영어회화라든가 정부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인 고시공부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영국의 중세소설이나 시를 좋아하는 자신을 전제하지 않고 재벌을 위해 토익 점수를 올려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앞서는 거죠. 심하게 말하면, 우리는 개인들이 모두 죽고 집단의 구성원으로 사는, '개인들의 묘지'에 사는 거예요"
- '대학의 위기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나오는데,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 마디로 압축해서 얘기하기 어려운데…. 인문학자들이 사람들의 관심사와 머나먼 연구를 해온 것이 인정돼야 합니다.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논문을 썼고, 그런 논문을 쓴 사람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한국처럼 근대성 자체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교수들이 계몽적인 역할도 더 많이 해야하지 않을까?
한국사의 경우 민족주의에 경도된 연구가 있었습니다. 연구를 하는 사람조차 중국사나 일본사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세계사와도 벽을 쌓아놓고 오로지 국사만…그것도 민중의 역사, 생활사, 여성의 역사도 아니고 주로 정치사 위주로 오로지 우리 민족의 역사만 연구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관제 민족주의의 도그마를 역사학으로 구체화한 것에 대해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관제 민족주의자의 관점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우리를 배반한 사람, 남의 편에 붙을 수 있는 배반자, 일제시대로 치면 비국민(非國民)으로 봅니다"
- 양심적 병역거부를 비토하는 논리의 기저에 국가주의, 군국주의가 깔려있다는 것입니까?
"일제시대나 한국의 군사주의자들의 관점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라는 게 국가, 군대 위주의 집단이고, 국가와 군대에 모든 몸과 마음을 바칠 수 없다면 '국민'이 될 수 없다는 관점입니다. 관제 민족주의자들은 이방인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신채호가 즐겨 쓴 표현처럼 아(我)와 비아(非我)가 분명한 사회입니다"
-(이메일 질문) 오태양씨의 병역 거부 선언 이후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필자들에게는 이른바 '본전 심리'(내가 군대에서 고생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좀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라는 게 있습니다. 교수님은 군대를 안 다녀오셨다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교수님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서 대다수 군필자들을 이해못한다. 따라서 그 문제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제 경우 대학교 2년 동안 교련수업을 받은 것이 제가 받은 군사교육의 전부입니다. 2년의 수업을 더 받았으면 러시아의 관례대로 대학 졸업시에 소위 계급을 받았을 텐데, 중간에 탈락했습니다. 이유는, 수업때 장교에 대한 불복종이었습니다. 도저히 듣고 싶지 않았던 전술 강의때 불교 관련 책을 읽다가 "책을 덮으라"는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탈락된 후에, 저는 '군대'라는 망령 밑에서 계속 살았습니다. 석박사 과정을 1년동안 빠짐없이 쭉 해왔고, 결국 박사로서의 (병역)면제권을 얻었지만, 그전까지는 약간이라도 공부를 늦추고 딴 일을 했다면 아마도 끌려갔을 겁니다(또는 양심적 거부를 해서 재판 등의 고생을 했을 겁니다: 러시아 헌법에 양심적 병역 거부의 가능성이 언급돼, 요즘 그건 러시아에서도 가능합니다).
최종 학위를 딴 1997년 1월까지, 군대에 대한 공포를 자나깨나 느끼고 살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의 중고등학교 동창 중에서 체첸 전쟁에 끌려가 학살의 경험에 가학 증세에 걸려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람도, 군대에서 폭력을 당해 미친 사람도 있습니다.
제 경희대 제자 중에서 특전사에서 가혹행위(!)를 당해 만성 신경질환에 걸려 평생을 망친 친구들도 있었구요. 특공 부대에서의 폭력에 익숙해져 가정 폭력을 일삼았던 제 여동생의 전 남편 등 군대의 각종 희생자들이 제 주변에서도 없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인연'(악연?)이면 약간이라도 언급할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제가 톨스토이처럼 장교 계급을 받아 장교 생활을 해보다가 폭력에 대한 싫증에 걸렸으면 조금 더 설득력이 강했을 겁니다."
| | ▲"오태양과의 만남, 법우(法友), 동지를 만난 느낌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이번에 귀국해서 오태양 씨와 처음으로 만났는데, 만나서 얘기해본 느낌은 어떻습니까?
"말 그대로 법우(法友), 동지를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그 분이 폭력에 대해서 하신 고민, 평화주의 신념의 성장 과정, 불교에 대한 해석 방법 등이 저와 너무 흡사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약간 지나친 표현인지 모르지만- 오태양 '거사'의 출현은 한국의 사회생활, 의식에서의 하나의 '혁명'을 의미합니다.
'승려가 군대에 가까이 가지도 말아야 하고, 불가피하게 간다면 3일 이상 절대로 군영에서 자지 말아야 한다'는 <사분율>(불교 계율)의 엄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군대에 끌려가는 사회에서, 근본 오계 중의 제1인 불살생 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불자가 생겼다니 그건 그야말로 '혁명'이 아닙니까?
이제서야 한국 불교에 진지성, 생명력이 생길 것 같습니다. 불교는 더 이상 '전통의 박물관'만으로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살아 숨쉬는 도덕적인 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태양씨의 재판이 19일 오후2시 서울지법 동부지원에서 열립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획기적인 사건인 만큼 제반 언론의 관심을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 지방 선거 결과, 한나라당이 대승을 거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세론이 많이 작용하지 않았는가 싶네요. 어차피 이 사람이 되는 데 이 사람 찍어야 하지 않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세론이라는 한국의 투표 행태는 아주 독특한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사람들마다 이념이나 계급적인 지향이 분명해서 특정인의 당락 가능성에 상관없이 개인이나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정당에 투표를 합니다.
아까 '관제민족주의' 얘기를 했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큰 곳, 지금 이길 정당에 한 표를 던지는 것은 결국 지배층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성향을 무시하는 거죠. 대세론은 사실 개인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다. 관제 민족주의의 기반이 바로 이런 겁니다. 자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무시하고 우리를 대표하는 큰 집단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 아닙니까?"
-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대세론보다는 현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 젊은층의 정치적 무관심과 지역주의 등이 중첩된 결과라는 평이 지배적이지 않은가요?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울산 같은 경우 분명히 노동자들은 송철호(민주노동당) 후보를 찍어야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한나라당을 찍은 것은 분명히 대세론이 작용된 게 아닌가요? 여기에 박정희 정권이 부추긴 지역주의도 악영향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 지금 박정희 얘기를 하셨는데, 박정희와 김일성을 '성공한 국가주의' '실패한 국가주의'로 같은 잣대에서 함께 비판하는 기류도 있습니다. 이런 기류에 동의하십니까?
"완전히 똑같은 둘은 없지만, 흡사한 점이 아주 많다고 봅니다. 학문적으로 얘기하자면 박정희가 의식했던 발전모델은 일본 메이지 천황 이후의 군국주의 모델이었고, 김일성은 마오쩌뚱의 통치모델도 약간 참고했지만, 일제의 북한 통치모델과 스탈린주의를 어울리게 했습니다.
두 사람이 본질에 있어 상통하는 점은, 둘 다 인권을 부정한 겁니다. 아니, 부정한 게 아니라 인권이 뭔지도 모르는 권력을 휘두른 겁니다. 김일성이나 박정희는 개인을 몰랐고 개인이 민족이나 국가에 소속돼야 정치적 생명이 부여된다고 생각했습니다"
- 요즘 탈북자 문제가 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선일보와 같은 언론사의 경우 박정희식 개발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정부가 탈북자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북한의 인권문제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친(親)박정희파가 친(親)김일성파를 성토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미국의 부시행정부도 그렇지만, 극우주의자들은 인권을 하나의 '방망이'로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옛날 냉전시대에 미국은 구 소련의 인권문제를 비판의 도구로 삼았지만, 미국의 영향권에 있던 남미나 중미권 국가들의 인권이 절대로 소련보다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조선일보가 미국의 전략을 그대로 전수 받아서 북한을 공격하지만, 한국 군대의 인권 현실이 북한의 그것보다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국 군대 내에 구타나 기합이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일제의 유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입니다"
- 책은 좀 많이 팔렸습니까?
"책은 5만부 정도 팔렸다고 하던데요. 수익금 전액은 일산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단체 '아시아의 친구'에게 돌렸습니다"
- 본인이 쓴 '당신들의 대한민국'에 대한 평을 다 읽어보셨습니까? 보수성향의 중앙일보에서도 호평을 했더군요.
"그 점은 저도 놀랐습니다"(웃음)
| | ▲"제 책에 대한 보수적인 신문들의 호평에 대해 저도 놀랐습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그런데 이제 또 다른 책을 쓰려면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책에 썼던 글들의 절반 이상은 한국에서 경험한 것을 쓴 것입니다. 문제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도 교수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는 거죠. 그러니 언제나 나갈 수 밖에 없었고…."
- 한국에서 교편을 잡기 힘들다는 얘기입니까?
"글쎄요. 내가 교편을 잡는 건지, 교편이 나를 잡는 건지 나도 헷갈리네요.
송복 교수가 정부한테 할 말 다했다고 하지만, 정작 교수들은 대학 주인한테는 할 말 절대 못합니다. 대학교 주인이 정부를 싫어한다면 정부한테야 할 말을 할 수 있겠죠"
- 지금 노르웨이에 계시지만, 책에서와 같은 용감한 주장을 한국에서 교수자리를 잡은 후 돌아와서 펼치라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죠. 이해관계가 안 걸리는 바깥에서 비판하는 것도 좋지만, 안에서 부대끼고 접촉하면서 훨씬 더 정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 박 교수가 한국에서 국적취득 시험을 볼 때 산유화라는 시의 저자(김소월)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고 하던데 그걸 몰라서 떨어진 사람도 있었겠네요?
"그 문제가 나온 것은, 대한민국에서 '무식한 외국 노동자'는 떨어져나가라는 뜻입니다. 이런 류의 문제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중국, 일본 같은 한자문화권 출신이거나 유럽-미국 출신으로 연세대 어학당같은 곳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어느 정도 익힌 사람들, 한국 정부가 이 두 그룹 이외에는 국적을 별로 안 주려고 합니다.
한국이 외국인에 대해 엄청 차별적입니다. 네덜란드의 백인 거스 히딩크 감독은 국민영웅으로 착 올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노예생활하고 있고…. 굉장히 서열적입니다"
- 박 교수의 경우 부인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국적취득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점도 있죠.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귀화하기 위해서는 재산이 2천만원 이상이어야 했는데, 당시 제 재산이 그 정도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가집 재산을 빌려다가 메웠죠. 그러니까 돈 있고 교육받은 사람만 우리나라 사람돼라. 이 얘깁니다"
-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한국인 부인과는 언제, 어떻게 만났고, 지금 부인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국제결혼에 대한 양가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1992년 제 아내의 러시아 유학시절에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만났습니다. 저는 아내가 될 사람이 다녔던 국립음악원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맡았던 인연이 있습니다. 아내의 모든 점들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닙니까?
저는 아내에 대해서 '이런 점 저런 점'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러시아의 제 가족들은 본인의 문제라 별다른 간섭이 없었으며(그게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처가에서도 다행히 저를 좋게 봐준 셈입니다. 약간의 당황함이 있었겠지만, 우리가 결혼했던 1995년에도 국제화는 이미 대세였습니다"
- 박교수께서는 "나는 한국인이지만 지금 살고있는 노르웨이는 이렇다"라고 노르웨이를 추켜세울때 "그럼, 노르웨이에 가서 사십시오"라고 냉소적으로 쏘아붙이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제가 예컨대 노르웨이 학생들이 교수에게 언제나 반박할 권리를 갖고 있다든가, 노르웨이 노동자들이 교수보다 월급이 높다든가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국의 학생이나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회 모든 현상들의 계급적인 본질을 깨닫고 보수정당이나 관제 민족주의 (사실, 국가주의)에 얽매여 있지 않으면 - 즉, 계급적 이해 관계에 따라서 투표를 한다면 - 여기 한국에서 노르웨이 못지 않은 사회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노르웨이'라는 것이 특정국가라기보다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의해 만들어진 사민주의적 사회라는 보다 보편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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