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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남녀간의 낭만적인 관계, 행복한 결혼 생활, 단란한 가정. 이런 것들이 과연 그 답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사랑이란 모든 것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어떤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런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면, 어째서 우리는 현실 속에서 그토록 사랑때문에 괴로워하고 힘겨워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역사 속에서 '사랑'에 대한 생각이 언제나 한결 같았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관념들은 대부분이 근대 부르주아 사회 이후에 형성된 것들일 뿐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의 사랑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관념체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중세의 사랑도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는 많이 틀린 어떤 것이었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에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사랑'이 철저히 근대 산업사회의 산물임을 밝혀내고 있다. 사랑, 결혼, 가족 과 같은 문제들이 결코 개인적인 영역의 것들이 아니라, 산업사회에서의 노동력의 문제, 남성과 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역학관계 등의 '사회적인' 영역의 문제임을 그는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이야기되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고귀한' 내지 '모든 존재들의 간극을 메워주는 위대한' 사랑이란 그저 부르주아적 산업사회가 만들어내는 환상임을 울리히 벡은 지적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모든 개인들은 봉건적 전통으로부터 분리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개인화'이며, 비록 그것이 개인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동시에 그 개인들은 세상에 '홀로' 내던져지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독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홀로 내던져진' 개인들간의 결합을 중요시하는 관념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사실. 울리히 벡은 이런 사실들이 바로 오늘날의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랑'의 근간이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현실에서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랑은 개인적인 영역의 것이다'는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개인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 개인들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사회-경제적 구조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그런 사회-경제적 구조들과의 연관성이 같이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사랑에 대한 혼란'은 남녀 당사자들의 성격적인 결함으로만 치부되기 십상이다. 결국, 우리는 사랑의 본질 내지 현실을 보려하지 않은 채 '환상'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사랑과 결혼,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이야기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과연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왜 결혼을 해서 가족을 형성하는지. 이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의 삶과 우리 자신의 존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한다. 설령 정답이 없고, 그 정답을 추구하는 과정이 지독하게 혼란스럽더라도. 그러기에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인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많이 근대화되었다고들 한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화'를 수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의 사랑은 여전히 '봉건적인' 구조들-가족, 혈통, 지연, 학연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결혼(사랑)은 미친 짓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우리의 사랑에 대한 관념부터 먼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 시대의 사랑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영역'의 것인가. 울리히 벡의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보다 넓게, 그리고 깊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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