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8일 서울역에서 조계사까지 100여명의 승려와 조계종 신도들이 3보1배 기도 행진에 참여했다.
18일 서울역에서 조계사까지 100여명의 승려와 조계종 신도들이 3보1배 기도 행진에 참여했다. ⓒ 임경환
조계종 스님들과 신도, 환경운동가들이 북한산 관통도로를 막기 위해 고행(苦行)에 나섰다. '3보1배'(세 걸음에 절 한번)를 하면서 서울역에서 조계사까지 무려 4시간30여분 동안 기도행진을 벌인 것이다.

조계종 스님들과 신도, 환경운동가들은 18일 오전 10시 20분 서울역 앞에서 열린 입재식(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행하는 의식)에서 이번 3보 1배를 통해 "무한히 베푸는 자연에 감사하고, 국립공원을 파괴하는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고, 스스로 참회해 북한산 국립공원을 살리자는 의지와 염원을 다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은 6시간여동안 '3보1배'했다. 이날 수경스님은 '3보1배'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은 6시간여동안 '3보1배'했다. 이날 수경스님은 '3보1배'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 임경환
이날 입재식을 마친 수경 스님, 원성 스님, 문규현 신부 등 비구·비구니 승려 100여명은 여러 불자들과 함께 오전 11시에 서울역 광장을 출발해 오후 4시30분 조계사에 도착하기까지 '3보1배'하면서 '북한산 살리기' 기도행진을 벌였다.

3보1배는 문자 그대로 세 걸음 후 한 번 절하는 것으로 스님들이 염원을 담아서 기도를 시작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다. 이마와 팔꿈치, 무릎을 바닥에 댐으로써 자기를 한없이 낮추고 상대를 지극히 받드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북한산국립공원 살리기 3보 1배는, 첫 번째 걸음은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참회함이며, 두 번째 걸음은 스러져가는 뭇생명에 대한 연민과 위로, 세 번째 걸음은 자연과 뭇생명을 살리겠다는 굳은 의지이며, 일 배는 위의 세 걸음을 통한 참회와 소원을 성취케 해달라는 기도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서울역과 조계사 사이의 거리는 약 6km. 스님들이 '3보 1배'를 한 번 하면서 이동하는 거리는 2m도 채 안 된다. 적어도 3000번 이상은 아스팔트 위에 이마를 대고 절을 해야 하는 고단한 행진이다.


관련
기사
북한산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공사 저지

'기도행진'의 선두에는 '자연에 감사, 정부 각성, 스스로 참회. 북한산 국립공원 살리기 3보 1배'라고 적힌 현수막을 든 신도 2명이 앞장을 섰다. 그 뒤에는 20개의 만장이 줄을 이었고, 만장 뒤에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지산 스님을 선두로 한 60여명의 '3보1배' 기도단이 뒤따랐다. 스님들뿐만 아니라 신도, 환경운동가들도 고단한 행렬에 참석했다. 기도단 뒤에는 20여 명의 노스님들과 30여 명의 신도들이 뒤를 이었다.

특히 지난 3월 18일 LG건설과 (주)서울고속도로 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해 허리를 다친 성타스님은 허리가 완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보1행' 행렬에 참석하기도 했다.

'3보1배' 행렬 왼쪽에는 경찰들이 교통을 통제하기 위해 배치됐고, 양쪽에는 환경단체 회원들이 피켓과 현수막, 전단을 이용해 '북한산 관통도로를 저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자리잡고 있었다. 행렬단 맨 앞에는 승려들이 쓰러지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응급차를 대기시켜 놓았다.

행렬단은 목탁소리와 함께 3보를 한 뒤 징소리가 울리면 그 자리에 멈춰 절을 한다. 절은 이마와 팔꿈치,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뒤, 손으로 땅을 짚고 자리에 일어나 합장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도로위에서 절을 하는 스님의 머리위에 물을 부어주고 있다.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도로위에서 절을 하는 스님의 머리위에 물을 부어주고 있다. ⓒ 임경환
오전 11시에 서울역을 출발한 '3보1배' 행렬단은 30여분이 지나 LG건설 앞에 도착했다. LG건설 앞에 도착한 행렬단은 LG건설을 향해 20배를 했다. 20배는 조계종이 먼저 나서서 우리나라에 있는 20개의 국립공원을 보호할 것을 선언함과 동시에 '개발과 편리'를 이유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국립공원을 파괴하는 대기업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승려의 이마에 흐른 땀을 수녀가 닦아주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나 남대문에 도착하자 몇몇 승려들은 더운 날씨탓인지 탈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옆에서 따라가던 신도들이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승려에게 달려가 흰 수건으로 땀과 이마에 묻어있는 흙을 닦아주고 탈진 방지를 위해 죽염물을 건넸다.

오후 1시 35분. 기도행진을 시작한 지 2시간 30분이 지나 명동에 도착했다. 승려들은 몇개의 지하도 계단을 지날 때에는 옆쪽으로 절을 하기도 했다.

'3보 1배' 행렬의 속도는 서울역을 출발할 때보다 훨씬 느려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이 더위에 웬일이야", 수녀들은 "마음이 아파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같이 행진을 하던 녹색연합 최승국 협동사무처장은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정말 못 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스님들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일부 환경운동가의 손에 들려 있던 피켓은 어느새 승려들의 더위를 식혀주는 부채로 변해있었고 때로는 햇볕가리개 역할을 하기도 했다. '3보1배' 행렬에 동참한 '사랑의 시튼' 소속 오영수 수녀는 스님들의 고행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기도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승려들의 머리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어깨를 주물러주기도 했다.

한 수녀가 승려의 뒷머리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있다.
한 수녀가 승려의 뒷머리에 맺힌 땀을 닦아주고 있다. ⓒ 임경환
설악녹색연합대표 박그림씨는 "설악산이 북한산과 많이 떨어져 있지만 북한산이 아프면 설악산도 똑같이 아프다고 판단해 '3보1배'에 참석하게 됐다"면서 "'3보1배'를 하면서 언제쯤 내 얼굴을 아스팔트가 아니라 풀밭에 맞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기도단은 종각역에 위치한 국세청 앞마당에 도착하자 잠시 멈춰섰다. 사회자가 "이 곳이 직선거리로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고 말하자, 승려들은 청와대를 향해 절을 두 번 했다. 북한산 관통도로를 허가해 준 정부에 대한 승려들의 강력한 항의표시였다.

승려들의 기도행렬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던 이충헌(78)씨는 눈물을 훔쳤다. 이씨는 "눈물이 나요. 뭐라 말할 수가 없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그는 "북한산을 관통하지 않고 우회도로를 설치하면 10분 더 걸린다고 하는데, 10분 빨리 가는 것과 환경이 파괴돼 우리 후손이 짊어져야 할 피해를 바꿀 수 있냐"고 반문했다.

오후 3시가 지나자 드디어 '조계사앞'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갑자기 선두에서 행렬을 이끌던 수경스님이 엎드린 채 일어나지 못했다. 수경스님은 대기하고 있던 응급차에 실려 한국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조계사 앞두고 쓰러진 수경스님

약 4달 동안 북한산 농성장을 지켜온 수경스님은 '언제 용역깡패들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건강이 매우 나빠졌고, 전날에도 잠을 못 이뤄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설명이다.

수경스님의 빈자리는 '풍경'과 '거울'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던 원성스님이 채웠다. 원성스님은 계속 눈물을 흘렸고, 지산 스님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보였다.

비구니들이 '3보1배'가 끝난 뒤에 땀을 닦고 있다.
비구니들이 '3보1배'가 끝난 뒤에 땀을 닦고 있다. ⓒ 권우성
오후 3시 24분. 서울역에서 출발한지 약 4시 30분이 지나 목적지인 조계사에 도착했다. 조계사에 도착한 스님들은 대웅전 앞마당에 주저앉았고,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약 4시간 30분의 '강행군'을 마친 회룡사 종호 스님은 "스님들의 기도가 정부와 LG에 전달돼 무분별한 개발을 포기하고 우회도로를 채택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원성 스님은 "'3보1배' 구간 전체에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매연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암울한 느낌이 들었다"면서 "스님뿐만 아니라 신도, 환경운동가들이 고통을 참아가면서 '3보1배'를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마음 때문에 북한산은 절대 뚫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3보1배' 참석자들은 성명을 내고 "전국토의 뭇생명이 개발을 명목으로 자행되는 무분별한 파괴로 신음하고 있다"면서 "수몰민의 삶을 송두리째 수장시킨 댐이 '물의 무덤'이라면 새만금 방조제는 '갯벌의 무덤'이고, 무분별한 도로개설은 '산의 무덤'"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역을 출발한 스님들이 조계사를 향해 '3보1배'를 하며 기도행진을 하고 있는 뒷모습.
서울역을 출발한 스님들이 조계사를 향해 '3보1배'를 하며 기도행진을 하고 있는 뒷모습. ⓒ 임경환
'풍경'등의 책을 낸 원성스님도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이마에는 '3보1배'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
'풍경'등의 책을 낸 원성스님도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이마에는 '3보1배'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 ⓒ 임경환
스님들이 LG건설 앞에서 '20배'를 하고 있다.
스님들이 LG건설 앞에서 '20배'를 하고 있다. ⓒ 임경환
수경스님이 매우 지쳐있다.
수경스님이 매우 지쳐있다. ⓒ 임경환
 수경스님이 쓰러지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와 응급차로 옮기려 한다.
수경스님이 쓰러지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와 응급차로 옮기려 한다. ⓒ 임경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