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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부터는 신성한 영역이라네
통도사가 시작되는 당간지주가 우두커니 답사객과 불자들을 맞이한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선 채로.
ⓒ 권기봉
절에 부처의 형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성당에 가면 성모 마리아상이 있고 교회에 가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형상화한 것들이 신자나 방문객들을 맞는다. 그런데 사찰에 부처가 없다고?

다소 어폐가 있을 지 모르지만 양산 통도사엔 부처상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찰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 '있어야 할' 부처상이 온데 간데 없는, 그런 사찰을 찾아가려 한다.

우리 나라 전역에 퍼져 있는 사찰은 제각기 고유한 특성을 간직한 채 부처의 뜻을 전하고 있다. 즉 통도사와 같이 부처의 진신사리나 옷 등을 보관하고 있는 불보(佛寶) 사찰과 부처의 말씀으로서의 팔만대장경 등을 간직하고 있는 해인사 등의 법보(法寶) 사찰, 20명에 가까운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 등의 승보(僧寶) 사찰 등, 각 사찰은 불과 법, 승 중에 한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불법을 깨치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이때 통도사는 삼보 중에서도 부처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진신사리와 가사를 보관하고 있어 삼보 사찰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상징성에 부응하려는 듯 국내 어떤 사찰들 보다 큰 규모를 자랑하는 통도사는, 영축산 구릉에 동서 방향의 축을 기본으로 하여 조성되어 있으나, 특이하게도 그 축을 수직으로 가르는 남북 축이 각각 대웅전과 대광명전, 영산전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 지금으로부터 1357년 전
신라 선덕여왕 15년인 646년에 창건된 통도사는 긴 역사에 걸맞게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해 왔다. 사진은 일주문 앞에 자리한 부도밭.
ⓒ 권기봉
즉 동서 방향의 장축을 남북 방향 3개의 작은 부축이 가로지르는,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형국을 보이고 있다.

이때 각각의 부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을 천왕문이 있는 공간부터 편의상 하로전과 중로전, 상로전이라 구분하고, 이를 3차례에 걸쳐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하로전은 일주문으로부터 들어가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공간으로,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구역으로, 답사를 위해 버스에서 내리면 이내 당간지주와 부도밭, 일주문이 답사객을 맞이한다.

긴 역사(신라 선덕여왕 15년인 646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를 자랑하는 사찰답게 수많은 고승들의 부도와 부도비들로 채워져 있는 부도밭을 지나면 이내 우뚝 솟은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 성계로 통하는 다리
일주문 근처에 있는 삼성반월교로, 속계와 성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이 같은 다리의 홍예 가운데 부분 아래쪽에는 악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용두가 보이곤 하는데, 이곳 통도사 삼성반월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 권기봉
일주문은 이름 그대로 기둥들이 일렬로 죽 늘어선 문으로, 이는 '수많은 진리들이 곧 하나로 귀결됨' 혹은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단 하나의 진리'를 의미한다.

이때 일주문은 사천왕문이나 불이문과는 달리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그저 어느 산의 어느 절이라는 식의 이름이 붙게 마련인데, 이곳 통도사의 경우에는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는 편액과 함께, 규모에 걸맞게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고 쓴 해강 김규진의 편액이 함께 걸려 있다.

통도사가 자리하고 있는 영축산은 해발 1050m 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불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산이다. 즉 부처가 불법을 처음 설파한 곳이 마가다 왕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그리드라(鷲; 독수리)'라는 산인데, 그 산과 바로 이 통도사를 품고 있는 산의 모습이 서로 닮았다고 하여 영축산이라 이름한 것이다.

▲ 기둥들이 한 줄로 늘어서다
사찰의 3관문 중 첫 번째 문인 일주문으로, 한 줄로 늘어선 기둥은 '수많은 진리들이 곧 하나로 귀결됨' 혹은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단 하나의 진리'를 의미한다.
ⓒ 권기봉
특히 영축산은 부처가 법화경을 처음 설파한 곳으로 알려져 있고, 신선과 독수리가 많이 모여 살고 있었다는 설이 있다.

한편 일주문 왼쪽으로는 아치형으로 생긴 다리가 하나 있는데 삼성반월교이다. 대부분의 사찰에는 보통 이런 다리가 절 초입에 있게 마련인데 물을 건너는 기능적 의미보다는 종교적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경주 불국사의 경우 절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청운교와 백운교, 칠보교를 지나 자하문이나 안양문을 통해야만 했는데, 이들 다리 밑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즉 기능적인 의미로 이런 다리를 놓았다고 생각하면 이는 어딘가 어색하게만 보일 것이다.

▲ 악귀들은 통과하기 힘든 바로 그 문?
지국천(持國天)과 광목천(廣目天), 증장천(增長天), 다문천(多聞天) 등 네 명의 천왕이 사악한 무리들의 출입을 막고 있는 천왕문으로, 사찰 3관문 중 가운데 문이다.
ⓒ 권기봉
그러면 이때의 '종교적 의미'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삼성반월교와 같이 절 초입에 놓인 다리는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의 세계와 진리의 땅인 피안정토를 구분하는 경계이자, 그 두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치 궁궐의 정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금천교가 속세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왕권의 영역을 구분하듯.

물론 통도사 삼성반월교의 경우에까지 이 같은 해석을 붙이기에 무리가 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통도사의 경우에는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도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으로 갈 수 있는 형태, 즉 통도사의 다리는 문들 사이에 놓여진 것이 아니라 문과 문을 이어주는 길옆의 개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 서쪽과 남쪽을 책임지마
오른쪽의 광목천은 서방을 수호하는 천왕으로 보탑을 쥐고 있어야 하나 사진에서는 보탑이 보이지 않고 오른손의 창만 보일 뿐이다. 한편 왼쪽에서 용과 여의주를 각각 손에 쥐고 있는 천왕은 증장천으로 남방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권기봉
그런 일주문을 지나 그다지 좁지 않은 길을 오르면 이내 사천왕문이다. 사찰에 놓여 있는 세 개의 문 중 가운데 문인 사천왕문은 말 그대로 문 안에 네 명의 천왕이 서있는 문이다.

이때의 사천왕은 지국천(持國天)과 광목천(廣目天), 증장천(增長天), 다문천(多聞天)인데, 각각 사방을 수호하는 동시에 불법으로 귀의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특히 그 어떤 악귀나 사악한 무리가 와도 굴복시킬 수 있을 만큼의 우락부락한 인상과 천왕들이 들고 있는 지물들이 서로 달라 흥미롭게 느껴진다.

▲ 사물이 한 데 어울려
법고와 범종, 운판, 목어가 설치되어 있는 범종각이다. 보통 법당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통도사도 예외는 아니다.
ⓒ 권기봉
동방 지국천은 칼을 들고 있고 서방 광목천은 보탑을, 남방 증장천은 용과 여의주를 각각 한 손에, 북방 다문천은 악기인 비파를 들고 있다.

천왕문을 나서면 이제 전각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먼저 사천왕문 남쪽에 자리한 범종각이 보인다. '범종각'부터 시작해 '범종루'나 '통도사' 등 유달리 많은 현판과 주련들을 달고 있는 범종각은, 법고와 목어, 범종, 운판의 사물을 설치해 놓은 건물이다.

예컨대 법고는 그 소리를 통해 속세의 모든 축생들을 제도하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양쪽에 각각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붙임으로써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있다.

▲ 중생을 제도하라
사물은 특정한 시각에 두드려 소리를 냄으로써 의식을 수행하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소리 자체가 온갖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한 소리 공양이다.
ⓒ 권기봉
또한 목어는 이름 그대로 나무로 만든 잉어 모양의 기구인데, 파낸 속을 나무 막대기로 두드림으로써 소리를 낸다. 그런데 왜 그 많은 동물들 중에서 굳이 물고기일까? 물고기는 알다시피 눈꺼풀이 없어 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항상 눈을 뜨고 있다. 바로 거기에 해답이 있다.

즉 수행자들의 잠을 쫓고 정신이 혼탁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한다.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옛날에 한 승려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게 되었고 이에 대한 벌로 등에 나무 한 그루를 업고 다녀야만 하는 물고기로 환생하게 된다.

▲ 한국 종의 전매특허
용뉴 부분의 중간 부분에 한국 종에서만 볼 수 있는 음통이 보인다. 음통은 아래·위가 뚫려 있는 구조로 음색을 맑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한편 용뉴 부분의 용 모양 조각은 범종의 다른 이름인 '경종'의 유래와 관련이 있다.
ⓒ 권기봉
풍랑이 치고 바람이 불 때면 등에 진 나무 때문에 고통에 힘겨워한 이 물고기를, 마침 근처를 지나다 이를 본 그 스승이 해탈을 시켜주었고, 해탈한 물고기는 훗날 이를 두고두고 잊지 않기 위해 자기가 등에 지고 다니던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한편 범종은 불교의 사물을 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리라. 그만큼 그 의미도 큰 것이어서, 범종을 치는 것은 곧 고통과 비탄에 빠진 중생들을 구제함과 동시에 불교의 진리 자체를 깨치게 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때 범종은 다른 말로 고래 '경(鯨)'자가 들어간 '경종(鯨鐘)'이라고도 하는데 범종의 윗부분에 장식되어 있는 용(포뢰)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 즉 포뢰는 동해에 사는 고래를 무척이나 무서워했기 때문에 고래 모양의 당으로 종을 치면 용이 놀라 큰 소리로 울부짖게 된다고 하여 용과 고래를 함께 표현한다는 것이다.

▲ 서방 정토를 향해
불교도의 이상향인 서방 정토를 의미하는 극락보전이다. 서방 정토가 서쪽에 있기 때문에 극락보전은 보통 동향으로 지어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절을 하는 신도들이 서쪽을 향하도록 하기 위해. 그러나 통도사의 경우에는 서향을 하고 있다.
ⓒ 권기봉
마지막으로 운판은 이름 그대로 구름 모양의 판으로서, 그것을 쳐서 소리를 내게 하는 기구이다. 원래는 식사시간을 알리는 도구로 쓰였으나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있는 예불을 알리는 데 사용되고 있다. 특히 구름 속에 해와 달 등이 배치된 운판은 공중 동물이나 허공을 헤매는 영혼들을 제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편 범종각 오른쪽에는 '아미타전'이나 '무량수전'이라고도 불리는 극락보전이 오랜 세월의 이끼를 머금은 채 서 있다. 불교 신자들의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는 서방 정토를 상징하는 극락보전은, 통도사의 경우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들고 있고 공포 역시 다포 양식을 취해 격이 높음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 은연중에 드러나는 격
극락보전이 의미하는 것은 서방 정토, 즉 불교도들의 이상향이다. 그 중요성을 말하려는 듯, 겹으로 두른 처마는 이 건물의 격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 권기봉
한편 극락보전 뒷벽에는 다른 어떤 절에서도 보기 힘든 벽화가 하나 그려져 있는데,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가 그것이다. 1868년에 제작된 이 불화는 극락세계를 향해 가는 중생들의 환희에 찬 표정을 아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선수와 선미가 모두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배에는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인로왕보살과, 미륵불이 이 세상에 나타날 때까지 속계에 머물며 중생들을 제도하는 지장보살로 추정되는 보살들이 앞뒤에 서서 중생들을 이끌고 있는데, 중생들은 승려들뿐만 아니라 여자나 갓을 쓴 남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 하로전의 중심이요
하로전 영역의 중심 건물인 영산전으로 부처가 불법을 처음 설파한 '영축산'에서 이름을 따 왔다. 석가의 일생을 여덟 장의 불화로 표현한 팔상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 권기봉
하로전 영역의 중심 건물은 다음에 살펴볼 영산전으로, 이름은 앞서 이야기한 영축산에서 따온 것이다. 왼쪽으로 극락보전과 오른쪽으로 약사전을 끼고 있는 이 건물은, 본존불로서 석가모니불과 팔상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팔생탱화는 석가의 생애를 여덟 폭의 그림으로 나누어 그린 것인데, 이 탱화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인 지 영산전을 '팔상전'이라고도 부른다.

▲ 여자들도 용선에 탔다네
영산전 동쪽 벽에 그려져 있는 '반야용선도'. 승려들과 남자들이 대부분인 용선에 특이하게도 여자들까지 함께 타고 있다. 유교의 지배가 강하다 못해 지나치기까지 했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이런 모습을 간직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 권기봉
영산전 오른쪽에 자리한 약사전은 이름 그대로 약사여래를 봉안하고 있다. 약사여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약합을 손에 들고 있는 여래로, 그 자체가 중생들의 병을 치유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등의 보살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생들이 병에 걸려 고통을 겪을 경우 직접 찾아 불공을 드리는 여래상이다.

특히 아직 종교가 없이 방황(?)하고 있는 이 답사객과는 달리 본인의 어머니는 집안이나 주위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하면 달려가곤 하는 곳이 바로 이 약사전이다.

▲ 이 연못의 의미는?
답은 노(No) 코멘트! 통도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이 있는 연못들이 통도사 경내에 몇 있다. 한편 연못 뒤로 보이는 건물은 약사전으로 약합을 한 손에 든 약사여래를 봉안하고 있다.
ⓒ 권기봉
한편 영산전과 약사전 사이에는 작은 연못이 하나 있는데, 연못은 통도사의 창건설화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그 이유를 서둘러 알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여기서 잠깐 숨을 고르고 이는 마지막 3부에 가서 살펴보도록 하고, 일단 만세루와 가람각, 응향각 등을 대충 둘러보고 약사전 왼쪽에 있는 문인 불이문으로 들어서면 2부에서 살펴볼 중로전 영역에 해당한다.

자료를 먼저 조사하고 떠나자!
'통도사'을 알차게 돌아볼 수 있는 사이트

▲ 수안스님
무작정 통도사에 찾아가기 보다는 먼저 자료를 조사해 가면 좋지 않을까 한다.

온갖 종류의 책들이 이미 서점가에 진열되어 있지만, 인터넷을 이용한다면 발품을 덜 들이고도 사전 정보는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으리라.

1. 통도사 공식 사이트 http://www.tongdosa.or.kr
2. 통도사 성보박물관 http://tongdomuseum.or.kr / 권기봉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신촌클럽(www.shinchonclub.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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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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