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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6일자 중앙일보 <문창극 칼럼>.

<중앙일보> 문창극 씨에게.

편의상 당신에 대한 호칭을 문창극 씨라고 하겠습니다. 신상명세서를 보니, 1948년생이신 당신은 <중앙일보> 회장 비서실장 겸 전략기획담당 이사에다 관훈클럽 총무까지 맡고 있더군요. 실장, 이사, 총무 등의 직책을 써놓고 보니 아무래도 어색한 것 같아 그냥 '씨(氏)' 자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지난 7월 16일자 <중앙일보>에 「NLL은 자유의 선이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문창극 칼럼'을 잘 읽었습니다.

당신의 칼럼을 읽으며 들었던 첫인상부터 말씀드려 볼까요.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빨갱이'로 매도하는 '레드 콤플렉스'와 '안보 상업주의'의 광기, 국가이익의 이름으로 너무나 간편하게 진실보도를 외면하는 한국 언론의 '반언론적 초상'을 당신의 칼럼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분단시대의 상황 속에서 진실보도와 국가이익이 충돌할 때 한국 언론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고뇌의 계기를 마련해 주신 당신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은 칼럼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더군요.

연평도의 위태로운 진실게임/김정훈 기자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아니면 좌파 유령의 뿌리가 그렇게 깊은 것인가. 52년 전 발발했던 6·25와 지난 서해사태는 너무나 흡사했다."

이후 당신이 칼럼에서 주장한 것들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서해교전과 6.25는 너무나 흡사하다.
(2)6.25전쟁을 누가 일으켰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리며 혼란을 겪었는데, 북한과 (남한의) 그 동조자들은 북침설을 주장하거나 수정주의를 주장했다.
(3)서해교전 후 우리 어선이 월선을 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진 듯한 보도가 나왔고, 연평도 어민이 띄웠다는 정체불명의 컴퓨터 통신을 일부 방송과 신문이 대서특필했다.
(4)이런 주장은 6.25 북침설과 맥을 같이 한다.
(5)묘하게도 김대중 정부를 지지해온 친정부 매체들만이 이런 보도에 앞장섰다.
(6)북방한계선(NLL)에 대해 진보적 지식인들이 펼친 논리도 6·25 수정주의자들과 똑같은 발상이다.
(7)다음 전투가 발생하면 이번을 교훈 삼아 전술을 개발해 이기면 된다.
(8)NLL은 자유체제의 최후의 선이고, 그것이 흔들리면 북한이 노리는 인민해방전선이 시작된다.
(9)NLL의 외연이 북한 땅까지 넓어지길 바란다. 단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써 말이다.

그리고 당신은 다음과 같은 선정적 주장으로 칼럼을 마무리지었지요.

"이 선(NLL)이 무너지면 백령도·연평도 어민들도 대형(大兄)이 시키는 대로 붉은 꽃을 흔들어야 한다. 그것을 눈뜨고 보는 것이 진보이고 지식인인가."

문창극 씨.

물론 저는 당신이 늘어놓은 의견에 동감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의 주장이 '잘못된 근거'와 '인식의 오류'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주장이 '잘못된 근거'와 '인식의 오류'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저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구요? 그렇다면 제가 왜 당신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했는지 차근차근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우선 당신이 들었던 근거는 "(3)서해교전 후 우리 어선이 월선을 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진 듯한 보도가 나왔고, 연평도 어민이 띄웠다는 정체불명의 컴퓨터 통신을 일부 방송과 신문이 대서특필했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당신은 이를 '절대적 진리'로 설정한 뒤 "(4)이런 주장은 6.25 북침설과 맥을 같이 한다"고 단정지어 버렸습니다.

실명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물론 당신이 겨냥하고 있는 언론 매체는 MBC와 <한겨레> 등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당신의 주장대로 "서해교전 후 우리 어선이 월선을 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진 듯한 보도"를 했고, "연평도 어민이 띄웠다는 정체불명의 컴퓨터 통신을 대서특필"했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선 "서해교전 후 우리 어선이 월선을 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진 듯한 보도가 나왔다"는 당신의 주장과 관련 MBC의 보도를 봅시다.

MBC는 서해교전이 발발한 6월 29일 수많은 꼭지의 뉴스를 통해 사건의 정황, 정치권과 해외의 반응 등을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아울러 '북한의 의도는 무엇인가'라는 꼭지의 뉴스에서는 '고의적 도발'의 가능성과 '우발적 사고'의 가능성을 동시에 제기함으로써 사건의 원인을 성급하게 한쪽 방향으로 단정짓는 것을 경계하는 보도태도를 보였습니다.

▲ 정박해 있는 어선들로 꽉찬 연평도 포구.
ⓒ 오마이뉴스 공희정
MBC는 이어서 7월 1일에는 '서해교전 생생하게 증언' '어민들 반성-꽃게 때문에' '어선 통제 안됐다' 등의 꼭지에서 꽃게잡이 어민들이 어로한계선을 넘어 북방한계선 가까이에서 조업을 하던 중 서해교전이 발생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어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MBC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선제공격은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7월 2일 '재도발하면 응징' 등의 꼭지가 바로 그런 주장을 담은 것들이었지요.

결국 MBC의 보도는 "북한의 선제공격은 명백한 도발이고 잘못이다. 그러나 월선 문제도 이번 사태의 원인 중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물론 MBC가 이러한 보도를 하게 된 데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서해교전 당일과 그 직전 며칠 동안 우리 어선들이 조업구역을 벗어나 북상해서 조업을 했고, 해군 경비정이 그것을 통제하던 중 서해교전이 발생한 것"이라는 연평도 주민들의 제보가 잇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MBC는 기자들을 현지에 급파해 연평도 주민들의 제보가 사실임을 확인했고, 그렇게 취재한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도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사실'은 서해교전에 대한 국방부 최초의 발표에서 아예 언급조차 안 됐던 것들입니다. 더욱이 연평도 주민들이 MBC에 이러한 제보를 하기 전에 KBS에 먼저 제보를 했으나 묵살 당했다는 또다른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MBC가 국방부 최초의 발표에서 아예 언급조차 안 된 '기초적 사실'을 주민들의 제보와 기자들의 현지취재를 통해 밝혀내 보도한 것은 언론사의 정당한 보도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국민들은 MBC가 제공한 '새로운 정보'를 통해 서해교전에 대한 좀더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것을 일언지하에 "6.25 북침설과 맥을 같이 한다"고 단정지어 버리는 무례를 범했습니다.

문창극 씨.

이번에는 "연평도 어민이 띄웠다는 정체불명의 컴퓨터 통신을 대서특필했다"는 당신의 주장관 관련 <한겨레>의 보도를 봅시다.

그 전에 잠시 당신이 말한 "정체불명의 컴퓨터 통신을 띄운 연평도 어민"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물론 그 연평도 어민은 '연평총각'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김○○ 씨(연평도 어선 ××호 선원)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신은 혹시 <월간중앙> 8월호는 읽어봤습니까? 당신의 칼럼이 실린 <중앙일보>에도 <월간중앙> 8월호 광고가 실려 있더군요. 그리고 거기에는 '특종―연평총각 인터뷰' 기사를 소개하는 문구가 큰 활자로 뽑혀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정체불명"이라는 표현이 맞다면, <월간중앙>은 무슨 유령하고 인터뷰라도 했던 것일 테지요. 그러나 <월간중앙> 기자가 현장에서 인터뷰를 했고, '특종'이라고 자랑스럽게 강조까지 한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쓴 당신의 말이 틀린 게 분명합니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도 연평도 현지에서 '연평총각'을 만났습니다. '비공식 인터뷰'에서 그는 "세상이 무섭다. 평소 문제의식을 갖고 지켜봐 왔던 사실을 정리해 인터넷에 올린 것인데 무조건 빨갱이 취급을 하니 무섭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물론 그는 '평소 문제의식을 갖고 지켜봐 왔던 사실'과 6월 29일 당일에 있었던 사실을 섞어서 인터넷에 올림으로써 사람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일부 내용에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티'에도 불구하고 '연평총각'이 '정체불명'의 유령이 아니라 '실재인물'이었다는 '들보' 자체가 바뀔 수는 없을 터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정체불명"이라는 표현은 당장 철회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말한 '대서특필'도 '사실'보다 '편견'에 기대어 쓴 잘못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가 '연평총각' 논란을 기사화 한 것은 7월 3일자 사회면의 박스기사에서였습니다. 더욱이 기사 내용도 매우 신중하고 객관적이었죠. 한번 직접 읽어보시겠습니까.

"연평도 어민들의 무리한 조업이 북한을 자극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진위를 둘러싼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이런 논란은 지난 1일 오후 자신을 연평도 어민이라고 밝힌 한 인사가 교전 당일 상황을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열거하면서, '꽃게 흉년으로 인해 연평도 어민들이 북방한계선을 넘어간 적이 많다'고 주장한 것에서부터 불붙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인터넷 토론방 등에서는 '서해교전의 원인을 냉정하게 다시 살피자'는 의견과 '본질을 왜곡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상반된 시각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의 일원이었던 필자는 연평도 현장에서 이 기사를 쓴 <한겨레>의 석○○ 기자를 직접 만났습니다. 그는 "인터넷 공간에서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지만 아직 사실로 확인이 안 된 것이라 매우 신중하게 썼고, 그래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로 결론을 맺었다"면서 "그런데도 일부 언론이 사실 확인도 없이 대서특필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 기사는 실제로 다음과 같은 신중한 의견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더군요.

"네티즌 김미영 씨는 '북한이 경고사격 수준이 아닌 조준사격을 했다는 게 사안의 본질'이라며 '서해교전이 꽃게잡이에서 비롯된 국지적이고 우발적인 충돌이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큰 틀과는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몰아가서는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문창극 씨.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언론이 이런 식의 보도조차 할 수 없다고 아직도 믿고 있습니까? 도리어 당신이야말로 기초적인 사실 확인조차 없이 '느낌'과 '편견'만 가지고 난필을 휘두른 장본인이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이 설사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라 하더라도 저는 당신이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억압할 의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당신의 그런 주장이나 생각을 억압하려 한다면 당신을 위해 싸워줄 의향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저에게 고마워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마치 르펜의 극우적 정견이 천박한 편견과 오해로 가득 차 있더라도 그의 정당 활동 자체를 국가적 제도나 힘으로 짓밟아버리지는 않는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와 같은 수준의 생각을 제가 갖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문창극 씨.

저는 당신의 부실 투성이의 칼럼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와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읽을 수 있었으며, 그 대안의 모습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했습니다. 지금부터 이 주제와 관련해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분단시대를 사는 한국 언론(인)의 운명과 사명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특히 진실보도와 국가이익이 갈등하고 충돌할 때 우리 언론(인)이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와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영국이 수에즈 운하의 기득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 <런던 타임즈>와 <맨체스터 가디언>이 국가이익보다 진실보도의 입장을 취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뉴욕 타임즈>가 북베트남 폭격의 빌미로 활용하기 위해 미군이 일으켰던 통킹만 사건의 진실을 국방성 비밀문서를 입수해 폭로한 것은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사이비 고고학자' 우지무라 신이치의 구석기 유적 날조 현장을 몰래카메라로 포착해 보도함으로써 일본 고대사를 다시 쓰게 만든 것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다시 묻겠습니다.

사실에 입각해 보도한 <런던 타임즈>와 <맨체스터 가디언>은 적국 이집트를 지지한 것일까요? <뉴욕 타임즈>는 공산국가 베트남을 지지한 것일까요? <마이니치 신문>은 일본의 정체성을 부인할 것일까요? 그리고 MBC의 사실에 입각한 보도는 적국이자 공산국가인 북한을 지지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한 것일까요?

이런 질문도 덧붙입니다.

주민들의 제보를 제일 먼저 받고도 묵살해버린 KBS는 과연 참다운 언론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다시 묻겠습니다.

한국 언론(인)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북한과 관련한 보도에서는 사실을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요? 오직 국가기관에서 발표한 것만을 진실로 삼아야 하는 걸까요?

당신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문창극 씨.

둘째, 한국 언론(인)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레드 콤플렉스'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특히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좌파나 빨갱이로 몰아버리는 매카시즘적 보도태도와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왜 서해교전이 연평도에서, 그것도 6월에만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서는 제가 이번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지요. 연평도는 화약고(火藥庫)로 불리는데,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NLL의 문제입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당시 유엔사와 북한은 휴전선을 확정하면서 육상의 군사분계선만 결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해상의 군사분계선은 확정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후 유엔사령부는 NLL을 일방적으로 지정한 뒤 북한에 통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생각하고 있는 해상 군사분계선은 다릅니다. 여기에 서해교전의 구조적 원인(遠因)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것마저 부인하는 것은 언론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연평도의 어업 상황도 문제입니다. 어민들은 현재 빚더미에 올라 있습니다. 적게는 3억원에서 많게는 7억원까지 됩니다. 그런데 1999년부터 꽃게 풍년이 들었습니다. 어민들은 이것을 '멍청게'라고 부르더군요. 그래서 어민들은 지난 3년 동안 대대적인 투자를 했습니다. 참고로 어망 1개의 가격은 800만원입니다. 그것을 어민들은 30∼40개씩 바다에 설치해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올해 작황은 평년의 4분의 1에서 5분의 1로 줄어들 정도로 대흉년이었습니다. 더욱이 6월 30일은 금어기였지요.

연평도의 지리적 위치도 문제입니다. 연평도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한의 인천에서 뱃길로 4시간이 걸리지만, 북한의 해주에선 30분이 걸립니다. 연평도보다 한참 북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백령도에서 서해교전 같은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현재처럼 미봉식으로 해결하면 서해교전 같은 국지적인 군사적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얘기하는 언론을 향해 "이런 주장은 6.25 북침설과 맥을 같이 한다"고 공격했습니다. 당신은 칼럼에서 연평도 어민을 위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구조적 문제에 대한 논쟁을 봉쇄한 당신이야말로 연평도 어민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해교전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젊은 병사와 연평도 어민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분명하게 증언해 줍니다.

결론적으로 당신의 '문창극 칼럼'은 현장 확인 없이 책상에 앉아서 쓰는 '게으른 글쓰기'가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필연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더욱이 당신은 '인식의 오류'와 '극단적 단순화'로 상대방에게 '붉은색 칠하기'를 시도하는 매카시즘적 보도태도까지 보여주었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니 너는 친북이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일부 네티즌들의 말마따나 매카시와 르펜의 사고방식을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과 보도는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서해교전 보도에서 <경향신문>이 취한 '어정쩡한 자세'가 그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줍니다. <경향신문>은 월선조업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선주협회의 공식문서(조업구역 및 적색선 이탈 어망 철거 계획안)를 입수하는 개가를 올리고도 이를 크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독립신문'으로서 '주류언론'과 다른 목소리를 내겠다던 <경향신문>조차 당신과 같은 극단주의자들의 사상공세 속에서 피해의식을 갖고 몸을 사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창극 씨.

셋째, <중앙일보>식 '안보 상업주의'의 폐해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저는 당신이 했던 주장을 <조선일보>가 했다면 특별히 문제삼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남북의 갈등을 부추겨 '적대적 의존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남북의 강경파와 기득권을 옹호하려 하는 신문인 줄이야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와는 다르다는 것을 수시로 강조해 오지 않았습니까?

우선 <중앙일보>는 2002년 1월 1일자 신년사에서 "단순과격형 정치언론"을 극복하고 "갈등과 분열이 아닌 화해와 통합의 중재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신년특별기획 '업그레이드 코리아'에서는 "국가예산 1%를 대북지원에 쓰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으며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자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대북 관련 보도에서만은 <조선일보>식의 '단순과격형'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읽혀졌습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도 북한을 지원하는 것은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에 대한 투자라고 강조했습니다. 2001년 9월 4일에는 사원들에게 "<조선일보>를 보지 마라. <조선일보>를 따라가선 1등이 될 수 없다. 앞차를 추월하려면 차선을 바꿔야지 뒤만 따라가선 안된다"고 연설함으로써 <조선일보>와 상종하려는 일부 진보인사마저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2001년 3월 15일 미국을 방문해서는 "부시 행정부가 한국과 미국의 장기적 안정이란 관점에서 북한을 포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따끔하게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창극 칼럼'은 <중앙일보>의 선언이 모두 '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중앙일보>의 변화를 '기대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지켜봐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진심은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정작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서해교전 사태를 보도하며 <중앙일보>는 <조선일보>를 추월하기는커녕 졸졸 따라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당신의 칼럼은 그러한 '중앙 없는 보도'의 정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 저는 당신의 칼럼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앙일보>가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와 관련해 주장해온 선언이나 사업이 '이미지 장사'에 불과했구나.

그러나 당신과 <중앙일보>는 알아야 합니다. 남북관계, 특히 통일과 평화는 결코 '이미지 장사'에 이용되는 '유행 상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물론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이라는 유행가 가사가 있긴 하지만, 민족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당신이 이번 기회에 <중앙일보>의 기회주의적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냄으로써 <중앙일보>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사실 <중앙일보>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신문입니다. 우선 창간 주역 홍진기 씨는 일제 말기 친일 경력의 원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유당 말기에는 법무부 장관으로 <경향신문> 폐간 탄압과 4·19 발포 책임자 중의 한 명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언론사간의 '침묵의 카르텔' 때문에 큰 문제로 비화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1965년 창간된 뒤 이듬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당시에는 언론의 사명을 저버리고 삼성그룹을 철저하게 옹호함으로써 재벌신문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노출했던 전력도 있지요.

문창극 씨.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칼럼에서 "다음 전투가 발생하면 이번을 교훈 삼아 전술을 개발해 이기면 된다" "NLL은 자유체제의 최후의 선이고, 이 선의 외연이 북한 땅까지 넓어지길 바란다" 등의 주장을 펼쳤더군요. "단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써 말이다"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그것은 억지로 같다 붙인 사족(蛇足)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당신의 주장은 '전쟁불사론' 아닙니까? 저에겐 그렇게 읽힙니다. 그래서 드리는 제안입니다. 그래요. 우리 전쟁 한번 합시다. 그것도 아주 화끈하게 말입니다. 그 대신에 말입니다. 우리 사회 상류층들에게 촉구해 주십시오. 제발 먼저 도망가지는 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이 그 동안 얼마나 많이 속아 왔습니까.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자"면서 말끝마다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대통령, 어떻게 했습니까? 제일 먼저 자신과 고관들만 서울을 빠져나간 뒤 한강대교를 폭파시켜 수십만 시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습니다.

지금이라고 사정이 그리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말끝마다 호전적인 대북 강경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가진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따라서 전쟁이 나면 언제라도 미국으로 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또한 그들의 대다수 자제들은 일반인의 4배나 될 정도로 병역면제자가 많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손주들은 보통 원정출산으로 미국 시민권을 따놓은 상황이고, 그들 본인이나 형제들은 이중국적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죽이 척척 맞는 족벌신문 사주 일가의 병역면제율은 또 어떻습니까? 무려 일반인의 10배를 넘습니다.

가진 게 없기에 도망갈 수 없는, 이 못난 조국이나마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전쟁을 결사 반대합니다. 왜냐 하면 전쟁은 곧 민족의 공멸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좁은 국토에 10여 개가 넘는 핵발전소가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는 순간 수 백년 동안 한반도는 죽음의 재로 뒤덮일 것입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곳에서 생산된 공산품과 농산물은 어떤 나라에도 수출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문창극 씨.

제가 당신의 칼럼을 읽으면서 정말 절망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신의 주장에서 어떤 대안도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씨는 집권 당시 외국에서 북한의 테러로 10명의 국무위원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가 전쟁을 하자는 얘기는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전쟁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리어 그는 최근 "달빛정책이라도 내놓고 햇볕정책을 비판하라"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녕 당신은 제 나라 백성의 피를 손에 묻히고 권력을 잡은 독재자보다도 못한 주장을, 남북문제에 있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보도를 하겠다던 <중앙일보> 지면에 계속 발표할 생각입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2002년 7월 22일 광화문에서.

정지환 기자 씀.


* 이 글은 지난 7월 19일 CBS <변상욱의 시사터치>에서 방송한 '정지환의 인물파일'을 정리해 올린 것입니다. 방송내용은 CBS 인터넷 홈페이지 AOD에서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NLL은 자유의 선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아니면 좌파 유령의 뿌리가 그렇게 깊은 것인가. 52년 전 발발했던 6.25와 지난 서해사태는 너무나 흡사했다. 6.25전쟁을 누가 일으켰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렸던 이 나라는 서해사태에서 똑같은 혼란을 겪었다.

북한과 그 동조자들은 6.25를 놓고 북침설을 주장했다. 남쪽이 먼저 도발을 해 북쪽이 할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하나는 수정주의다. 6.25 때 북쪽이 남침을 한 것은 사실이나 남침할 수밖에 없는 내적인 상황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미 남쪽은 좌우의 대립이 극에 달해 내전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우발적인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됐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도발에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북쪽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려는 진보성향의 인물들이 내세우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남침은 역사적 사실이며, 특히 위와 같은 주장들은 소련의 붕괴 이후 모스크바의 사료(史料)에 의해 거짓임이 입증됐다.

***6.25때 北侵說과 발상 비슷

서해교전 후 우리 어선이 월선을 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진 듯한 보도가 나왔다. 연평도 어민이 띄웠다는 정체불명의 컴퓨터 통신을 일부 방송과 신문이 대서특필했다. 

우리가 6.25 때 북침을 했을 것이란 주장과 맥을 같이한다. 묘하게도 이 정권을 지지해온 매체들만이 이런 보도에 앞장섰다. 그 다음 나온 것이 북방한계선(NLL)의 문제점이다.

이 선이 "휴전협정에 따른 것도 아니고 한국과 유엔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기 때문에 국제법상 문제가 있다" "북한의 코앞에 있는 이 선 때문에 북한이 불편하니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등 마치 이 선에 문제가 있어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처럼 보는 시각이다.

주로 진보적 지식인들이 펼치는 이런 논리들은 "비록 북쪽이 저지르긴 했어도 북한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6.25의 수정주의자들과 똑같은 발상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번 사태는 북한의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백번 양보해 이 선을 다시 협상하려면 북한이 먼저 이같은 도발을 중지하고 남북화해에 충실해야 한다.

해군의 작전이 문제가 아니다. 전투에서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꼭 30년 전 나는 대학졸업 후 해군소위로 '59함'을 타고 바로 백령도 앞 이 수역 바다를 지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선제공격할 권한이 없다.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의 북진통일론에 겁먹은 유엔사는 북한과의 충돌을 무조건 피하게 했다(우리 해군은 공격용 무기인 잠수함을 가질 수 없었다가 최근에야 가지게 됐다).

때문에 북한의 선제공격에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늘 취약하다. 따라서 왜 작전을 못했느냐, 보복을 못했느냐고 따지면 해군으로선 답답할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지 않다.

다음 전투가 발생한다면 이번을 교훈삼아 전술을 개발해 이기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다.

나는 전사한 수병과 장교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백령도 앞바다는 파도가 세다. 심청이가 눈먼 아버지를 위해 물에 빠진 인당수가 바로 이곳이다.

당시에는 진해에서 출동해 보통 30일간 바다에 머물렀다. 나중에는 부식이 떨어져 수병들은 고춧가루.미원.소금을 섞어 맨밥에 비벼 먹었다.

지금은 먹는 것은 나아졌겠지만 그런 고생을 하며 우리는 이 선을 지켰다. 왜냐, 우리가 무너지면 백령도.대청도.연평도는 북한에 넘어가며, 그것은 바로 북한 해군이 인천 앞바다까지 진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해사태 혼란 묻어두나

그런 고생을 하던 우리 병사들을 마치 도둑 장례를 치르듯 소리 안나게, 신속하게, 쓸쓸하게 우리는 떠나 보냈다. 왜냐? 이 정부는 알 것이다. 왜 NLL문제, 우리 어선의 월선 얘기가 친정부 매체에서 나오느냐? 이 정부는 그 까닭을 알고 있을 것이다.

벌써 서해교전은 잊혀지고 총리 인준에 온 신문이 매달려 있다. 혼란은 정리가 안된 채 다음 기회의 혼란을 기다리며 묻혀가고 있다.

햇볕정책은 우리 체제를 지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동포로서 불쌍한 북한주민은 도와야 한다.

단 우리의 자유체제를 지키면서 도와야 한다. 그것이 흔들리면 북한이 노리는 인민해방전선이 시작되는 것이다. NLL은 자유체제의 최후의 선이다. 우리는 이 선이 북한 땅까지 그 외연이 넓어지길 바란다. 

단,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써 말이다. 이 선이 무너지면 백령도.연평도 어민들도 대형(大兄)이 시키는 대로 붉은 꽃을 흔들어야 한다. 그것을 눈뜨고 보는 것이 진보이고 지식인인가.

문창극 <중앙일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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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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