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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일본인들이 지은 거문도 등대. 거문도 등대를 가기 위해선 바다를 끼고 도는 바위 길과 동백꽃 군락지를 지나야 한다.
1905년 일본인들이 지은 거문도 등대.거문도 등대를 가기 위해선 바다를 끼고 도는 바위 길과 동백꽃 군락지를 지나야 한다. ⓒ 조경국
거문도는 작지만 볼거리가 많은 섬이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가슴이 뚫린다. 거문도는 거문도 등대, 보로봉, 신선바위, 기와집 몰랑, 거문리, 이해포, 이금포 해수욕장 등 대부분의 관광지가 서도에 몰려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하루정도면 충분히 걸어서 구경할 수도 있다. 하루 이상 머무를 생각이라면 도보로 서도를 돌아보는 것이 좋다.

거문도 등대 가는 길, 말이 필요없는 절경.

일본인들이 거문도을 어업전진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1905년 지은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동백꽃 피는 이른 봄에 왔다면 신선경이 따로 없었을 터인데. 구불구불한 산길을 걷다가 갑자기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촤~ 처얼썩" 암벽을 타고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뻬리리 뻬비쫑 베비쫑" 산새 소리가 완벽한 화음을 이룬다.

거문도 등대의 등대지기 조상훈 씨. 그의 할아버지는 해방후 일본인이 버려두고 간 등대를 판자집을 짓고 10여 년이나 관리했다.
거문도 등대의 등대지기 조상훈 씨.그의 할아버지는 해방후 일본인이 버려두고 간 등대를 판자집을 짓고 10여 년이나 관리했다. ⓒ 조경국
거문도 등대에 들어서니 눈이 부시다. 입구부터 늘어서 있는 직원용 숙소와 등대가 모두 흰색이다. 파란 바다와 잘 어울린다. 가끔 달력사진에서 보았던 지중해의 마을 일부분을 옮겨놓은 것 같다. 맑은 날이면 제주도가 아스라이 보인다는데 수평선 저편으로 안개가 자욱하다.

"등대를 지키는 일이 외롭긴 하지만 운좋게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죠. 사실 이곳 토박이거든요. 작고하신 할아버지께서도 해방 후 이곳을 지키셨죠. 제가 거문도 등대를 지킨 지는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여수시 관내에 있는 유인 등대는 모두 4곳인데 2년 마다 교환 근무를 합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사무실에 불쑥 나타난 불청객을 따뜻하게 맞아준 조상훈(29)씨는 상상 속의 등대지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등대지기라면 덥수룩한 수염과 바닷바람에 세어진 흰머리의 할아버지를 상상했는데 책임감이 넘치는 열혈청년이라니.

중학교 다닐 무렵 돌아가셨다는 조상훈씨의 조부 조용문씨는 해방이 된 후 일본인이 버리고 간 거문도 등대를 판자집에서 생활하며 10년 넘게 관리했단다. 답사 여행의 묘미는 이렇게 알려지지 않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옛 사람들의 인생사를 듣는데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뱃길을 밝히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고인에게 조의를 표한다.

거문리 해수욕장에서 만난 아이들

거문도 해수욕장에서 만난 이동하. 동하는 거문도 초등학교 2학년이다. 거문도 아이들에게 낚시와 수영은 기본이다. 간단한 줄낚시로 갯바위 틈에서 고기를 낚아내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거문도 해수욕장에서 만난 이동하.동하는 거문도 초등학교 2학년이다. 거문도 아이들에게 낚시와 수영은 기본이다. 간단한 줄낚시로 갯바위 틈에서 고기를 낚아내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 조경국
등대를 지나 올 때는 거문도 해수욕장엔 아무도 없더니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이들 서넛이 물고인 갯바위에서 줄낚시로 잔챙이를 낚고 있다. 미끼도 바위에서 떼낸 작은 고동인데 물고기들의 입질이 바쁘다. 귀신처럼 낚아내는 아이들의 솜씨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심심해서 낚시하러 왔어요. 학교 마치면 구슬치기도 하고, 낚시도 하고, 더우면 수영도 하지요. 저 수영 잘해요. 저 만큼 가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금 있다가 공부하러 가야하니까. 잡은 물고기들도 다 놔줘야겠네요."

거문도 해수욕장에서 만난 거문 초등학교 2학년 이동하(8). 말도 어쩜 그렇게 딱딱 부러지게 잘하는지. 바다가 놀이터인 동하와 친구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학교를 마치고도 여러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도시의 아이들에게 볼 수 없는 건강함이 넘친다. 바다와 더불어 놀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동하와 친구들도 어른이 되면 깨달을 것이다.

거문도에는 거문 초등학교 아이들의 놀이터인 거문도 해수욕장 뿐 아니라 이해포, 이금포 해수욕장도 있다. 내륙 연안의 해수욕장과는 다르게 이곳 거문도의 해수욕장은 물이 깨끗하다. 해수욕 뿐 아니라 감성돔과 참돔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것도 거문도만의 매력이다. 거문도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다가 낚시대를 빌려서 삼호교 아래 그늘에서 대물을 기다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400년 동안 이어져 온 거문도 어부의 애환담은 뱃노래

청색띠 제비나비. 청색띠 제비나비는 남해안 일대 도서지역에서 서식하며, 날개에 부메랑 모양의 청색띠가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청색띠 제비나비.청색띠 제비나비는 남해안 일대 도서지역에서 서식하며, 날개에 부메랑 모양의 청색띠가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 조경국
거문리에서 약 4km쯤 떨어진 서도리에 가면 거문도 뱃노래 전수관이 있다. 전남 무형문화재 1호인 거문도 뱃노래는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이곳 사람들의 애환이 녹아있으며, 놋소리·술비소리·고사소리·월래소리·가래소리·썰소리로 나누어져 배가 마을을 떠나 만선을 해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문도 뱃노래 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귀순(67)씨는 "뱃노래의 전통을 잇기 위해 거문 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방학 때면 거문도 뱃노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온다"며 "스물 세 명의 전수자들이 있지만 모두 생업이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이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거문도를 찾았다면 전수관을 찾아 400년 넘게 이어져 온 거문도 뱃노래 한 소절 배워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월래보자 월래 보자 그물을 당겨보세
월래보자 이 그물을
안 헝크러지게 어서 당그소
월래보자 헝크러지면 어장은 못하네
월래보자 뒤엣 사람은 그물을 챙기고
월래보자 임물 사람들 친친히 당그소
월래보자 팔을 뻗쳐서 힘차게 당그소
- 뱃노래 월래소리(그물을 당기며 부르는 소리) 중


보로봉도 좋고, 신선바위도 좋다.

해안을 따라 이곳저곳을 다 둘러보았다면 서도의 등허리를 따라 산행을 즐겨보자. 체력과 시간만 허락한다면 보로봉 280계단에서 시작해 서도리까지 산길을 따라가면 시간마다 변하는 바다 풍경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산 기슭에 핀 참나리. 참나리는 거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내륙보다 색이 진하고 아름답다.
산 기슭에 핀 참나리.참나리는 거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내륙보다 색이 진하고 아름답다. ⓒ 조경국
보로봉 280계단에서 약 1.5km 쯤 가다보면 까마득히 우뚝 솟은 신선바위를 볼 수 있다. 신선바위는 정상에 바둑판 모양의 돌이 있어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신선이 아니라도 이 정도 경치라면 세상일 제쳐두고 눌러 앉아 바둑 한판 두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바둑은 문외한이고 시간도 빠듯한 지라 신선바위가 빤히 보이는 곳에서 10분 동안 가부좌 틀고 분위기 한번 잡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산길을 걷다 보면 정성을 다해 쌓은 돌담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거문도의 인구가 1만을 넘었을 당시 감자, 고구마, 토란 등을 키웠던 밭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돌담은 보로봉에서 서도의 북쪽 녹산등대가 있는 곳까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짧은 시간동안 열심히 걸었던 이번 거문도 여행은 완벽한 혼자만의 여행이었기 때문에 더욱 값졌다. 인적없는 숲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와 동네 아이들만 놀고 있는 옥빛 맑은 해수욕장, 허물없이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과의 인연은 때이른 여행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값진 체험이었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면 거문도도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남들 보다 먼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1년에 한번 뿐인 휴가를 알차게 보내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신선바위와 조업중인 어선. 보로봉에서 기와집 몰랑으로 넘어가다 보면 해안 절벽에 50m 쯤 솟은 신선바위를 볼 수 있다. 주변 경관이 놀랄 만큼 아름다워 거문도를 찾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찾아가 보길 권한다.
신선바위와 조업중인 어선.보로봉에서 기와집 몰랑으로 넘어가다 보면 해안 절벽에 50m 쯤 솟은 신선바위를 볼 수 있다. 주변 경관이 놀랄 만큼 아름다워 거문도를 찾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찾아가 보길 권한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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