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불안한 동거? 노무현과 한화갑의 '찰떡궁합'은 옛말이 되었다. 둘 간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불안한 동거? 노무현과 한화갑의 '찰떡궁합'은 옛말이 되었다. 둘 간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책에 대해 말하려면 충분히 공부를 해야 하며 외형만 보고 발언해선 안된다."

얼마 전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때, 한화갑 대표가 노 후보를 향해 내뱉은 말이다. 노 후보의 발언이 있은 다음날, 한 대표는 이례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노 후보의 발언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고, 이는 곧 두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해석되었다. 물론 상황은 비공개회동을 거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햇볕정책을 둘러싼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기류는 심상치 않은 일로 받아들여졌다.

노무현과 한화갑. 지난 4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노무현 후보와 한화갑 대표 체제가 들어섰을 때만 해도 두 사람 사이에는 '찰떡궁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대선가도에서 서로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한 대표는 "정권재창출을 위해 대표로서 모든 것을 바쳐 노무현 후보를 앞세우고 끌어서 반드시 승리의 영광을 바칠 것을 약속한다"고 다짐했고, 노 후보 또한 당정분리 원칙에 따라 당은 한 대표 주도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련
기사
한화갑 "신당, 백지상태로 헤쳐모여 해야" 노무현 "재경선 수용하지만 ' 사퇴 ' 는 없다"

그러나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의 관계를 둘러싸고 여러 얘기가 돌고 있다. 특히 서로가 불만을 갖고 있다는 불협화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목을 끌고 있다. 한 대표는 사전협의 없는 노 후보의 돌출적인 행보에 불만스러워하고, 노 후보는 한 대표가 좀더 전폭적으로 자신을 밀어주지 않는데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7월 4일 노무현 후보의 '탈(脫)DJ' 기자회견, 햇볕정책 비판을 둘러싸고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 기류가 공공연하게 드러나기도 하였다. 민주당의 앞길과 관련하여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의미를 갖는 일들이었다.

'탈DJ' 여부를 둘러싼 딜레마

지금 두 사람 사이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다. 노무현 후보의 입장에서는 12월 대선을 의식한다면 탈DJ 노선을 추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민심이 현재와 같이 안좋은 상태에서 김 대통령의 계승자처럼 비쳐질 경우, 필패(必敗)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8·8 재보선 이후 노무현 후보가 신당을 추진한다면 그것은 명실상부한 탈DJ 정당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내에서는 쇄신파 의원들이 이에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이 여전히 호남당으로 인식될 경우 대선은 하나마나한 승부가 될 것이라며, 구동교동계와의 단절을 통한 새로운 정당으로의 탄생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민주당을 이끄는 사람은 '리틀 DJ'라 불리우는 한화갑 대표이다. '김대중 선생'을 떠나서는 그의 정치 역정을 설명할 수가 없다. 김 대통령에 대한 사상적, 정치적 의리로 따지자면야 누구도 한 대표를 앞서기 어렵다. 한 대표는 종종 사석에서 '김대중이즘'이라는 용어를 써왔다. 그에게 있어서 김 대통령의 사상과 노선은 하나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한 대표는 김 대통령의 사상과 노선에 관한 충실한 계승자이다. 이러한 그가 탈DJ 노선, 햇볕정책 비판에 발끈하고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더욱이 한 대표의 정치적 기반은 누가 뭐래도 호남이다. 그는 호남을 대표하는 차기 정치지도자로 자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구동교동계와 호남출신 의원들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좋지 않다 해도, 한 대표에게는 이들을 껴안지 않는 행보를 생각하기 어렵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 후보측 일각에서 나오는 구동교동계와의 단절은 한 대표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이다. 대선 득표 전략에서 있어서도 한 대표는 호남표 결집을 우선하고 있다. 일단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결집시켜 놓고 그 위에서 새로운 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 마디로 민주당과의 '단절'이 아닌, '계승과 발전'을 생각하는 것이 한 대표의 입장이다.

신당을 둘러싼 시각 차이

두 사람 사이의 이같은 시각 차이는 신당문제에 관한 구상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그동안 노 후보나 한 대표가 공히 신당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8·8 재보선 이후 민주당의 돌파구로서 신당창당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그리고 있는 신당의 성격과 내용은 상당한 거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후보가 그리고 있는 신당은 현재의 민주당에 비해 개혁적인 성격이 강화된, 이를테면 개혁신당과도 같은 것이다. 자신이 언급해 온 '정책구도 정계개편'이라는 명분에도 부합되는, 개혁세력 주도의 신당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내의 사정이 여러 가지로 여의치 않게 될 경우, 노 후보는 마지막 승부수로 이같은 개혁신당 창당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다만 이 경우 신당이 과연 집권가능한 정도의 세확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결정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이에 비해 한 대표가 말하는 신당은 민주당과 외부세력을 하나로 묶는 외연확대적 성격이 강하다. 민주당의 분열을 최소화하여 봉합시키고 여기에다가 정몽준 의원 등 외부세력을 참여시키는, '신장개업형' 신당이라 할 수 있다. 노 후보가 그리는 신당이 현재의 민주당과 단절적인 의미를 많이 갖는다면, 한 대표가 그리는 신당은 현재의 민주당에다가 플러스α를 만들어내는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8·8 재보선 후 한 대표의 선택은?

이처럼 노 후보와 한 대표 두 사람은 민주당의 앞길에 대해 서로 다른 지도를 갖고 있다. 물론 대선에서의 승리라는 최종 목적지는 같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길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차이로부터 지금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갈등이 드러났다가 진정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미묘한 기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8·8 재보선은 민주당에게 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호남지역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에게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고 있다. 선거결과가 나오자 마자 민주당내에서는 책임론과 후보교체론, 신당론 등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앞둔 마지막 권력투쟁이 전개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대표가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가 현실적으로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노 후보의 지지율이 하늘을 찌르던 지난 봄의 상황이라면 한 대표의 태도에 상관없이 노 후보는 자력으로 대선정국을 이끌고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대선 패배에 대한 우려가 당내에 확산되어 있고, 노 후보에 대한 지원분위기도 이전과는 크게 다르다. 노 후보가 쇄신파의 지원만 기대하고 상황을 돌파하기가 녹녹치 않다는 이야기이다.

친노(親盧)와 반노(反盧)세력 간의 대결이 팽팽한 가운데 한 대표의 선택은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만에 하나, 한 대표가 노 후보에게서 등을 돌리는 상황이 있게 된다면 노 후보는 세대결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서는 한 대표가 노 후보와 등을 지게 될 가능성이 커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근래 들어 노 후보에 대한 한 대표의 태도에 적지않은 변화가 읽혀지는 것은 사실이다. 전당대회 직후 한 대표가 노 후보에게 두 발을 다 담궜다고 한다면, 지금은 한발은 뺀 상태라는 분위기가 읽혀진다.

심지어 한 대표측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상황에 따라서는 노 후보 아닌 다른 대안을 고려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여건상 그 가능성이 그리 커보이지는 않는다. 노 후보가 아닌 다른 대안의 시도는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대표가 8·8 재보선 이후 있게 될 당내 권력투쟁의 공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길을 찾게될 것은 분명하다. 최근 들어 한 대표가 자신의 발언권을 강화하며 대표로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재보선 이후 당내상황에서 자신의 조정력을 극대화하려는 사전포석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일단은 분당(分黨)사태를 막고 당내 각 세력이 상생의 길을 갈 수 있는 접점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같은 정치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 민주당내의 힘은 급격히 쏠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한 대표는 그러한 꿈을 꿀 것이나, 그 현실적인 해법이 뾰족하지 않다는 점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노무현과 한화갑. 두 사람은 8·8 재보선 이후에도 잡은 손을 놓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되는 당내투쟁의 격화는 두 사람 사이에도 여러가지 미묘한 문제들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는 당분간 협력과 긴장이 교차하는 불안한 동거체제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민주개혁연대'의 눈치보기

민주당 재야출신 의원들과 쇄신파 의원들이 추진하는 (가칭)'민주개혁연대'가 8·8 재보선 이후 정식 출범하기로 하였다. 이 모임은 이상수·이해찬·장영달·김경재·신기남·조성준·이재정·이호웅·허운나 의원 등 9명을 준비위원회 실무위원으로 선임하여 출범 작업을 해나가기로 했다.

물론 출범 공식화가 갖는 의미가 적지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초 재보선 이전 창립 일정이 재보선 이후로 늦춰진 배경이 또한 눈길을 끌고 있다. 출범을 주도해온 의원들의 조기 창립론에도 불구하고 일정이 늦추어진 데에는 관망파 의원들의 유보적 태도가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8·8 재보선 결과와 그에 따른 당내 상황을 보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입장을 정하겠다는 것이 적지않은 의원들의 기류였다.

민주개혁연대는 8·8 재보선 이후 있게 될 민주당내 친노-반노 세력간의 대결에서 노 후보의 지원세력 역할을 하게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테면 비주류의 중도개혁포럼에 맞서는 당내 결사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내다보지 못할리 없는 여러 의원들은 일단 판단을 유보하고 상황을 지켜보려는 듯하다. 재야출신 의원들 가운데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있고, 한화갑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관망적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소신없이 대세가 가는대로 따르겠다는 일종의 기회주의·보신주의라는 지적이다. 민주개혁연대가 이같은 눈치보기 기류를 뚫고, 민주당의 변화를 선도하며 노무현 후보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 유창선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