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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핵심 관광 특구인 봉명동 이미 130여곳의 숙박업소와 300여곳의 유흥업소가 성업중이다.
유성핵심 관광 특구인 봉명동이미 130여곳의 숙박업소와 300여곳의 유흥업소가 성업중이다. ⓒ 심규상
"서울에서 총알 택시 타고 종종 온다. 저녁 9시쯤 접대할 손님들을 모시고 와서는 새벽까지 놀다 다시 총알택시 타고 서울로 간다. 차비를 포함해도 서울보다 접대비가 훨씬 싸게 먹히고 외지라 이것저것 신경쓸 필요도 없다" (39, 서울시 금천구 이모씨)

유성 온천지구. 밤마다 130여개의 러브호텔 간판이 휘황찬란한 불빛을 토해 내고 있다. 여기에 3백곳에 이르는 유흥주점과 단란주점까지. 지역주민들의 꿈인 세계적으로 이름난 '온천 휴양지'라는 이름대신 '전국적 향락. 퇴폐 문화의 온상지'로 엇나가고 있다.

유성구, "음란특구 방치 않겠다"

유성온천지구 내 유일하게 미개발상태로 남아 있던 마지막 봉명지구(13만 9천평)마저 러브호텔과 유흥시설로 뒤덮일 위기에 처해져 지역민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토지소유주들이 아닌 해당 행정기관간 불협화음으로 꼬여 있다는 데 있다.

일선행정기관인 유성구가 '러브호텔 난립을 막기 위해 대전시도 지구단위계획 변경 등 책임을 나눠지자'는 입장인 반면 대전시는 '구청장의 고유 권한으로 시에서 개입할 사항이 아니'라며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잇기 때문이다.

대전시와 유성구의 논란은 상업용지로 지정돼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끝낸 봉명지구내에 쏟아져 들어오는 러브호텔과 유흥주점 설치허가 신청을 어찌 할 것인가를 놓고 시작됐다.

논란이 일고 있는 구획정리가 끝난 봉명지구 유성구는 이곳에 러브호텔만 2백여곳이 들어설 경우 음란특구가 될 것이라며..
논란이 일고 있는 구획정리가 끝난 봉명지구유성구는 이곳에 러브호텔만 2백여곳이 들어설 경우 음란특구가 될 것이라며.. ⓒ 심규상
대전시는 지난 98년 1월 유성온천의 상징적 지역인 봉명동 일대 미개발 지역 전체(봉명지구)를 상업지역으로 도시계획 결정을 고시한 후 지난 해 11월 구획정리를 끝냈다. 문제는 러브호텔과 유흥시설만이 들어설 것이 뻔한 데도 세밀한 지구단위 계획 없이 사업지구 전체를 상업지역으로 해 놓은 데서 비롯됐다.

실제 사업이 끝나자마자 관할 구청인 유성구에는 건축허가 신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건축허가 신청을 받기 시작한 지 두 달 여만인 지난 2월말 현재 32건의 허가 민원이 접수됐다. 이중 29건이 러브호텔. 이미 19건은 건축허가가 떨어진 상태였고 9건은 허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성구는 이런 추세라면 264필지의 봉명지구 전체가 2백여개가 넘는 러브호텔로 뒤덮일 것이라는 판단 하에 고심하다 우선 건축법 제 8조 5항을 근거로 지난 3월 2일자로 '지구단위 계획변경 결정시까지 건축허가 유보'를 결정했다.

유성구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일단 유보조치라는 응급조치를 한 후 대전시와 협의해 러브호텔 난립을 막을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토지 소유자들과 만나 러브호텔 수를 적정선으로 조정해 볼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성구는 대전시에 곧바로 공문(3월 7일자)을 보내 '환락가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만큼 건전한 도시발전을 위해 온천, 관광, 휴양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유치될 수 있도록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요청했다.

대전시, "유성구에서 알아서 할일"

그러나 대전시는 3월 23일'지구단위계획 변경은 토지가격 차등 평가와 환지 계획 변경 등이 수반되어 현 시점에서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도시계획을 변경할 뜻이 없고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 대전시는 이어 '유성구에서 건축법에 따라 건축허가제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사안을 사실상 유성구로 떠넘겼다.

대전시는 지난 1일부터  유성구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이고 있다.
대전시는 지난 1일부터 유성구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이고 있다. ⓒ 심규상
게다가 대전시는 토지 소유자들이 유성구의 건축허가 유보 결정이 부당하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해 오자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건축허가를 유보한 것은 기본권인 사유재산권을 지나치게 제약한 위법 부당한 처분'이라며 '건축허가 유보처분을 취소한다'는 결정(6월 18일)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구청장, "대전시 편의적 발상에 절망감"

이때부터 유성구는 '당초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쪽이 대전시임에도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방안모색을 요청하자 이를 거부하고 구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태도는 무책임하고 행정편의적 사고"라며 대전시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섰다.

유성구는 이어 지난 달 24일 관내 5만9천여 가구와 1705개 종교단체·부녀회장 등 모두 6만2천여 통의 편지를 구청장 명의로 보내 러브호텔 문제를 놓고 시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병령 구청장은 편지글을 통해 '대전시가 행정편의적인 발상으로 유성을 음란의 늪에 빠뜨리는 행정심판을 한 것에 대해 절망감을 느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구청장은 이어 '양식 있는 시민들이 이를 시정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염 시장, "구청 특별감사, 서한문 작성 경위 조사"

이에 대해 염홍철 대전시장은 지난 1일 정례 기자간담회를 통해 "유성구 봉명지구에 대한 러브호텔 허가권은 구청장의 고유 권한으로 시에서 개입할 사항이 아니라"며 러브호텔 문제에 간여 의사가 없음을 못박았다.

봉명지구 인근에 장대동 아파트 단지와 충남대 등이 인접해 있다. 사진은 봉명지구 입구에서 바라본 충남대 정문
봉명지구 인근에 장대동 아파트 단지와 충남대 등이 인접해 있다.사진은 봉명지구 입구에서 바라본 충남대 정문 ⓒ 심규상
염 시장은 이어 "시가 봉명지구 건축허가 관련 행정심판에서 유성구청이 내린 건축허가 유보조치를 취소토록 한 것은 유성구가 건축허가 상 문제가 될 경우 개최해야 하는 건축심의위원회를 열지 않고 처리한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밝혔다.

염 시장은 또 "사실이 이러함에도 시에서 건축허가를 강요하고 있다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시민이 동참해야 한다는 서신을 시민에게 보내 혼선을 빚게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서한 작성 경위 등을 철저히 조사해 진의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실제 대전시는 지난 1일부터 감사반 3명을 유성구에 투입해 숙박업 건축허가 유보와 관련한 감사를 벌이고 있다. 시는 토지소유주들이 감사원에 제기한 민원과 관련 위탁조사 처리지시가 내려와 유성구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히면서도 주요 감사 항목에 ▲건축허가 유보 조치 사유와 적정 행정절차 이행 여부 등과 함께 ▲유성구청장이 구민에게 보낸 서한문 작성 및 배포 경위를 포함시켰다.

시민들, "머리 맞대도 모자란 판에..."

유성구 관계자는 "러브호텔 난립을 막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자는 제의에 일을 벌인 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구청장의 고유권한이라고 떠넘기에 급급한 처사가 러브호텔 건립에 힘을 실어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봉명지구 어떤 곳?

▲ 유성구청 담장에 걸린 한 종교단체의 러브호텔 반대 현수막
봉명지구는 유성온천의 핵심지역이다. 지난 93년 온천지구로 지정된 직후 94년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이 때문에 봉명동 일대에만 러브호텔 135곳, 유흥주점, 단란주점 3백여곳이 밀집, 성업중이다.

하지만 대전시는 침체된 유성관광특구를 활성화한다며 위락기능과 숙박기능이 복합된 대규모 집단시설을 유치한다는 계획 하에 99년 10월 봉명 지구 전체를 상업지역으로 지정,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시작했고 지난 해 11월 준공했다.

반면 유성구는 유성은 대덕연구단지와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대덕밸리가 위치해 있고 인근에 대덕 테크노밸리가 조성돼 있는 첨단과학기술 도시라며 도시이미지와 직결된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관광 특구라 하더라도 퇴폐와 향락 일변도로 치닫는 것은 적절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난 98년 봉명지구 개발계획 심의를 위해 소집된 대전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구 관계자가 포함되지 않은데다 환락가로 전락할 수 있는 우려 조차도 제기하지 않았다. 즉 당초 온천관광지와 연계된 대규모 위락단지 조성에 촛점이 맞춰졌고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판단한 것.

반면 유성구는 봉명지구 길 건너 장대동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고 불과 300여m 떨어진 곳에 충남대 정문이 위치해 있으며 한빛 아파트, 다솔아파트, 자연아파트, KAIST 등도 지근 거리에 위치해 있어 주거 교육환경에 악역향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 심규상 기자
이에 대해 대전시 관계자는 "이미 봉명지구는 사업지구로 지정되기 앞서 온천지구(1993년)와 관광특구(94년)로 지정돼 대규모 위락시설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 만큼 현실적으로 다른 시설이 들어서기 어려운 곳"이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대전여성환경포럼 김종남 사무국장은 "유성구가 봉명 지구를 전국 최대의 러브호텔 단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은 늦은 감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대전시가 일선 자치단체의 고민을 나누고 협조하기 보다 관계법과 법령 등 행정논리만을 내세우며 책임을 떠넘기고 뒷짐만 지고 있는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이어 "대전시는 지구단위 변경이 곤란하다거나 구청장 고유권한이라고 말하기 앞서 문제 해결을 위해 가능한 노력을 다하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성구는 오는 8월 중순 경 건축심의위원회를 열어 건축허가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토지소유주들이 대전시 행정심판에서 승소한 이후 행정소송까지 제기해 놓은 상태여서 심의위원회 결정 내용과 무관하게 문제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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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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