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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상담소 살인사건의 숨겨진 진실'이라는 기사가 나간 뒤에 독자들이 많은 의견을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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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소 살인사건 ' 의 숨겨진 진실

많은 독자들이 MBC의 선정적인 보도와 그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 뒤에 가려진 가정폭력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는 의견을 보여주셨다. 어떤 분은 가정폭력 희생자들을 위해 자원봉사라도 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주셨다.

이제는 남겨진 이들을 위해 할 일만이 남았다.그러나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희생자의 딸이 다니던 00고등학교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왜 전학을 시켜주지 않았는가'라는 비판글이 올라오자 '방학을 맞아 업그레이드 공사를 실시합니다'라며 아예 게시판을 닫아버렸다. 게시판 메뉴에는 싸늘한 눈사람 아이콘이 손을 흔들고 있을 뿐이다. 무관심과 외면을 상징하는 적절한 업그레이드가 아닐 수 없다.

'법대로 해라?'

교육공무원을 포함한 공직자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법률, 명령이다. 공직자들은 사태의 본질이 무엇이든간에 가치판단의 기준을 법에 따른 상부의 명령에 두지 않는가? 결국 법령을 바꾸지 않고서는 기계적인 공직자를 문제 영역으로 끌어내기가 벅차다. 가정폭력과 관련한 전학문제도 마찬가지다. 법령을 바꿔야 한다.

가정폭력에 무관심한 교육법령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가정폭력과 관련한 전학 사항을 초/중/고 교육단계에 따라 서로 다르게 규정한다. 초등학교의 경우 '가정사정' 등의 이유로 '교육환경'을 바꾸어야 할 때 '보호자중 1인의 동의'로 전학이 가능하다(21조 3항).

중학교는 가정사정과 어머니의 동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학생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교장이 전학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73조 5항).

한편 고등학교 전학관련 항목에서는 '교육환경', '가정사정', '보호자중 1인의 동의' 등의 언급이 전혀 없다. 오히려 친권자 문제를 들어 학생이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쉽게 피할 수 없도록 규정한 셈이다.

고등학교 전학 규정은 가정폭력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인문계 고등학교의 입학전형 지역 문제를 고려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전학재량권은 교장에게 있지만(89조 1항), 특정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 전학 결정권은 교장이 아닌 교육감에게 있으며, 이때 교육감은 거주지 이전의 경우에 한해서 전학 허용 어부를 고려한다(89조 2항).

여기서 거주지는 민법상 친권자, 후견인의 생활 근거지를 말하기 때문에(89조 4항)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살해 위협을 가하더라도 아버지의 친권이 지속되는 이상 자녀가 학교에 다니려면 아버지 곁을 떠나서는 안된다.

교육법은 학생이 행복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각종 환경과 조건을 규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가정폭력과 같이 치명적인 환경에서 학생을 어떻게 보호해야하는지 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학은 가정폭력과 직결되는 교육관련 사항인데 현행법은 전학과 관련하여 부계친권이 깊숙하게 반영되는 호주제도를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전학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친권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행 교육법 시행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식을 폭행하며 친권을 주장?

더구나 가정폭력으로 자녀를 괴롭히는 아버지는 친권자로서 권리를 인정받기 어렵다. 우선 민법 제909조 제2항은 "부모가 혼인중인 때에는 부모가 공동으로 친권을 행사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이어 제3항은 "부모중 일방이 친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때에는 다른 일방이 이를 행사한다"라고 규정한다.

자녀를 학대하는 범죄자로서 아버지가 친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머니가 자녀 교육을 위해 단독적인 친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민법 제913조의 규정이 말하는 친권자란 부양 권리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의무 역시 가진다. 의무를 짓밟고 권리만 내세우는 아버지의 친권을 인정해주어야 하나?

아버지가 아내를 폭행하거나 아이들을 학대하는 순간 그는 형법상 폭행죄, 학대죄를 범한 범죄자이다. 친권을 악용하여 범죄의 도구로 사용하는 자에게 아버지의 권리를 줄 수는 없다. 자녀를 보호하기는커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는 법적으로도 친권자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가정폭력, 신고와 법적 대응이 절실

문제는 가정폭력이 발생했을 때 빠른 신고와 법적 대응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법원에 의해 아버지의 친권이 제한되지 않는 이상 아버지는 계속해서 자녀의 교육 등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하고 법적 처분을 요구하면 아버지의 친권은 제한되고 어머니와 아이들은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폭력이 일어나면 그 즉시 증거와 정황을 명확하게 밝히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가정폭력은 현행법상 명백한 범죄이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는 가족 구성원을 포함한 누구라도 할 수 있으며(4조 1항),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반드시 출동해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5조 1, 2, 3항).

가해자는 형사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가정보호사건으로 인정되어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때 피해자는 가해자 처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검사는 이를 중시해야 한다(9조, 12조). 만일 가정보호사건이 법원으로 송치되었다면 판사는 사건 심리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격리, 접근금지, 위탁, 경찰서 유치 등의 임시조치를 할 수 있다(29조 1항).

그리고 마지막으로 판사의 사건 심리 후 보호처분이 내려지는데 이때 접근금지, 친권행사의 제한, 사회봉사, 보호관찰, 보호감호시설 위탁, 치료 및 상담 위탁이 시행된다(40조 1항).

가정폭력은 더 이상 '집안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법적 대응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어린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을 이용해서 가해자로부터 자녀들을 빨리 격리해야 할 것이다.

제도 개선과 따뜻한 관심이 있어야

아이들이 보호된 뒤에는 학업 등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피신한 자녀들은 전학이 쉽지 않아서 장기간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 이면에는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교육 행정의 문제가 있다. 가정폭력과 같은 학생들에게 치명적인 교육환경을 신중하게 배려하지 못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개정되어야 한다.

정부는 빠른 시일내에 관련 법령을 개정하여 중고등학교 전학 규정에 가정폭력 관련 항목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즉 가정폭력 때문에 보호자중 1인의 전학 요구가 있다면 학교와 교육청은 즉시 전학을 허용하고 전학갈 수 있는 학교를 안내해야 한다. 또한 학교도 가정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제1의 생활공간이다. 학교의 무책임하고 냉담한 반응은 가정폭력에 희생된 아이들에게 또 한번의 상처를 줄 뿐이다. 교육자는 교육자의 양심을 가지고 교육청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그들이 학업을 온전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겠다.

이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 글은 사건전 7월 보호시설인 창원 여성의 집 소식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이곳 "창원여성의 집"에 오게 된 지도 벌써 20여일이 넘어간다. 눈을 뜨면 보이는 푸른산과 나무, 주님이 주신 이 자연속에 엄마와 나와 동생은 평안과 안식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 곳에 오기 전 나는 아빠에 대한 무서움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작년 12월 말 아빠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엄마가 집을 나가신 후로 아빠는 나와 동생에게까지 폭력을 행했고 수 없는 폭언을 행해 왔다.

아빠와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싫고 괴롭고 지옥같았다. 그래도 아빠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아빠가 변화할 수 있도록 수없이 울며 기도하며 기다렸는데... 엄마에게 집에 온다는 편지를 받았는데도 더 무서워지는 아빠의 인간 이하의 모습에 나는 엄마가 와도 아빠는 절대로 달라질 수 없고 우리 가족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하루를 죽음의 공포 속에 지내던 중 학교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엄마에게 살려 달라고 말했다. 결국 며칠 뒤 나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아빠 몰래 동생을 데리고 이곳에 오게 되었고 이 곳에 계시는 선생님들의 사랑의 손길 속에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학교 전학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많이 걱정이 된다. 장래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해야할 중요한 시기인데 또 친구들과 어울리며 고등학교의 추억을 만들고도 싶은데... 아빠가 예전에 내가 다니던 학교로 찾아가 지금의 내가 있는 곳을 물을 때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게 문제이다.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 이런 경우 대응할 방법이나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빠에게서 벗어나 이곳에서 사랑하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지낸다는 자체가 행복하다.

"그러나 지금도 어디선가 가정폭력 속에 무서움과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창원여성의 집은 정말 천국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도 풍족하고 평안하다.

이렇게 좋은 곳으로 만들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과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창원여성의집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엄마와 나, 동생에게 아름다운 이 곳을 보금자리로 허락하신 주님께 또한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엄마와 동생과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우리를 잊고 새로운 삶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것을 난 믿는다. 지금의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해주신 이 곳의 많은 분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훗날 내가 처했던 어려움을 다른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이다.
/ 희생자의 맏딸

덧붙이는 글 | * 사건이 있은 뒤에 경남여성 1366의 발의에 따라 전국의 많은 가정폭력관련 단체들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동참한 단체는 다음과 같다.

 잠실종합사회복지관 까리따스여성쉼터/송파구립여성쉼터/화해의 집/가정폭력피해여성 쉼터 '등대의 집'/가톨릭여성의 집/대전가톨릭 가정폭력상담소/강원여성1366/부산가톨릭여성연합회/대구가톨릭여성의집/대구가톨릭 여성연합회/마산 따뜻한 쉼자리/가톨릭여성의전화/서울가정폭력 밀밭 상담소/마산가정폭력상담소/가정폭력 상담소, 쉼자리 전국협의회.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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