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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조사중간발표 기자회견에서 현장 지도와 고 허원근씨의 사망 모습을 담은 사진 등 브리핑 자료.
8월 20일 조사중간발표 기자회견에서 현장 지도와 고 허원근씨의 사망 모습을 담은 사진 등 브리핑 자료.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조선일보>는 28일 기사(허일병 부대원들 "조직적 은폐조작은 없었다")에서 ▲술자리에서 싸움이 없었다 ▲총기오발사고가 없었다 ▲사건이 은폐·조작되지 않았다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 이하 의문사위원회)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이를 위해 <조선일보>는 신원이 확인되는 부대원 13명 중 연락 가능한 9명을 인터뷰했다. 이 중엔 총을 쏜 당사자로 지목된 노모 중사가 포함되었는데 보도에 따르면 그는 "술자리가 다음날(8월 2일) 새벽 2시 30분쯤 기분좋게 끝났다"고 말했다. 또한 행정반에 있었다는 신모 상병은 "사고가 있었다면 20평 남짓한 막사 안에서 총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없다"며 "오전 9시 전후 집합 때 허 일병은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간 직후 의문사위원회는 브리핑 자료를 내고 "허원근 일병의 타살 의혹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원회는 "조선일보에 인터뷰한 모든 사람들을 조사했으며 우리에게 진술한 사람들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을 바꿨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문사위원회는 노모 중사의 진술와 관련 "그 동안 위원회 조사에서 비교적 일관된 진술을 해왔다"고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노모 중사는 "소총으로 설칠 때 ○○○이 진술인을 말린 것 같다" "아마도 총에 장탄을 하여 위협할 때 뒤에서 껴안은 것 같은데 그때 내가 오발을 하였는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의 진술을 2~3회 반복했다.

의문사위원회는 "중간발표는 관련자들의 추가 진술을 얻어내는 데 목적이 있었는데 언론 취재가 참고인들을 움츠러들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참고인들이 위원회에 신분노출을 항의하기도 했다"며 "위원회는 특정 언론사에 참고인의 신원을 제공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조사 진행 중이라도 핵심사안 밝혀라"

20일 중간발표 기자회견장에서 박래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과장이 모형 총을 들고 사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20일 중간발표 기자회견장에서 박래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과장이 모형 총을 들고 사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박효원
의문사위원회는 이날 브리핑 자료를 통해 "조사가 현재도 진행 중이므로 보도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다시 한번 언론에 요청드린다"고 당부했지만 <조선일보>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29일자 초판 사회면에는 관련 기사를 전날의 2배인 4꼭지로 늘렸다.

위원회는 "다음달 10일 최종 조사결과 발표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약속했지만 <조선일보>는 사회면 머리기사(의문사위 "허일병 타살 은폐조작 증거있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 안 해)를 통해 "위원회는 대대장의 은폐조작 지시 여부 등 핵심 사안에 대해서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며 진행 중 조사 내용의 공개를 요구하는 조급증을 보였다.

또한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당시 헌병대 조사와 부검 결과 등을 인용해 ▲사고 관련자 11명의 알리바이가 모두 성립됐다 ▲3발을 모두 다른 부위에 쏜 허일병의 (자살) 사격은 가능하며 타살일 경우 총탄 각도가 비슷하다 ▲허일병은 처음 1, 2차 총격에서는 치명상을 입지 않았으며 세 번째로 머리에 총탄을 맞은 뒤 사망했다며 사건에 대한 의혹을 추가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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