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18년만에 부대 간부에 의한 타살이 자살로 은폐된 정황이 일부 드러난 '허원근 일병사건'이 일부 언론의 비틀기식 보도와 관계자들의 진술 번복 등으로 진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www.truthfinder.go.kr, 이하 의문사위원회)는 2일 "지난달 10일 사건 발표를 할 때는 관련자들이 추가로 진실을 밝힐 것을 기대했으나 타살 정황을 부인하는 인터뷰가 나간 후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났다. 이제는 이들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의문사위원회는 이날 허 일병의 타살을 뒷받침하는 부대 관계자들의 추가 진술을 공개하고 "허 일병의 타살을 부인하는 현장 목격자들이 수시로 상호간에 연락을 취해 입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의문사위원회는 "이들이 사건 이후 상시적인 연락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나 작년 관련자 소환 조사를 시작한 이후 서로를 수소문해 사건 정황을 짜맞추는 진술을 하고 있다"며 "두 명의 사병이 어렵사리 입을 열어 타살 은폐에 대한 결정적인 진술을 했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제3자의 진술도 확보했다. 의문사위원회는 이들의 진술이 일관성이 있고, 진실에 부합된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의문사위원회는 그러나 두 사병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진술을 번복한 것에 대해 "어렵사리 입을 연 증인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당시 정황을 물으니 답을 회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언론 보도가 되려 진실 규명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허 일병(육군 7사단 3연대 1대대 3중대)은 1984년4월2일 새벽(2시∼4시 사이 추정)에 중대본부 내무반에서 술 취한 노모 중사(90년 원사로 전역)가 발사한 총에 맞았다"는 것이 의문사위원회의 발표인데, 위원회가 당시 헌병대 수사기록과 참고인들의 진술을 종합해 밝힌 4월1일 자정 이후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중대장과 선임하사, '접대부 문제'로 말다툼
- 김모 중대장과 장모 중위(16소초장), 노 중사(19소초 선임하사) 등 3명이 장모의 진급 축하 술자리를 가졌고, 김모는 술자리 도중 허원근이 준비한 안주가 부실하다고 중대장실에서 질책과 함께 허를 구타했다.
- 회식 도중 술에 취한 노 중사가 중대장에게 철책근무에 투입되기 전에 주점에서 중대장이 접대부를 난잡하게 다루었던 일을 지적한 것을 이유로 둘이 말다툼을 했다.
- "노중사가 취중 허 일병에게 총을 쐈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한 당시 중대원 이모, 전모(이하 당시 상병)씨 이외에도 이들을 뒷받침하는 증언 존재.
① 중대 인사계 박모씨
"사건 당일 오전 20소초에서 (오소리 등의) 쓸개를 먹고 있었는데, 2방의 총성을 듣고 중대본부에 알아봤다. 중대 사병이 '새벽 술자리에서 노중사가 술에 취해 내무반으로 나와 허원근에게 총을 쐈다'고 말했다"
② 14소초원 김모씨
"사건 당일 중대본부에 올라갔을 때 전모 상병이 '누군가가 허원근에게 총을 겨누었는데 허원근이 총을 잡고 피하려고 하다가 총이 발사되어 허원근이 죽었다'고 말한 것 같다"
③ 19소초원 권모, 정모
"노 중사는 사건 전에도 흥분한 상태에서 사병들 발 밑에 총을 발사해 한 사병이 눈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은 적도 있었다"
2. 대대장 "중대장 지시대로 움직여라"
- 신모 상병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오전 9시 전후 집합 때 허 일병은 살아있었다"고 말했지만 당시 대대 장교와 사병들이 "중대장으로부터 '중대 전령이 총기로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 대대장 전모씨와 연대 상황실에 보고했다"고 진술.
- 당시 연대장 김모씨도 "아침 7시간 조금 넘은 시각에 1대대장으로부터 3중대 전령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고 사단장에게 보고했다"고 진술.
- 1대대장 전씨와 보안주재관 허모씨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중대본부에 왔다. 당시 1대대 장교 송모씨는 "허씨가 상황실로 들어와 상황병에게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알려주어야지 왜 알려 주지 않았느냐'고 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대대장이 중대장과 선임하사를 혼내고 난 후 내무반으로 나와 '중대장 지시대로 잘 움직여라'는 등 몇 마디하고는 나갔다.
- 중대본부원들 일부는 김 중대장이 순찰을 나가기 전에 걸레를 가지고 허원근이 흘린 피를 닦았으며, 중대장이 순찰을 나가기 전에는 전모, 이모, 신모가 내무반 바닥을 물청소했다: 사건 당일 오전에 총성을 듣고서 중대본부에 왔던 일부 소초원들은 본부 주위에서 피를 목격하거나 중대원들이 물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을 목격했다.
의문사위원회는 누가 어떤 이유로 허 일병에 대한 2, 3번째 총격을 가했는가, 사건 은폐 조작에 어느 선까지 개입되어 있는가, 헌병대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수사 및 군 재조사 과정의 문제점을 향후 조사 과제로 남겨놓았다.
의문사위원회는 3일 강원도 화천 군부대로 내려가 현장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의문사위원회는 해당 부대에서 오후1시부터 2시간 동안 사망 상황의 재연, 총성 청취 실험 등을 벌이게 된다.
의문사위원회는 10일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지만 사건이 이미 공소시효(15년)를 넘겼고, 관련자들 상당수가 의문사위원회의 발표를 부인하고 있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는 진통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