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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딕슨 카아 하면 생각나는 것은 밀실과 괴기이다. 그처럼 많은 밀실 트릭을 창안한 작가가 과연 있을까. 또 그처럼 작품에 괴기의 취향을 가미해서 으스스한 작풍(作風)을 다듬어낸 추리작가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존 딕슨 카아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밀실에 관한 그의 집착이 좋았고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한 괴기의 취향이 나에게도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두가지 특징, 밀실과 괴기라는 특징은 그의 작품들을 상당히 독창적인 범주에 올려놓게 된다. 지난 번에 얘기되었던 <통>과 같은 도서형 추리소설과는 정반대에 서있는 작품들이 바로 딕슨 카아의 작품인 것이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비현실적인것이 사실이다. 현실에서 범죄가 일어난다면 누가 딕슨 카아의 소설처럼 복잡기괴한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를까.

물론 딕슨 카아의 작품에도 단점은 있다. 딕슨 카아는 반전의 효과를 노리기 때문인지 범인에 대한 단서를 독자들에게 충분히 제시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주로 사용하는 방법중의 하나가 인물의 '바꿔치기'인데, A라는 등장인물이 알고보니 B라는 인물로 거짓행세를 해왔다거나 죽은줄 알았던 인물이 사실은 살아있었다거나 하는 방법을 사용한 작품이 여럿있다.

처녀작인 <밤에 걷다 It Walks By Night>를 포함해서 <해골성 Castle Skull>,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 To Wake The Dead>, <마녀가 사는곳 Hag's Nook>등이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경우이다. 물론 <흑사장 살인사건 The Plague Court Murder>과 <화형법정>도 이런 경우에 포함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독자가 개연성있는 추리를 통해서 범인을 맞추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그 이유는 트릭이 절묘했다기 보다는 작가가 단서를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단지 암시와 복선을 통해서만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딕슨 카아의 작품을 읽을 때 중점을 두는 것은 내 나름대로의 추리가 아니라, 작가가 묘사해낸 밀실과 과거의 어두운 전설을 현대의 사건에 연관시켜서 전개해 나가는 작품의 분위기이다.

존 딕슨 카아의 작품들 중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꼽으라면 우선 생각나는 것은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Emperor's Snuff Box>이다. 알다시피 이것은 괴기와 밀실의 요소를 제거하고 순수한 트릭으로만 승부를 걸었던 작품이다. 여기에 사용된 트릭의 정체를 알고나서 머리가 뒤집히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런 트릭을 만들수 있었을까'하고 작가의 능력에 일종의 경외심을 품었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흑사장 살인사건>과 <화형법정>이다. 이 두 작품은 트릭이 뛰어나다기 보다는 존 딕슨 카아가 집착했던 두가지 소재, 즉 밀실과 괴기가 적절하게 어울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의 취향처럼 역사적인 사건에 상상력을 가미해서 현대의 범죄와 연관시키고, 작품 전반을 으스스한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작가의 연출력이 탁월한 것이다.

비내리는 어두운 밤에 흑사장의 한 구석에서 '흑사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형집행인의 저주에 관한 기록'을 읽는 주인공의 모습, 시체를 해부하기 위해 한밤중에 납골당을 파헤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서늘해질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화형법정>에 좀더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이 작품은 그 제목에 걸맞게 기소장-증거-논증-요약-평결의 5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소위 법정소설은 아니다. 중세의 역사에서 독살자의 재판장으로 사용된 법정인 화형법정을 모티브로 불사(不死)의 인간에 관한 전설을 현대의 살인사건과 연관시켜서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데,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기괴한 분위기는 압권이다. 비오는 밤, 천둥이 치는 밤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이 소설을 읽는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특히 에필로그 부분은 사람을 오싹하면서도 혼란스럽게 만든다. 마리의 독백이 사실이라면 그전에 명쾌하게 제시된 사건의 전모는 무엇인가.

존 딕슨 카아 선생의 작품은 하나의 그림이다. 하나의 풍경화다. 어두운 중세시절의 고성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두개의 달이 떠있고 흐느적거리는 대형시계들이 해골과도 같은 나무 여기저기에 걸려있는 그런 풍경화, 그안의 어디에선가 음산한 비명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그런 풍경화인 것이다.

화형 법정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엘릭시르(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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