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 충북 괴산군 증평읍에서 과수 농사를 짓고 있는 신아무개(61)씨는 최근 불어닥친 태풍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올해 가입한 '농작물재해보험'에 보상금을 청구했지만 받을 가망성은 거의 없다. 피해보상을 받으려면 피해량이 총수확량의 30%를 넘어야 하는데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일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보험에 가입하면 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농협 직원의 권유에 못 이겨 올해 초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신씨는 보험에 든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는 "이제는 두 번 다시 농협에서 추천하는 어떤 상품에도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농협에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사례 2 = 신씨와 같은 지역에서 과수 농사를 짓고 있는 이아무개(52)씨는 이번 태풍으로 총경작지의 70%(피해액 약 320만원 정도)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유는 이번 태풍 기간에 측정한 증평 지역의 최대풍속(5.2m/sec)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최대풍속(14m/sec)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이씨는 "사라호 태풍 이후 가장 센 태풍이 지나갔는데, 이번 태풍으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면 내 평생 보상받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며 허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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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로부터 농민을 보호해주겠다고 만든 농협의 야심찬 작품인 '농작물재해보험'이 막상 재해를 입은 농민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 제도로 인해 "농협이 자사 이익을 위해 농민들의 '흙 묻은 돈'을 이용하려 한다"는 농민들의 원성만 높아졌다. 이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면 일 년에 한두 번씩 불어닥치는 태풍의 피해를 조금이나마 덜어볼 수 있겠지'하는 농민들의 기대가 턱없이 높은 피해보상조건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최대풍속 14m/sec 이상 또는 최대순간풍속이 20m/sec 이상'
'총수확량의 15~30% 이상이 피해를 입어야 한다'
| | | 왜 최대풍속 14m/sec 이상인가? | | | | 농작물재해보험의 보상기준이 되는 최대풍속 14m/sec 또는 최대순간풍속 20m/sec는 폭풍주의보 발효 기준과 동일하다. 폭풍주의보는 평균최대풍속이 14m/s이상이고 이러한 상태가 3시간 이상 지속될 것이 예상되거나 또는 순간 최대풍속이 20m/s이상 예상될 때 발효된다.
농작물재해보험의 보상기준으로 폭풍주의보 발효 기준을 사용한 것은 우리보다 농작물재해보험제도가 먼저 실시된 일본에서 이런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4m/sec 정도의 바람이 농작물재해보험의 보상기준으로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보퍼트 풍력계급에 의하면 14m/sec 정도의 바람이 불면 나무가 전부 흔들리고 걷기가 곤란할 정도라고 한다. / 임경환 기자 | | | | |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과수농가 농민들이 태풍으로 인한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해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들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충족해 보상금을 받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 25개 충북 지역 가운데 '최대풍속 14m/sec 이상 또는 최대순간풍속 20m/sec 이상' 조건을 만족하는 지역은 7개에 불과했다. 7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과수를 경작하는 농민들은 아무리 큰 피해를 입어도 현 보험 약관에 따르면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
또한 피해액수가 총 수확량의 30%를 넘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액의 30%를 제하고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지급되는 보상액수는 많지 않다. 가령 총 경작지의 50%가 손해를 입었다고 가정을 하면, 일단 30%는 제하고 20%의 피해액만 보상해준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재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기준에 미달돼 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할 경우 환급이 안 되기 때문에 일시불로 납부했던 보험료는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고스란히 농협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증평에서 과수농가를 하고 있는 농민들은 하나같이 "약관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었다. 또한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농민들이 대다수였다. "내가 낸 돈을 못 찾아먹을 것이 뻔한데 가입해서 뭐 하냐"는 것이 그들이 보험가입을 거부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농민들에게 농작물재해보험을 권유했던 한 농협 직원도 "농작물재해보험은 현실성이 없다"며 "처음에 농민들에게 유용할 것 같아서 가입을 권유했는데 후회가 된다"고 털어놨다.
실제 보험 가입자 가구는 전체 가구수의 21.8%(1만8614가구)에 지나지 않으며, 전체 면적을 기준으로 하면 가입자 면적은 18.3%에 불과하다. 농작물재해보험이 농민들의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자료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농협중앙회의 인식은 안이했다. 농협 관계자는 "50년이 넘는 농작물재해보험제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아직 보험 가입률이 25.6%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는 실시한 지 2년도 채 안 됐지만 21.8%의 높은 가입률을 보이고 있다"며 사태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가입률이 낮은 것은 "농민들이 아직 보험에 대한 개념이 없고, 일시불로 많은 돈을 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단 1%의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보상해줘야 보험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단 1%의 재해를 입은 농가도 보상을 해줘야 한다면, 피해를 입은 모든 가구에 방문해 손해평가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대답했다. 결국 손해평가조사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재해보험에 가입한 모든 가구에 피해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얘기다.
농협관계자의 입장을 전해들은 신씨는 기자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농협이 재해보험 상품을 내 놓은 것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잖아. 농민을 도와주자고 만들었으면 최소한 피해를 입은 농가에게 조금이나마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겠어. 다른 보험사처럼 이런 저런 조건 붙여서 보상금 안 주려고 하면 안 되지. 이번에 불어닥친 큰 태풍에도 재해보험이 쓸모가 없다면 아마 농민들은 내년에 보험 안 들려고 할 거야. 빨리 약관이 개정돼서 농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험이 됐으면 좋겠어."
| | | 농작물재해보험은? | | | | 이 제도는 농민들(특히 과수 농가)이 태풍이나 우박 등의 자연재해를 입었을 경우 소득보전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 3월 17일부터 판매 개시한 것이다. 이 제도가 처음 실시된 작년에는 총 8204가구가 가입해 54억 8400만원을 거둬들여 13억 8000만원을 가입자들에게 지급했다.
시행 초기에는 사과와 배를 주로 생산하는 전국 40여개 군을 시범지역으로 지정해 시판했다. 그후 1년이 지나 사과와 배 이외에 포도, 귤, 단감, 복숭아를 농작물재해보험 대상품목에 포함시켰다.
보험료는 가입하고자 하는 과수원의 과일 총 금액(가입금액)에 위험료율을 곱하면 된다. 그 가운데 정부가 59%를 지원해 주고 농민이 41%를 지불한다. 보험료는 지역마다 재해 위험률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난다. / 임경환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