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들의 말씀을 거의 모른다
세상에는
금과옥조 같은
옛 성현들의 말씀이
차고 넘친다
배운 사람, 잘난 사람들은
옛 성현들이 남긴 말씀을
참 많이도 알고 있다
어떤 고명한 지식인들은
글을 멋지게 쓴다
그들의 글에서
옛 성현들의 말씀은
한껏 빛을 발한다
그래서 지식인들의 지식은
지식이 차고 넘치는 글은
더욱 현란하다
불행히도 나는 지식인이 아니어서
옛 성현들의 말씀을
필요한 만큼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 가난한 글에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너무 없어서
초라하고 썰렁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옛 성현들의 고귀한 말씀보다
내 삶이 더 중요함을!
말과 삶을 하나로 묶어주는
진실이 생명임을!
그리하여 나는 감히 소망한다
내 알지 못하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내 삶 안에서 꽃피어나기를!
지식인이 아닌 나는….
술 한잔 마시니
통풍과 당뇨의 협곡 속에서
늘 신장의 안위를 걱정하며
술을 멀리하며 산 세월도
제법 오래 되었다
술의 유혹을 사절하는 인내도
그리하여 이제는
겸허를 추구하는
느긋한 슬픔이 되었다
호기로웠던 지난날의
허허로운 향수 속에서
하루는 술을 마셔보았다
마른 논에 물대듯
목구멍 꽉 차게 넘어가는
막걸리 두 사발
뱃속에서 쏴 끓어오르는 쾌감
취기인가 몽환인가
내 눈에 이슬이 차 오르더니
세상의 모든 풍경이
두루 아름답게 보였다
머릿속에서 언어로만 떠돌던
감미로운 슬픔, 그것의 실체를
가슴 가득 안고 있었다
그리고 불현듯
며칠 전에 만난 한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담배에다가 술까지 외면하고 사는
오래 살 욕심뿐인 내가 딱해 보였던지
"그래갖구 어떻게 글을 쓴대유?
취흥이 바루 시흥 아니래유?"
그때는 그 말이 우습게만 들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맞는 말이네
취흥이 바로 시흥임을 절감하며
겹치마 같은 감미로운 슬픔을
허허로이 만끽하는데
느긋한 걸음 밑에서도
무상의 시간은 또
덧없이 흐르고 있었다.
신호 대기
신호를 받을 때마다
운전대에서 두 손을 떼고
잠시 기도를 한다
조급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주심에
감사한다
성급한 출발
빨리 가라는 재촉
장대한 경쟁의 행렬 속에서
신호등의 의미를 생각한다
저속으로 달리는 초보 운전자도
정속으로 달리는 모범 운전자도
쾌속 질주를 즐기는 겁 없는 운전자도
피할 수 없는 신호대기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나는 신호등을 본다
내 인생 자체가
늘 신호대기 중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오늘도
신호를 받을 때마다
두 손 모으고 기도한다
신호대기가 언제 끝날지 모를
그 날을 위해….
애써 구하지 않는다
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곤
가난한 마음 한가지였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라곤
하늘 우러르는 것뿐이었다
애초 물욕이 없고 이재에 어두우니
얻으려 하지 않았고
크게 배운 것이 없으니
큰 성취를 탐하지도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애써 구하지 않으니
구하지 않는 것이 실은 구하는 것임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구하는 것이 실은 잃는 것이요
구하지 않는 것이 실은 얻는 것임을
하늘과 땅의 이치를 헤아리듯 되새기며
나는 오늘도 애써 구하지 않는다
오늘만이 아닌
'내일'을 위해….
팔순 노모의 기도
아들이 글쟁이 행세를 시작한 때부터
어머니는
아들의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는 날을 소망했다
아들의 책이 엄청 팔려서
집 장만을 하게 되는 놀라운 상황도
어머니는 꿈꾸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어머니의 기도에는
그런 현실 소망도 있었다
이제 팔순이 다 되신 어머니는
여전히 TV 드라마를 즐겨 보시면서도
비좁은 집을 가끔은 한탄하시면서도
당신의 그 소망을 말하지 않는다
결국 꿈을 접으셨나 했더니
어머니의 기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음을 알고
슬며시 연유를 여쭈었더니
당신 사후에라도
아들 잘되기를 바라심이라고 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시려면
제가 끝까지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기도해 주세요
제가 글쟁이로서 성공하는 일은
제가 죽은 후에나 가능할지 몰라요
어쩌면 영영 적막 강산일지 몰라요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이 세상을 끝까지
올바르게 살 수만 있다면…
그 말에 어머니는 섭섭한 얼굴에
체념하는 기색도 있었지만
기도의 소망이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는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새롭게 희망을 머금은 모습으로….
상조회를 하며
친구들끼리
노친네를 모시고 사는 사람들끼리
상조회를 만들어
계절 모임을 하며
상(喪)때마다 상부상조하며
올곧게 살아온 세월도 어언 6년
스무 명 회원 중에서
별로 길지도 않은 그 세월에
상을 당해 재급을 타간 사람이 벌써
절반
나머지 절반은 순번 모를 대기 상태
세월은 지금도 시시각각 흐르고 있고
잠시 유예되고 있을 뿐인 그것은
불확실 속에서도 너무도 확실한 것
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부터 이미 마련된
숙명적 슬픔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발걸음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내 슬픔은 마지막 번이 되기를
은근히 소망하는데
이미 예전에 재급을 타간
한 친구의 재미로운 말
"내 아들놈도 상조회를 헌디야, 날 지목해갖구"
허허, 벌써…
어느덧 가을로 접어든 우리의 계절….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에 지은 10편의 시들 중에서 8월 30일 다섯 편을 선보인데 이어 나머지 다섯 편을 오늘 올립니다. 아울러 지난해 지은 미발표 시 한 편도 함께 올립니다. 역시 나의 '세상 사는 이야기'이고, 부분적으로는 '참된 세상 꿈꾸기'와 부합하는 내용이니, 제 글을 즐겨 읽으시는 분들께는 참고가 될 듯싶어서입니다.
저의 최근의 시작(詩作)에는 재미가 있을 듯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그 에피소드와 7년 전의 시작 관련 에피소드 하나를 연결 지어서 다음 기회에 독자님들께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소박한 또 하나의 '사는 이야기'이기도 하니, 독자님들께 미소를 안겨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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