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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우 교수는 모자입상을 "8등신 미녀로 고쳐라"라는 재단 이사장의 지시를 거부해 지난해 12월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세종대학교(총장 김철수)가 재단 이사장 주명건씨의 지시를 거부한 한 교수를 재임용 과정에서 탈락시키면서 제시했던 근거가 '거짓말'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낸 주인공은 지난해 말 세종대 회화과 교수 재임용 과정에서 부당하게 탈락한 김동우(52) 교수.

대리석으로 투박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동양적 여인상을 빚어온 조각가인 그는 국내 조각가들에겐 꿈의 무대로 알려진 파리 FIAC 전시회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전에 초대됐으며, 국내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만 다섯 차례나 가진 인물이다.

더욱이 세종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 학생들이 실시한 강의 평가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을 만큼 실력파 교수로 손꼽혀 왔다.

그런 그가 2001년 12월 세종대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인 박수근, 이중섭, 권진규, 오윤 등에 비견될 만큼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 수많은 국제전과 국내전에 초대받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학생들에게 그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명교수….

그런데 그는 왜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일까? 지금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한 조각가가 족벌사학 교수로 4년 동안 재직하면서 겪었던 악몽 같은 사연을 들어보자(이 사건의 전말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독자는 이전 기사 (1)과 (2)를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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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이사장의 ' 8등신 예술론 '


김동우 교수는 1981년 유학을 떠나 파리 8대학 조형미술학과와 이태리 까라라 국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할 때까지 15년 동안 유럽에서 활동하다 1996년 귀국했다.

그가 세종대 회화과 조교수로 임용된 것은 1998년 봄. 임용 당시 그는 학교측으로부터 "회화과에 아직 조소 전공이 없는 관계로 전임 시간 12시간을 다 채울 수 없으니 부족한 시간은 3년 동안 1년에 작품 한 점씩을 제작하는 것으로 충당하자"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학교측의 제안에 따라 1998년 한 해 동안 강의 시간 틈틈이 심혈을 기울여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발가벗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을 담은 모자입상(母子立像)을 2m 크기의 석상으로 빚어내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작품의 마무리 손질로 바쁘던 1999년 2월 초 주명건 세종대 이사장으로부터 작품을 보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조각 작품을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이사장을 찾아갔다가 낭패감을 맛봤다는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연해보자.

김 교수가 건넨 작품 사진을 보자마자 주명건 이사장의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다. 그러더니 '한국의 대표적인 족벌사학'의 '이사장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조각가'에게 감히 예술지도(?)를 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의 작품은 여인의 인체 비례가 5등신 정도로밖에 안 보여. 그리고 머리가 너무 크잖아. 옛날에는 여자가 머리가 크면 시집도 못 갔다구. 그러니까 머리를 작게 바꾸고, 밑 부분 좌대(座臺)도 없애 버려요. 그 대신에 다리를 좀 길게 늘려서 8등신 정도의 늘씬한 여인으로 고치라고."

▲ 2001년 11월 28일부터 열흘 동안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김동우 교수 개인전 당시 전시됐던 '모자입상Ⅱ'. 그는 강인한 동양적 여인상 창조에 천착해 왔다.
김 교수는 주명건 이사장의 그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그러나 따지고 보면 참으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발언에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을 직접 만든 예술가로서 최소한의 소견을 밝혀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껴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의견을 피력했다.

"강인한 한국의 어머니 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날씬한 여체의 비례가 아닌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를 상징하는 건강한 인체 비례를 도입한 겁니다. 그리고 저의 작품 경향은 전반적으로 서구적 인체미(人體美)보다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미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술평론가 강성원은 "정상적인 인체 비례의 해체와 과장이 김동우 조각 세계의 진수"라고 평한 바 있다. 그러나 김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주명건 이사장은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결국 주 이사장의 "그래도 너무하니 고치시오"라는 일방적인 한마디로 예술논쟁(?)은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작업장으로 돌아온 김동우 교수는 고민했다.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사장의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 IMF 시절의 가난한 예술가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갈등에 빠졌던 그는 결국 이사장의 지시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예술가로서의 최소한의 양심과 자존심마저 저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며칠 후 소신껏 작품을 완성하여 학교에서 미리 지정해놓은 본관 정원에 작품을 설치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부터 김 교수의 불행(?)은 시작됐다. 족벌사학의 제왕(帝王)인 재단 이사장의 횡포에 맞서 예술가의 양심과 소신을 지킨 대가는 너무나 썼다. 교무처장 등 대리인을 내세운 족벌사학의 보복(?)은 가혹했다.

우선 학교측은 교수 임용 1년이 지난 뒤 갑자기 3년 계약 만료의 서약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이사장의 명령을 어기고 작품을 세운 며칠 후 김 교수는 지방에서 있었던 교수연수회 참석 도중 학교측의 긴급호출을 받고 상경해야 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교무처장은 다짜고짜 "작년에 임용될 당시 서류 한 장이 빠졌으니 부르는 대로 몇 자 적어라"고 했다.

내용인즉 "1998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 3년간만 세종대 회화과 조교수로 성실하게 근무하겠다"는 요지의 서약서였다. 이와 관련 김 교수의 증언을 직접 들어보자.

"처음에는 당연히 임용 당시 전혀 언급이 없었던 서약서를 소급해서 쓸 수는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그러자 교무처장은 부족한 서류를 보충하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면서 서약서를 쓸 것을 종용했습니다. 더욱이 옆에 있던 학과장 교수마저 자신도 서약서를 썼고 다른 교수들도 다 썼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거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서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모욕당한 예술가의 마지막 수업'. 김동우 교수(맨 오른쪽)가 2002년 6월 세종대 예술대 학생들에게 석고상 제작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 정지환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재임용 계약기간인 3년이 지났다. 2001년 2학기를 마감하면서 김 교수는 재임용 평가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세종대 인사규정에 따르면 "임용기간이 만료된 전임 교원에 대하여는 교수업적 평가규정에 따라 재임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되어 있다.

물론 김 교수는 자신이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국제전을 치렀고,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우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의평가와 관련 그는 2001년 1학기 때는 5점 만점에 4.36(전체 교수 평균 3.85), 그해 2학기 때는 4.44(평균 3.91)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세종대 측은 2001년 12월 27일 김동우 교수에게 재임용 탈락 통지서를 보내왔다. 김 교수가 그 이유를 묻자 "회화과 내에 조소를 활성화한다는 조건으로 임용되었으나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였으므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연구업적과 강의평가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김 교수에게 그런 결정을 내린 근거는 무엇일까.(김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측은 처음에는 연구업적 부실로 탈락시키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고 한다. 지면관계상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런데 독자들이 사건의 전모를 이해하기 위해선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세종대는 1997년 11월 20일 <조선일보> 등 주요 일간지 몇 군데에 회화과 조소전공 교수초빙 광고를 냈다. 당시 지원자수는 모두 32명이었는데, 최종 면접에 오른 인물은 김동우, 류경원 2인이었다. 세종대는 결국 두 사람을 모두 조교수에 임명하는데, 당시 학교측과 두 사람 사이에 다음과 같은 4가지 '구두계약(口頭契約)'이 있었다는 것이 세종대 측의 주장이다.

(1)김동우, 류경원 두 사람은 애초 임용 당시 3년간만 재직하는 것으로 계약했다.
(2)1년 후 두 사람 중 한 명만 교수로 임용한다.(그런데 공교롭게도 류경원 교수는 6개월 뒤 충북대 교수로 옮겨갔다.)
(3)부족한 수업시간은 매년 1점씩 조각작품 제작으로 대체하기로 합의했다.
(4)조소 활성화 여부에 대한 학교 당국의 판단에 따라 재임용 여부를 결정한다.


물론 이러한 4가지 '구두계약' 조건에 따라 김동우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것이므로 적법하다는 것이 세종대 측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 세종대 측은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우선 위의 4가지 '구두계약'을 증언하는 학교 관계자(임용 전후 학과장, 교무처장, 교무과장)의 확인서를 제출했다.

아울러 세종대 측(부총장, 재단 사무총장, 재단 이사장 비서실장, 교무처장, 학생처장, H 교수 등)은 기자와의 두 차례 반론 인터뷰 과정에서 "당사자 중의 한 명인 류경원 교수에게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 보면 모든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각종 서류와 주장을 일일이 확인해본 결과 세종대 측의 주장은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첫째, 임용 당시 세종대 측 관계자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임용 당시 교무과장(우정남), 교무처장(유양자)과 임용 이후 교무처장 석영우 등 3인이 세종대 측을 통해 교육부에 제출한 확인서에선 3년 기한 등의 임용 조건에 대해 "김동우, 류경원 2인의 당사자가 학교측에 그런 요구를 했다"고 되어있다.

반면에 회화과 학과장(허계)의 확인서에선 "당시 예체능대학장(김시덕)이 그런 건의를 해서 받아들여졌다"고 되어 있다. 일단 기초적인 사실부터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종대 측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 세종대 측이 제시한 재임용 탈락 근거가 거짓이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문서. 1998년 김동우 교수와 함께 임용됐던 류경원 교수(현재 충북대)가 써주었다.
둘째, 류경원 교수의 증언은 세종대 측이 명백한 위증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류 교수는 4월 19일자로 작성해서 사인까지 한 뒤 김동우 교수에게 전달한 확인서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본인은 1998년 3월 김동우 교수와 함께 세종대학교 회화과에 조교수로 신규 임용될 당시 수업시간 부족분을 조각작품 제작으로 보충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다른 조건도 없었음을 확인합니다. 단, 2명 교수 중 1인을 1년 후에 학교측이나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세종대 측이 임용 당시 있었다고 주장하는 4가지 '구두계약' 조건 중 (2)와 (3)은 있었지만, 김동우 교수의 재임용 탈락의 결정적 이유가 됐던 (1)과 (4)는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김동우 교수와 류경원 교수가 나눈 다음과 같은 전화 통화 내용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다.

김동우: "(세종대 측의 주장은) 조소과를 활성화하는 조건으로 (우리를) 뽑았는데 조소가 활성화된 것 같지 않아서 재임용을 안 한다는 겁니다."
류경원: "그건 지들(세종대 측)이 하는 거지. …그런 조건(조소 활성화)은 없었죠. …그건(조소 활성화를 재임용 탈락의 근거로 든 것)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셋째, 세종대 측은 이렇게 '거짓말'로 드러난 '구두계약'을 근거로 김동우 교수를 거꾸로 '거짓말쟁이'로 매도하는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적반하장'의 인신공격은 세종대 측이 교무처장 명의로 세종대 교수 전원에게 보낸 이메일에 노골적으로 담겨져 있는데, 이것은 김동우 교수가 세종대 교수 전원에게 이메일로 이 문제를 폭로한 직후 학교 측에서 다시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보낸 해명서이다. 한 교수가 김동우 교수를 통해 기자에게 전달한 이메일 내용 중 일부를 보자.

"임용 당시의 조건은 당시에 같은 조건으로 임용된 교수님이 두 분(김동우, 류경원-기자 주)이었고 임용과 관련된 관계자가 한두 분이 아니므로 조금도 속일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지극히 명확한 과정과 절차를 따라 처리된 문제를 엉뚱한 이유와 검증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앞세우며 학교와 관련자의 인신공격으로 일관하고 있는 김 교수… 재임용 탈락과 작품에 대한 불만 등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교묘한 선동이라고 밖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넷째, 세종대가 가지고 있는 어떤 정관, 인사규정, 임용계약서 등에도 '조소 활성화'라는 조건은 없다.

실제로 1998년 2월 26일 주명건 이사장과 김동우 교수가 도장을 찍은 '임용계약서'에는 "복무 및 처우의 경우 학교법인 대양학원 정관 및 기타 제 규정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세종대 교원인사규정에는 재임용에 대해 어떻게 규정되어 있을까. 제8조(재임용)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임용기간이 만료된 전임 교원에 대하여는 교수업적 평가규정에 따라 재임용 여부를 심의 규정한다. 단, 연구실적이 부족한 교원에 대하여는 1년간 조건부로 재임용할 수 있으며, 소요 실적이 충족될 경우에는 해당 직급에 재임용한다."

▲ "주명건 이사장 퇴진! 김동우 교수 복직!" 세종대 예술대 학생들이 제작해준 김동우 교수의 1인시위용 홍보판.
물론 김동우 교수는 학교측의 엽기적인 태클에도 불구하고 교수업적 평가에서 당당히 통과했다.

결국 세종대는 정식 절차에 따른 재임용 탈락이 어렵게 되자 어떤 법적 효력도 갖기 어려운, 그것도 '거짓말'로 밝혀진 유령의 '구두계약'을 내세워서 김동우 교수를 부당하게 강단에서 쫓아낸 것이다.

세종대 측은 현재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내용이 담긴 어떠한 '객관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구두계약에 따라 적법하게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는 '주관적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다섯째, 김 교수의 재임용 탈락 이의 신청과 소송 제기에 대한 교육부와 사법부의 분명한 입장 표명과 강경한 응징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학생이나 교수보다 교주(校主)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지상 최대의 악법 중의 하나'인 사립학교법(私立學校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이러한 '블랙 코미디'가 상아탑을 유린하는 사태는 계속될 것이라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필자가 9월 1일자 주간 <시민의 신문>에 보도했던 25매 분량의 기사를 40매 분량으로 확대 보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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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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