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한글날은 다가온다. 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자고도 하고, 그냥 놔두자고도 주장한다. 한글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고 있는가? 다가오는 한글날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가 한번 짚어보았으면 한다.
한글날은 다 아는 바와 같이 한글, 즉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한다. 그 한글날의 유래를 먼저 알아보자.
조선어연구회(지금의 한글학회)는 일제의 억압에 짓눌려 위축되어 있던 겨레얼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하여 훈민정음 반포의 날을 기념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왕조실록> 권113 세종 28년(병인) 9월조의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란 기록을 근거로 삼아 서기 1926년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 곧 한글을 편 지 8회갑(480년)을 맞이하여, 한글 반포 8회갑의 잔치를 베풀고, 이 날을 '가갸날'로 선포하였다.
이듬해인 1927년 조선어연구회 기관지 <한글>이 창간되고부터 이날을 '한글날'로 고치고 계속 음력으로 기념하다가, 1932년 율리우스력에 따른 양력 날짜로 환산, 10월 29일에 기념행사를 가졌다. 다시 1934년 정확한 양력 환산법(서력 1582년에 개정된 그레고리오력)을 적용하여 10월 28일로 정정하게 되었다.
1940년 7월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발견되었는데 그 끝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十一年九月上澣)"이란 글이 있어서, 한글 반포의 날을 짐작하게 되었다. 이후 해방 뒤인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한글 학회는 상순의 끝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일년 뒤인 1946년 한글 반포 500돌을 맞이하여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하였으나, 1990년 8월 24일 국무회의에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키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의결, 통과시켰다. 이후부터 '한글날'은 단순한 기념일로 축소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계의 유명 언어학자들이 경탄해 마지않는 한글의 탄생일을 우리는 천덕꾸러기로 여긴다. 국경일에서도 제외시켜 하찮은 기념일로 격하시킨 우리들이다. 과연 이 상황을 그대로 방치해도 괜찮을 것인가?
남의 나라 언어인 한글의 기념일에 20여 년 동안이나 자신이 비용을 부담해서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 그리고 친지들을 불러 잔치를 하는 세계적 대언어학자 맥콜리 교수(시카고 대학)는 말한다. "한글날을 세계 언어학자나 세계 문화 애호가가 다 같이 공휴일이나 축제일로 기념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타당한 일입니다."
저명한 문자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영국의 샘슨 교수(서섹스 대학 인지컴퓨터 학부)는 한글의 전무후무한 독창성에 대하여 증언하고 "한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결론지었다고 한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생리학 교수이자 퓰리처상의 수상자인 다이어몬드 교수는 진화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글은 인류가 개발하여 온 문자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문자임을 발견하였다"고 말하며 그 근거를 과학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또 유네스코에서는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고, 세종 대왕 탄생일을 "문맹 퇴치의 날"로 정하였으며, 문맹 퇴치에 뛰어난 공적이 있는 이에게 "세종상"이라는 문맹 퇴치상을 주고 있다.
이렇게 세계가 칭송하는 우리의 독창적인 문자, 위대한 한글을 우리가 푸대접하는 가운데 2000년 5월 25일 한글학회 등 29개 단체의 '한글날 국경일 제정 청원서'가 국회에 제출되었고, 지난 해 2월 5일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국회에서는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대표: 신기남 의원)'이 결성되어 새천년민주당 25명, 한나라당 10명, 자유민주연합 1명, 민주국민당 1명 총 37명의 의원이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자기들의 글자가 없어서 남의 글자를 빌려쓰는 경우가 많고, 혹 자기네 글자가 있어도 독창적이라고까지 할 수 없는 글자가 대부분일 정도이다. 남의 글자를 빌려서 내 나라 말을 표현하는 민족들과 달리 우리는 긍지를 가질 글자가 엄연히 있는데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제 나라 글자도 제대로 못쓰면서 한자나 영어 등 다른 나라의 글자를 배우려고 안달하고 있다. 모국어를 배우기 전의 유아들에게 영어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 그들은 과연 어느 나라 사람들이란 말인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우리들은 자존심도 없다는 말인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벌써 반세기가 넘은 요즘도 일본말 찌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사람들이 많다. 쓰지 말자고 하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일본말 찌꺼기임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우리 말글에 애정이 없거나 자존심이 없어서일 것이다. 만일 일본말 찌꺼기를 쓸 때 이것이 우리 스스로 일본인들에게 비굴하게 보이는 것이라 해도 일본말 찌꺼기를 쓸 것인가?
잘난척과 무식이 어우러진 한자와 영어의 무분별한 쓰기를 이렇게 방치해도 좋을 것인가? 어떤 한국인이 앞면에는 한자로만, 뒷면에는 영어로만 인쇄된 명함을 서양인에게 주었는데 그 서양인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만일 당신이라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정말 유식한 사람이라면 굳이 어려운 말글을 사용하지 않아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훌륭한 말글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북한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살펴보자. 우리는 한글이라고 부르지만 북한은 훈민정음으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기념일도 '훈민정음 창제일'로서 한글창제의 날을 기리고 있으며, 우리는 훈민정음 반포일을, 북한은 창제일을 기준으로 기념하고 있다. 북한은 광복 후 1월9일을 기념일로 지켜오다가 1963년부터 1월15일로 변경했다. 날짜변경의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외국에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스스로가 자신을 대접해주지 않는데 누가 우리를 대접해줄 것인가?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을 때 아무도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스스로의 대접을 우린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정부는 국민들이 원할 때 국경일로의 승격을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공휴일이 너무나 많다고 재계는 주장한다. 하지만 정기휴가가 보통 4일내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는 우리와 1달을 쉬는 다른 나라를 정기휴가 외의 공휴일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부자들을 배불리기 위해 공휴일을 축소해야 한다는 논리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제발 이제는 '부자들의 논리'에 놀아나지 말고, 우리 스스로 자긍심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는 것은 세계인이 한국인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우리나라를 부자나라로, 강한 나라로 만드는 일의 시작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참고>
한글학회 : http://www.hangeul.or.kr/index.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