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일 열린 반전평화국제행동 문화제에서 참여자들은 발에 검은 물감을 찍어 성조기에 찍은 뒤 'PEACE'라고 적고 거꾸로 매달았다. 성조기 앞 모형은 평화의 꽃을 꽂은 모형 미사일.
8일 열린 반전평화국제행동 문화제에서 참여자들은 발에 검은 물감을 찍어 성조기에 찍은 뒤 'PEACE'라고 적고 거꾸로 매달았다. 성조기 앞 모형은 평화의 꽃을 꽂은 모형 미사일. ⓒ 오마이뉴스 김지은
미국의 상징 성조기가 거꾸로 매달렸다. 온통 검은 물감으로 얼룩졌다. 그 한가운데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 있다.

"PEACE"

성조기 앞의 모형 미사일에는 꽃이 꽂혀 있다. 사람들의 의지를 모아 무기를 '평화의 꽃무덤'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성조기 주변은 오색빛깔의 한지들이 둘러싸고 있다. 한지에는 "세계평화"와 "미국반대·전쟁반대"의 뜻을 담은 메시지들이 담겼다.


관련
기사
"이라크 공격 반대" 국제 행동


여성의 속성과 닮은 한지를 이용한 문화행사. 한지엔 두레방 기지촌 여성들이 평화 메시지를 써 넣었다.
여성의 속성과 닮은 한지를 이용한 문화행사. 한지엔 두레방 기지촌 여성들이 평화 메시지를 써 넣었다. ⓒ 오마이뉴스 김지은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빨래도 걸렸다. 아이의 옷, 여성의 속옷 등이다. 여기에는 "부시는 똥싸개", "Peace for women" 등의 글귀가 새겨 있다.

8일 오후 12시 30분 인사동 들머리 광장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대동 한마당 현장 풍경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을 부정하고 평화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참여연대, 성매매근절을위한 한소리회 등 47개 여성·평화·사회·시민단체는 '반전평화 문화제'를 갖고 이날을 '국제 반전평화의 날'로 선포했다.

지난 해 10월 8일(한국시각) 미국이 '대테러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아프간을 침공한지 꼭 1년 만이다. 이들은 1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같은 명분으로 이라크 공습을 계획하고 있는 미국을 "전쟁의 씨앗이자 반 평화 국가"라고 못박았다.

이날 행사의 중심은 다름 아닌 여성. 한소리회, 평화여성회 등 한국여성평화네트워크(이하 한국여성네트워크)와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축이다.

여성이 중심이 된 만큼 이날 문화제는 '여성성'을 드러내는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었다. 여성들이 손을 잡고 오색한지를 매단 줄을 들고 강강수월래를 한 것이나 빨래줄을 등장시켜 평화의 메시지를 내건 것이 그렇다.

문화제를 기획한 이수진 한국여성네트워크 활동가는 "기존의 남성적인 규탄대회가 아닌 여성의 눈으로 전쟁의 상흔을 얘기하려고 노력했다"며 "문화제에 쓰인 재료도 이런 고민의 결과"라고 말했다.

"대선후보 부인 아닌 당원으로 참가했어요"
권영길 후보 부인 강지연씨

이날 행사에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바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부인 강지연 여사.

강 여사는 민주노동당원들과 함께 "이라크 공습 반대" 피켓을 들고서 3시간 내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열의를 보였다. 미대사관서 인사동까지 이어지는 평화행진을 생각해서인지 남색정장에 노란 운동화를 신은 것이 이채로웠다.

강 여사는 "일주일 전쯤 창원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며 "평화행진 등 오래 이어질 행사를 생각해서 운동화까지 신고 왔다"며 웃어보였다.

또한 "오늘 행사는 대선후보 부인으로서가 아닌 민주노동당 창원지구당 여성위원회 소속 당원으로서 참석했다"며 "이라크 공습은 한반도 평화와도 연결된 일인만큼 반대한다"고 말했다. / 김지은 기자
이를테면 '빨래줄 퍼포먼스'에서는 아이와 여성의 옷이 등장했다. 평화의 메시지를 적은 아이와 여성의 옷을 빨래줄에 매달았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여성과 어린이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다.

참가자들이 오색한지를 직접 줄에 매달고 강강수월래를 한 '한지 평화의 춤'도 여성의 속성과 연대를 연결시킨 퍼포먼스다.

이수진씨는 "한지는 겉으로는 여려 보이나 잘 찢기지 않는 질긴 속성을 가졌는데 이는 여성의 속성과도 비슷해 재료로 결정했고 한지에 담긴 구호는 의정부 기지촌 여성들이 직접 쓴 것으로 의미가 각별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우리나라 여성단체뿐만 아니라 미국·일본 등에서 세계 여성평화주의자들과 동시에 열었다. 이날 일본에서는 아시아평화연대 일본단체들이 국회의원회관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국 SAFE 회원들도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등 25곳에서 '우리 이름으로 전쟁 반대 저항의 날(Not in Our Name the national day of protest)' 반전평화시위를 벌였다.

이는 지난 8월 세계여성평화주의자들과 함께 약속한 결과다.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린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동아시아-푸에르토리코-미국 여성네트워크(이하 SAFE) 2002 국제회의'에서는 모든 참여단체들과 함께 부시의 대테러전쟁을 반대하는 국제여성행동집회를 갖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문화제에 앞서 8일 오전 11시 미대사관 앞에서 열린 반전평화 국제행동 기자회견.
문화제에 앞서 8일 오전 11시 미대사관 앞에서 열린 반전평화 국제행동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김지은
한편 이날 문화제에 앞서 오전 11시 서울 미대사관 앞에서는 47개 여성·평화·사회단체 대표 및 회원 130여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들은 "이라크와 9·11 테러 사이의 어떤 연관도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은 '더러운 전쟁'"이라며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전쟁에 대한 한국정부의 지원계획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계획 중단 ▲미국의 세계 각국 군사 개입 중단 ▲한반도 및 일본, 오키나와 등의 주둔 미군 철수 ▲국제 형사재판소 협약과 같은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 노력에 대한 지지 등을 촉구했다.

지난 달 17일 국방부가 밝힌 이라크 공습 지원 계획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미국은 공공연히 이라크 다음 대상으로 북한을 설정하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반대하지 않으면 북한 공습 때는 어떻게 반대할 것인가"라며 "한국 정부 및 대선후보들은 전쟁 반대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군 기지촌 활동가 김동심씨가 말하는 '전쟁반대'

▲ 두레방 활동가 김동심씨.
ⓒ오마이뉴스 김지은
한국 속의 또 다른 한국, 기지촌. 전시가 아니면서 전운을 체험해야하는 곳, 한국이면서 미군의 일상대로 돌아가는 곳이 바로 기지촌이다.

이날 반전평화행동에는 의정부 캠프 스탠리에서 기지촌 여성의 자활을 돕는 민간단체인 두레방에서도 참여했다.

두레방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김동심(30)씨. 김씨는 두레방에서 "기지촌 언니"들의 심리치료나 상담 그리고 성매매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갖도록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기지촌 안에서의 여성을 보면 전쟁 시 여성의 모습도 떠올릴 수 있다"며 "기지촌의 아이와 여성들은 군사훈련으로 인해 늘 심한 스트레스와 심리불안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늘 군사훈련을 하니까 소음 때문에 사람들의 심리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일상화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기지촌 엄마들이 길에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는 것을 봐도 굉장히 신경질적인 편이고요."

기지촌 사람들의 생계가 미군과 직결돼 있다는 것도 기지촌의 특수성이다. 얼마 전 한총련 소속 학생들이 캠프 레드 클라우드에 화염병을 던진 사건도 기지촌 사람들에겐 타격이 됐다. '주한미군반대'라는 대의명분이 예기치 않은 곳에 화살이 된 셈이다.

"미군 쪽에선 그 사건을 '테러'라고 보고 있어요. 그날 이후 일주일동안 미군은 모든 기지문을 닫았고 그 때문에 기지촌 사람들도 장사를 못했죠. 일단 그 사람들에겐 생계가 달린 문제니까요."

김씨가 주장하는 것은 정부의 기지촌 종합대책 마련이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지촌 여성들은 성매매를 그만두고 싶어도 결국 기지촌을 맴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간단체로서 기지촌 자활활동을 하고 있는 두레방도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개인과 단체에서 후원금을 받고 있긴 하지만 운영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운영하는 것이 벌써 몇 달째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씨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는 "기지촌 여성이야말로 소외집단 중의 소외집단"이라며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줄 것"을 부탁했다. / 김지은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