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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주당 의원 전용학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에게 철새정치인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우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들에게 철새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철새는 생존과 종족 번식을 위해서 새로운 둥지를 찾아서 떠나는 존재들이며 이들의 떠남은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권력의 양지만을 찾아서 떠나는 이들의 행태는 정치 혐오증만을 유발하며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대의를 포기할 수 있다는 배신의 정치학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추할 뿐이다. 이러한 자들에게 철새라는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상처받을 수 있는 수많은 진짜 철새들에게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대신 사죄의 말을 올리고 싶다.

전용학과 같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완구에 대해서는 그다지 하고 싶은 말이 없다. 그 역시 변신의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의 이동은 적어도 최소한의 정치적 명분을 내세울 수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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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용학이다. 전용학의 변신은 질적으로 매우 좋지 못하다. 우선 권력의 양지만을 찾아 떠난다는 점에서 그 전에 있었던 수많은 사쿠라 정치인들과 본질은 같다. 그러나 전용학의 경우는 자신이 최근에까지 보여주었던 정치적 입장과 극적으로 배치될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는 고립된 호남과 같이 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있다고 생각된다는 점에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정치는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이므로 그 모습이 썩 아름답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절차적 합리성이라는 것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만을 획득하려고 한다면 홉스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정치 자체가 국민들의 윤리의식에 끼치는 바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존경할 만한 사람들에게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를 원하며, 그만큼 자신의 사표로서 삼고자 하는 열망을 간접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선지적인 자세로 자신의 일상적이고 말초적 권력 욕구를 억누르면서 역사를 개척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권력을 위해서는 정치적 대의나 가치 등은 무시해도 좋다는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전용학은 이제까지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서 그 자신이 함께 한 정당의 이익을 정면에서 배신했다. 그가 전에 함께 한 정당은 이회창의 집권을 반대하며 개혁 정권의 창출을 지상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전용학 그 역시, 그 방법론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인제 진영에 있을 때는 이인제만이 이회창을 이길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을 것이고, 후단협에 있을 때는 후보 단일화를 해야 이회창을 이길 수 있다는 현실 인식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입에서 튀어나온 침이 마르기도 전에 그는 이회창의 집권을 위한 길에 나서고 있으니, 변신도 이러한 변신은 어디 있는가? 차라리 이회창이 이길 것 같고 다음 총선도 그 당이 유리하고 그래야 더 확실한 권력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말이라도 했다면 배신감은 덜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전용학의 행위는 소수와 약자의 위치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눈꼽만큼도 없이 자기만 살겠다고 나서는 것으로써, 그야말로 등 뒤에서 칼을 꽂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더군다나 현재 민주당은 지역적으로 호남으로 고립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상태는 과거에 비해서도 더욱 좋지 못하다. 과거에는 호남민들의 단결력과 정치적 실천 욕구가 매우 강해서 수도권 등지에서 김대중 당의 후보를 미는데 헌신적이었다.

그 결과 과거 선거에서 지역적 고립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수도권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선거에서 나타나듯, 호남인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정치적 허무주의로 인하여 그 단결력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이는 결국 호남표에 기대었던 수도권 정치인들에게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현재 후단협에 속한 비노 세력들의 상당수는 바로 중부권 의원이라는 사실에서 위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들은 호남을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이 있을 것 같으면 모이고 그렇지 않다 싶으면 돌아서는 이러한 행태야말로 지역감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전용학의 행위는 이와 같이 정치를 사적 권력 추구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국 정치인의 어두운 면과 소수인 호남과 같이 하지 않겠다는 우울한 지역 의식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철새라는 명칭도 부당하지만, 정치자영업자라는 명칭도 부당하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의 원칙도 무시한다는 말인가? 이는 중소자본을 가지고 성실하게 이 땅의 양심적 시민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냥 이들은 좋게 말해서 변신의 정치인이고 좀더 거칠게 말하자면 쓰레기 정치인들뿐이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행태야말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주며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의식 있는 비판과 실천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덧붙이는 글 | 반DJ에 대한 문제제기와 탈 DJ의 대안으로서 노무현의 의미를 밝힌 책 '노무현 반 DJ신드롬을 넘어서(시대의 창, 10월 18일 간 예정)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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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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