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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제동을 걸고 조합의 재무건전성을 담보할 '저승사자'일까, '파수꾼'일까."

지난 1일 발족하고 18일 현판을 내건 농협자산관리(주) 제주지사를 두고 농업인과 농업관계자들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농협자산관리회사는 회원조합·중앙회가 보유하는 부실자산 정리업무를 맡게 된다. 또한 회원조합과 중앙회의 부실채권을 통합관리함으로서 채권관리 효율성 제고는 물론 농업협동조합의 구조개선에도 기여한다.

지난해 9월 의원입법으로 제정된 농협구조개선법에 따라 회원조합과 중앙회가 공동 출자해 설립된 자산관리회사는 회원조합·농협제주본부의 부실자산 매입과 매각, 비업무용 자산공매 등이 주요 업무이다.

일단 농민들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한때 농협이 의뢰한 채권추심회사의 빚독촉에 못이겨 여러 농민이 목숨을 달리한 경우가 있어 "설립된 농협자산관리회사가 본격적으로 업무에 뛰어들 경우 상당수의 농민이 고충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관계자는 "자산관리회사 설립은 반농민적이며 반협동조합적인 행보"라는 견해다. 한국농업경영인 제주도연합회 관계자도 "전반적인 농가경제가 침체된 상황이고 태풍피해에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마늘파동 등 악재가 수두룩한 현실에서 농협자산관리회사가 좋게 보일 리는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농협자산관리회사 N 제주지사장은 "무턱대고 농업인 등의 부실채권을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추심을 거쳐 농업용도외 부당 사용이나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이유없는' 지연행위를 구분해서 회수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및 농협지원자금을 '공돈(空錢)'으로 아는 일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에도 자산관리회사 발족은 경종이 될 것이라는 풀이다.

제주도내 조합의 부실채권 실태

농협자산관리회사가 정상 가동되면 회원조합의 각종 부담을 경감시키고 부실채권회수로 조합경영 건전화 및 기금손실 최소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농협의 부실채권은 얼마나 되나. 일단 농협중앙회제주본부는 10월 최근기준 총여신 7,410억원에 3% 정도의 부실채권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약 2백여억원 가량이 부실채권이다. 도내 25개 회원조합 부실채권액은 70여억원이다.

농협은 모두 6천여건 273억원의 부실채권을 떠안고 있는데 농업인과 서민, 기타를 대상으로 한 농협제주본부의 부실채권은 4천건 가량이고 회원조합은 2천여건이 부실채권이다.

반면 농협의 재무건전성을 가늠할 당기순이익은 어떠한가. 농협관계자는 당기순이익 규모를 밝히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다만 "농협중앙회 서울본부에서 상당액의 법인세를 비롯 재세공과금을 대납해주기 때문에 지역본부의 당기순이익 자체에 큰 의미가 없다"면서 "실제 당기순이익 또한 회원조합들에 '상호지원자금(기금)' 명목으로 출자해 무이자대출한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 전체 차원에서 살펴봤을 땐 97년 201억원이던 당기순이익이 지난 2000년에 1,956억으로 늘어났다. 2001년말 기준 25개 회원조합 당기순이익 총액도 122억원으로 제주시농협 20억원, 제주감협 12억원, 서귀포농협 10억원 등이다. 읍면지역 가운데는 대정농협이 6억3천만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한편, IMF관리체제 이후 충당금적립기준이 바뀌어 연체대출금에 대해 100% 충당하도록 하면서 3개 회원조합이 지난 2000년에 67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능력돼도 "못내겠다" 생떼도 빈번

농협자산관리회사 제주지사장 N씨는 "농민, 조합원에 대한 무차별적 공세는 없다"고 밝혔다.

기존 추심업체와의 차별화를 염두에 둔 듯 농협자산관리회사 제주지사는 발족하며 추심원에 대한 당부로 '농민조합원에 배려를 고려해 무조건 회수만을 우선하는 타추심업체에 비해 인간적인 회사'를 지향하고 '목표(부실채권회수)에 대한 강압적인 빚독촉을 없애'는 등 민원발생소지를 최소화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발족 초기 농협제주자산관리회사에 의뢰가 들어온 부실채권은 191건에 3∼4억원 정도라고 알려졌다. 농협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추심의뢰받은 부실채권 가운데 50% 가량이 원금은 상환받고 이자채권이라는 측면에서 회원조합들도 채권회수 원칙은 지키 돼 이자탕감 등이 따라야 할 것"이란 지적이다.

가령 1천만원을 빌렸는데 장기연체로 이자가 1∼2천만원까지 붙어 원금을 갚고도 상당한 손실을 보게 됨에 따라 채무자의 능력과 성의를 감안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장기연체자 가운데는 부모 명의로 대출해서 당구장 등 농업외적인 용도로 쓰고 부도가 나거나 유흥목적으로 탕진한 경우도 상당수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채무책임이 있는 부모 등도 무작정 못 갚겠다고 생떼를 쓰는 경우가 있어 보증과 채무에 대한 인식제고도 농협자산관리회사 출범과 함께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관계자는 "현 한국자산관리공사인 과거 성업공사가 국가귀속 청산법인의 청산업무 취급, 국세압류재산 공매 대행업무, 금융기관 부실채권 정리업무 등에 무차별적인 채권회수조치와는 분명 구분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인 불량채권 누적은 회원조합에도 불리할뿐더러 결과적으로 조합원들에게까지 피해가 귀속되기 때문이다. 양봉조합이 부채가 늘어 자산까지 잠식했던 점으로 미뤄 대정농협과 위미농협 등처럼 적극적인 부실채권 해소노력이 조합과 농민조합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피할 수 없는 '저승사자론'

그러나 농협자산관리회사에 대한 도내 농민들의 불안 또한 당연하다.

제주통계사무소가 분석한 2001년 농가경제지표는 무겁기만 하다. 지난해 농가평균소득은 2476만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3만1천원이 증가했지만 이는 겸업과 사업이외 소득이 212만원이 늘어난 때문이다. 실제 농업소득과 이전수입은 전년도보다 154만원과 54만원이 각각 줄어 13%나 감소했다.

특히 농가의 가계비지출은 2033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2.7% 감소했는데도 농가부채는 2001년말 기준 3084만원으로 5.1%가 증가했다.

농가소득은 93년말 2112만원에서 지난해말 2476만원대로 큰 폭의 변화는 없는 반면 농가부채는 93년 693만원에서 지난해말 3084만원으로 대폭 늘어난 상황이다.

또 25개 회원조합이 12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상황에서 농협제주본부도 상당액의 순익을 올렸을 것이란 짐작도 농업인들을 '자극'하고 있다.

농업관련 학계에서도 "농가부채와 농가경제 회생을 위한 피부에 와 닿는 정책적인 고려없이 채권추심을 밀어붙일 경우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며 "농촌황폐화와 파산이 미칠 영향까지 농협과 자산관리회사가 가늠해서 사정을 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협자산관리회사 제주지사측은 이와 관련 "장기부실채권인 경우 원금을 상환받고도 이자채권 부담이 너무 클 경우 농가에 충격이 큰 만큼 회원조합에 '받을만큼만 받으라'는 식의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면서 "채권회수 유예 등 다각적이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채무능력은 고사하고 끼니마저 어려운 형편의 집에는 직원들이 쌀까지 갖다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결국 농협의 부실채권에 대한 추심(推尋)은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실(情實:집행함이 타당하다), 완결(緩決:다음해로 미룬다), 가긍(可矜:탕감이 타당하다), 유양(留養:면제조치)의 묘미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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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학신문기자, 전 제주언론기자, 전 공무원, 현 공공기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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