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1월7일 '사자소학'경시대회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중인 김영중 순천초등지회장
11월7일 '사자소학'경시대회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중인 김영중 순천초등지회장 ⓒ 김태문
"그리고 알겠다.
그대의 머리칼 메마른 아스팔트 위에 한줌 쓰레기로 흩날리겠지만
그 머리칼이 바로 가을 하늘임을 알겠다.
일어서는 동지들의 함성으로 알겠다."
-최갑진-


지난 1991년을 우리는 '분신정국'이라고 불렀다. 강경대의 죽음으로 촉발된 5월 투쟁 이후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김기설, 윤용하, 이정순, 김철수, 정상순, 김귀정. 1991년 4월 말부터 5월까지 11명의 죽음이 잇달았다.

우연이라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언론과 죽음으로밖에 현 정권에 항거할 수 없다는 분신자들의 절박한 외침 속에서 연이어 일어났던 분신은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분신자들과 함께 일했던 이들도 죄의식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0월 26일 노동3권 쟁취를 주장하며 삭발하고 있는 공무원노조 전남본부 지도부들
10월 26일 노동3권 쟁취를 주장하며 삭발하고 있는 공무원노조 전남본부 지도부들 ⓒ 조호진
『효경』에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니 불감훼상이 효지시야라'하여 몸과 몸을 둘러싸고 있는 털과 피부는 감히 훼손하거나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부모에 대한 공경심과 자애심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리 미련한 이야기도 아니다.

최근 여기 저기서 효를 훼손하면서까지 삭발이 강행되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절박함이 베어있다. 막강한 공권력에 맞선 처절함도 엿보인다. 이에 대해 순천 효천고 정억만교사(42)는 '우리가 힘이 없으니 온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지 않는가'라 말하며 "삭발을 강요하는 요즘 사회는 과거 '분신정국'을 생각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10월 25일 전남교육정상화를 요구하며 전라남도교육청 정문앞에서 삭발중인 심경섭 전교조 전남지부장
10월 25일 전남교육정상화를 요구하며 전라남도교육청 정문앞에서 삭발중인 심경섭 전교조 전남지부장 ⓒ 김태문
지난 10월 1일에는 전교조 전국초등위원장들이 초등학교 3학년 진단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공교육의 근간인 초등교육을 살리기 위해 삭발 투쟁을 전개했다.

10월 16일, 전교조 부산지부 집행부는 단체교섭 승리와 부산교육 정상화를 주장하며 삭발을 감행했다.

10월 25일에는 심경섭 전교조 전남지부장이 삭발했다. 전남도교육청의 '실력전남'정책에 대한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전남교육정상화 요구를 받아 줄 때까지 전교조 전남지부 집행위원들의 삭발을 매일 감행하겠다고 말했다.

10월 26일, 전국공무원노조 전남본부는 정부입법안에 대한 항의와 공무원 노동자의 노동3권 쟁취를 요구하며 지도부 삭발을 강행했다. 삭발 후 투쟁결의문을 통해 "정부는 여전히 공무원노조를 인정하지 않은 채 구시대적이고 반 노동자적인 행태로만 일관하고 있다"며 정부를 성토했다.

11월 9일 조흥은행 직원 500명이 해외매각을 반대하며 사상 초유의 삭발식을 거행하고 있다.
11월 9일 조흥은행 직원 500명이 해외매각을 반대하며 사상 초유의 삭발식을 거행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11월 7일, 전교조 순천초등지회와 순천교육청간에 합의된 각종 경시대회 관련 요구 사항에 대해 순천교육청에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기고, 특히 문제가 됐던 '사자소학' 경시대회를 순천교육청에서 각 학교별 실정을 무시한 채, 12월 12일 일제히 관내 초등학교 전체에 걸쳐 교육청에서 제공한 문제지로 시험을 보라고 한 것에 대해 규탄하는 '순천초등교사대회'에서 김영중 지회장의 삭발이 있었다.

11월 9일, 조흥은행 행원 500명이 삭발했다. 지난 3일 전윤철 경제부총리가 "11월말까지 조흥은행 매각" 결정을 발표한 뒤부터 거대 은행들이 다시 인수합병 과정에 들어가 내년쯤이면 4∼5개의 거대은행만 한국에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관측 속에서 이에 맞선 금융업계 노동자들의 반발이었다. 이들은 추후 조흥 105년의 역사를 상징하기 위해 1050명의 삭발을 강행하겠다고 말했다.

분신을 강요했던 사회. 삭발을 강요하는 사회.
왜 이들에게 절박함을 안겨주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삭발이 계속될 것인가?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여유와 여지를 남겨 주는 것이다. '삭발정국'을 풀어갈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10월 1일 전교조 초등위원장들이 초등교육정상화를 요구하며 삭발을 강행하고 있다.
10월 1일 전교조 초등위원장들이 초등교육정상화를 요구하며 삭발을 강행하고 있다. ⓒ 전교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