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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덩이 같던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변하셨을까. 선생님의 왼쪽 두 번째가 글쓴이.
달덩이 같던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변하셨을까. 선생님의 왼쪽 두 번째가 글쓴이. ⓒ 황종원
월간‘좋은 생각’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 12월호에 내 글이 그 책에 실려있기는 하지만 글이 올랐다고 다시 연락을 해줄 만큼 잡지사 사람들이 한가롭지는 않을 것이다. 내 글을 보고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며 연락처를 일러주어도 좋겠냐고 내 뜻을 물어왔다.

'나를 찾는 사람이라니...' 나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라서 깜짝 놀랐다. 글 내용은 50년 전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글이었다. 좋은 생각 직원과 전화 통화가 끝난 뒤에 나를 찾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바로 왔다. 어느 학교를 나왔냐 몇 년도 일이냐 하면서 내가 그리워하던 바로 그 선생님께서 계신 곳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지난 옛이야기는 이렇다.

파마 머리를 하고 검정 치마 흰저고리를 입은 선생님이 내 곁에 오시면 화장품 냄새가 좋습니다. 콧물이 나와 소매로 쑥 닦노라면 선생님이 내 가슴에 매단 손수건으로 손수 닦아주십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옵니다. 성적이 올라가면 선생님은 ' 참 잘했다'며 누런 공책 한 권을 상으로 주십니다. 그럴 때는 하늘이 더 맑고 파랗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은 돌아가는 길이 걱정되어 교문 앞에서 서성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잡한 거리를 미꾸라지처럼 이리저리 씽씽 달려가지요. 어느 날 선생님과 사진을 찍습니다. 먼저 예쁜 선생님이 서고, 올망졸망 우리들이 섭니다. "자, 웃어라!"사진사 아저씨 말마따나 우리는 입을 씰룩하고 웃으려는데 어느새 사진이 박힙니다.

가슴에 콧물 수건이 창피할 때쯤 1학년이 끝나갑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같이 안 가신대요. 시집가신대요. ” 시집이 뭐래요? 시집이 다른 학교 이름인가요?" 시집이 뭔지 모른 채 아버지 손잡고 선생님이 시집간다는 예식장에 갑니다. 선생님을 콩이니 팥이니 색색의 종이 테이프에 휘감기며 활짝 웃습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슬픕니다. 어른들은 왜 시집을 간대요.

선생님을 태우고 가는 자동차를 보며 눈물 콧물을 소매에 쓱쓱 닦아냅니다. 그날따라 눈이 내려 눈도 눈물이 되고 나는 울먹이며 선생님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원경자 선생님!" 지금쯤 칠순이 넘으셨겠지요? 선생님, 잘했다고 칭찬하며 머리 한 번 쓰다듬고, 보름달처럼 웃어 주시던 그 모습을 생애의 끝에 이른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이처럼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이 눈물 되어 내리던 그 날이 바로 방금인 듯 합니다.


그랬던 원경자 선생님을 안다는 사람은 나이 지긋한 여인이었다. 바로 선생님의 조카딸이라는 것이다. 내 글에는 어느 도시 어느 초등학교란 말이 없는데 그 사연만으로 이름만으로 느낌이 와서‘좋은 생각’에 전화를 걸어 나를 찾은 것이다.

마치 퍼즐처럼 서로 아는 말을 맞춰보았다, 어느 학교는 대전의 원동 초등학교였다. 그 무렵은 1953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 반을 가르치기 전에도 몇 년을 앞서 가르치셨다며 중년 여인이 말했다. 지금 생존해 계시다고 했다. 자녀는 세 분을 두시고 아파트에서 홀로 살고 계시다는 것이다.

선생님과 전화 연결이 되었다.
" 그래, 나는 널 기억해. 얼굴이 동그스름했지. 아주 까불었어. 아버지 백을 믿고 그랬지. 아버지는 돌아갔다고? 그랬구나. 너무 보고 싶다."

선생님을 바로 가서 뵈올 참이었다. 서울에서 멀잖은 곳에 살고 계셨다. 며칠 뒤에 미국을 다녀오신 뒤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콧물 흘리던 초등학생인 내가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도 마음은 선생님 앞에서는 코흘리개이다. 그리움을 키우다 보면 이런 기쁜 날도 있게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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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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