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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여중생 사건'과 '대선'으로 지난 월드컵 때만큼 들썩거린 12월 7일 서울의 토요일. 저마다 바라는 민주주의를 쫓아 행동에 나선 서울의 젊은 10대, 20대, 30대를 만나러 신촌에서 광화문을 거쳐 세종로 미대사관 앞까지 여행을 다녀왔다.>

[12월 7일 오후 3:30]
대학생 투표율 80%, 꿈은 이루어진다


2호선 신촌역 '홍익문고' 앞. 여느 때 같으면 하나둘씩 모여드는 연인들로 북적거렸을 이곳에 무척이나 바빠 보이는 낯선 무리들이 도로 한쪽에 자리잡고 있다.

어떤 이는 들고 있던 '철가방'에서 홍보물을 꺼내 돌리느라, 또 한 사람은 '투표해요! 12월19일'이라고 적힌 노란색 풍선을 나눠주느라 여념이 없다.

▲ 행인들에게 나눠준 '투표참여' 홍보 풍선
ⓒ 오용석
지나는 행인들도 귀찮다는 기색없이 저마다 풍선도 받아가고, 간혹 걸음을 멈추고 홍보물을 읽어보는 사람도 눈에 띈다. 제법 쌀쌀한 날씨지만 행사를 치르는 이들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그다지 추워하는 기색이 없다. 지난 11월 창당한 개혁국민정당 '2030유권자네트워크(www.vision2002.org)'회원들이 이른바 '유권자 투표참여'운동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이거 먼저 끝내고 하면 안되요?".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행여 방해될까 어렵사리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무안을 줄 정도로 손이 모자라 보였다.

▲ '유권자 투표참여'운동에 빠쁜 개혁국민정당 청년당원들
ⓒ 오용석
덕분에 30분을 기다려서야 연세대(3학년)에 다닌다는 운동원과 몇마디 나눌 수 있었다.

- 개혁국민정당 대학생위원회 소속이면 당원인가요?
"네, 여기 함께 한 친구들도 다 당원이에요."
- 활동비는 나오나요?
"아뇨.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니까 돈도 우리 돈으로 해야죠."
- 개혁국민정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는데 선거운동은 왜 하죠?
"선거운동이 아니라 투표참여 운동이에요. 누가 당선되느냐도 중요하지만 일단 투표율이 높아야 하잖아요."

- 이번 대선에서 혹시 개인적으로 바라는 점이 있나요?
"대학생 투표율이 80%를 넘는 겁니다. 어떤 여론조사에서 대학생들 예상 투표참가율이 60%밖에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최소한 30~40대처럼 (예상참가율이) 80%만큼은 돼야죠."
- 시험도 있는데 힘들지 않아요?
"그래서 아까 바빴잖아요. 빨리하고 시험공부하려 가야하니까. 하하하."

어느덧 행사장을 정리를 마친 운동원들 사이에 '뒷풀이'를 갈 것인지 시험공부를 할 것인지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오후 4:40]
독감도 피해간 주정야독(晝政夜讀)


개혁국민정당의 청년당원들을 뒤로 하고 길건너 '현대백화점' 앞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유세장을 찾았다. 밧줄로 확성기를 꽁꽁매단 방송차량 2대가 들어서면서 유세장 분위기가 달아 올랐다. 유세장에서 흔히 마주쳤던 '일급 5만원'짜리 아줌마 아저씨 운동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젊은 대학생 운동원들이 '기호4번 권영길' 어깨띠를 두르고 방송차에서 흘러나오는 'fucking USA'음악에 맞춰 앙증맞은 춤솜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 율동으로 선거운동에 나선 민노당 선거운동원들
ⓒ 오용석
10여 분 가량 율동을 선뵈느라 이마에 구슬땀이 맺힌 한 젊은 민주노동당원(이승환, 연세대 3)을 만났다.

- 여기 선거운동하러 나오신 분들 대부분이 학생인가요?
"서대문갑지구 당원들이에요. 물론 학생이 많지만 일반인들도 많아요. 특히 회사원들이…."
- TV합동토론 후에 유세장 시민들의 반응은 어때요?
"사람들 인식이 많이 좋아진 걸 정말 피부로 느껴요. 그래서 힘도 절로 나고..."

▲ 주정야독(晝政夜讀)하겠다는 민노당 서대문갑지구 청년당원(앞)
ⓒ 오용석
- 하루에 몇 시간이나 활동하죠?
"매일은 아니지만, 보통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9시까지요."
- 학생당원인데 시험기간하고 겹쳐서 힘들지 않아요?
"힘든 거 없어요. 독감도 안걸려요. 시험이야 주정야독(晝政夜讀)하면 됩니다. 하하하."
- 이번 선거에서 바라는 점은?
"(머쓱하게 웃으며)물론 당선이죠! 그게 아니라면 두자리수 득표죠. 김종필같은 사람이 제3당하는 건 못 봐주겠어요."

[오후 5:20]
날카로워진 선관위는 민노당의 기쁨?


인터뷰에 한창인데 유세장 한쪽에 서 있던 선관위 차량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공식 선거운동원들은 어깨띠 외 어떤 홍보물도 들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들고 있는 피켓을 내려주세요." 선관위측 경고방송이 끝나자마자 '공명선거'라는 완장을 두른 선거관리위원들이 유세장안으로 들이닥쳐 끝내 민노당 당원들과 몸싸움이 일어났다.

▲ '피켓' 시비로 몸싸움을 벌이는 선관위원과 민노당당원들
ⓒ 오용석
전에 없던 일이라 놀랐는지 난데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한 선거운동원(이00, 민노당 서대문갑지구 당원)에게 물었다.

- 선관위 제재가 평소에도 심한가요?
"전에도 그러긴 했는데, TV토론 후에 눈에 띄게 심해졌죠."
- 예를 들자면?
"오늘처럼 저렇게 유세장으로 뛰어들어와서 실력행사하는 건 처음이에요. 얼마 전부터는 유세장에 1시간 정도 미리 와서 감시하더라고요."
▲ 선관위원들이 "저게 문제"라며 빼앗으려한 피켓들
ⓒ 오용석
-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민노당이 그만큼 정치적 관심을 끄는 게 아니겠어요. 귀찮고 짜증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 기쁜 거 아니예요? 우리가 두려워서 저러니까."

[오후 6:30]
괜찮은 한사람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선관위 '실력행사 사건'을 뒤로하고 민노당측 관계자들의 사전유세가 한창일 무렵 유세장이 또한번 술렁거렸다. 영화 '낮은 목소리'로 유명한 변영주감독이 찬조유세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를 많이 확보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유세장에서야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민노당 유세장에서는 낯설은 풍경이다. "이번에도 죽은 표 만들거냐고 주변사람들이 핀잔을 놓습니다. 하지만 될 사람 밀어주자는 말때문에 6년을 고생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 찬조유세에 나선 변영주감독
ⓒ 오용석
남자 못지 않은 체구답게 연설도 씩씩하게 마치고 내려오는 변감독은 다음 스케줄을 챙기느라 바쁜 눈치였다.

-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6개월 전부터 얘기하고 함께 행동한 후보는 권후보 밖에 없었습니다."
- 특정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이유는?
"상대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후보 한명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민주 대 반민주'는 아닙니다. 전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민노당을 지지합니다."

- 며칠 전 영화인들이 의정부 여중생 사건과 관련해 항의집회를 했는데?
"저도 그때 같이 했습니다."
- 하지만 사건이 6개월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하게된 이유는?
"저도 일회성 행사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미군에 의한 폭력 살인 등) 일이 어디 미선이 효순이 사건만은 아니잖아요. 윤금이씨도 그렇고 미군이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니까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는 의미였습니다."

[오후 7:40]
어서 가세! 빼앗긴 땅으로


권영길후보 거리유세 취재를 마치고 서둘러 도착했건만, 광화문 사거리에는 벌써 '촛불반 사람반' 발딛을 틈조차 없다. 계속되는 연사들의 발언에 지친 듯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이제 그만 갑시다! 대사관 앞에 가서 합시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5만에 달해 넘쳐나는 시민들이 인도를 나와 경찰이 쳐놓은 저지선을 뚫느라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 추모집회 참석 시민들이 경찰을 밀어내고 있다
ⓒ 오용석
경찰도 범대위도 '미대사관으로 가자'는 시민들의 요구를 막지 못했다. "찢겨진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땅에 피울움있다∼". '광야에서'에서와 함께 물밀 듯 촛불행렬이 미대사관으로, '빼앗겼던 세종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집회 참가자들에 가로막혀 길바닥에 붙어선 자동차에서는 줄곧 "빠밤빠∼밤빰" 경적이 울려 나왔다.

▲ 경찰 저지선을 뚫고 미 대사관으로
ⓒ 오용석
[오후 8:18]
미대사관, 민주주의 그리고 희망

광화문에서 미대사관까지 촛불행렬이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여 분이 채 못 됐다. 80년 서울역에서 87년 시청으로 가는 데 7년, 다시 시청에서 이곳 세종로까지 오는 데 15년이 걸렸다. 불과 30분 안에 대한민국 건국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땅인 이곳 미대사관 앞 세종로에서는 단 한 번도 우리의 외침이 허용되지 않았다. 세종로를 되찾는 데 그렇게 반 백년이 필요했다.

▲ 세종로에 도착한 시민들(전경차너머로 미대사관이 보인다)
ⓒ 오용석
광화문에서 세종로로 이어진 촛불의 물결은 지난 월드컵 당시 광화문을 메웠던 붉은색 티셔츠의 발랄함과는 달랐다. 물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동창회 모임에서 함께 나왔다는 아줌마 부대들도, 시험을 코앞에 두고 부모 몰래 거리로 나온 학생들도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도 그때처럼 찾아보기 쉬웠다.

하지만 집회의 끝자락에서 여중생 두 명과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세종로에서 타오르는 촛불들이 단순한 축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어느 학교 몇 학년이에요?
"중계중학교요. 2학년인데요."
- 안 추워요?
"아까는 괜찮았는데 저녁되니까 추워요. 호호호."
-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요?
"학교에서 선생님이 비디오도 보여주고 (집회가 있다고)가르쳐 줬어요"

- 월드컵 때도 (광화문에)나와봤을 텐데 다른 점이 있나요?
"그때는 오빠들하고 막 뛰어다니고 그냥 재밌었죠. 근데 오늘은 그때처럼 막 그러지 못하겠어요. 시위잖아요."
- 시위가 뭔지 알아요?
"아저씨, 어려운 거 묻지 말아요. 더 춥게. 하하! 아무튼 애들이 미군땜에 죽었는데 미군은 계속 잘 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 국가잖아요. 나쁜 사람은 벌받고 좋은 사람이 잘 사는 거 잖아요."

12월 14일에도 광화문에서는 촛불시위가 있다. 학생들은 기말시험을 끝내고 저녁에 또 올 거라고 했다. 되찾은 땅에서 희망을 보았다.

요즘 서울엔 독감이 한창이다. 하지만 12월 7일, 쌀쌀한 겨울에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누구 하나 아프지 않았다. 행동하는 젊음은 시들지 않는다고 했나? 열심히 저마다의 자리에서 일하는 당신, 주말에 거리로 나서라. 웅크리고 집에만 있다가 독감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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