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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95년 봄. 언제나 방금 잠에서 깨어난 듯 게슴츠레한 눈빛을 하고 다니는, 일명 '구영탄'이라 불리우는 여자선배를 만나 친하게 지냈다.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던 '구영탄' 선배는 어린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말은 내 마음에 착착 와 닿았다.
구영탄 선배는 저학년 시절에는 물론이고 그때에도 시집이나 소설책은 읽지 않는다고 했다. 나처럼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땐 선배들이 그런 '나약한 책'은 마음을 약하게 한다고 읽지 못하게 했고, 그 후 시집이나 소설책은 선배의 마음속에 절대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가 되었다고 했다. 물론 구영탄 선배가 이 이야기를 해준 것은 나도 '나약한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 아닌 명령에서였다. '넌 눈물이 많아서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친절한 말을 덧붙여서 구영탄 선배는 내게 금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선배가 그랬듯이 그 후 시집이나 소설책은 내게서 자연스럽게 멀어져갔다.
모든 시집이나 소설이 금서는 아니었다. 박노해, 백무산, 브레히트는 좋은 시인이었고, 그들의 시만이 예술이었다. 소설가는 막심 고리끼, 황석영, 조정래, 조세희 뿐이었다. 이들이 아닌 다른 작가의 글은 운동가의 마음을 나약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글이었고, 그야말로 쓰레기 중의 최고 쓰레기였다.
박노해가 언제나 박해받는 노동자들의 해방을 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사랑타령을 하는 시도 충분히 아름다우며, 노동자가 주인공이 아니고 계급투쟁에 관한 주제가 아닌 소설도 충분히 좋은 소설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 스스로 규정해 놓은 금서는 아주 오랫동안 해제되지 못했고, 그것은 내 문학적 취향과 관심을 상당히 좁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나는 문학을 단순히 도구적, 즉 사회변혁에 이바지해야만 하는 것으로, 그런 문학만이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인식했다. 인간을 반성하게 하는 것은 여러 방법과 길이 있듯이, 문학도 세상을 성찰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구조를 고발하는 표현방식은 많다는 것을 몰랐다.
지금까지 내 마음속에 금서가 남아있고, 아직도 협소한 문학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성석제의 글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당연히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설은 의미 이전에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 속에서 의미와 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지, 의미 속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황만근....>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해 읽는 내내 행복했고, 문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허술하지 않은 탄탄한 구조의 이야기만이 섬뜩하리만큼 예리한 반성과 성찰을 불러온다는 것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거대한 소재와 의미심장한 주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일상의 가벼운 소재와 소시민의 삶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가 그 근거이다.
아이엄마가 된 구영탄 선배는 과연 금서를 해제시켰는지, 요즘은 시도 소설도 읽는지, 그래서 가끔 나약해진 마음도 느끼고 나약한 마음이 세상 살아가는데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궁금하다.
가끔 구영탄 선배가 그립다. 만나면 이 책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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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창비(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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