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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이 한겨레에서 문책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게 여기던 차였다. 직무정지의 이유인즉, 한겨레 기자의 신분으로 특정 정당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MBC 100분 토론에 민노당측 대표로 출연한 것이 문제가 됐던 모양이다. 이전에도 한겨레의 한 기자가 민노당 당원인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한겨레 내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중이라고 하니 합리적인 결론을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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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세화 모두 잘못했다?"

조선일보 '비공식 주필'('밤의 주필'/편집자)이자 안티조선 진영의 얄개 진중권이 이 문제에 끼어 들지 않을 리가 없다. 이미 민노당에서도 탈당한 처지에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한마디 한다.

제목부터 가관이다. '한겨레 기고를 거부하며'란다. 이전에는 '나의 한겨레 절독기'라는 글도 썼던 것 같은데, 아마도 이번에는 진짜로 절독할 모양이다. 명색이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설마 두 번씩이나 맘에 없는 말을 하겠는가.

내용 또한 진중권답게 번뜩이는 논리의 칼날을 휘두른다. 두 번만 휘둘렀다간 여러 사람 다칠 필봉이다. 진중권 말대로라면, 이제 한국에 서 마음놓고 읽을 수 있는 언론 매체는 하나도 없다. 진중권 말에 따르면, 심지어 그가 뉴스게릴라로 활동하는 <오마이뉴스>조차도 특정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골몰하는, 조중동과 똑같은 언론사인 것이다.

글의 말미에 가서, 진중권은 특유의 악담을 독자에게 퍼붓는다. 자신의 글을 보고 욕설로 가득한 댓글을 도배할 '인터넷 룸펜 떼거지'들이 예상되며, 정 욕을 하려거든 말이 되는 욕을 하라고 일갈하는 것이다.

환희와 분노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환희는, 다시는 <오마이뉴스> 지면에서 진중권 글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환희다. 분노는, 괜한 독자들까지도 졸지에 인터넷 룸펜 떼거지로 매도 당했기 때문에 분노다. 대체 뭐하자는 짓인가? 진중권이 아무리 입바른 말을 해도, 이 못된 버릇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싫어한다. 대체 뭣하러 바른말 하면서 욕을 얻어먹는단 말인가?

한겨레와 홍세화 선생에 대한 진중권의 글은 사실 관계부터 잘못되었다. 궁금하면 <프레시안>에 가서 관련 기사와 홍세화 선생의 질의서를 읽어봐도 좋다.

분명히 하자. 홍세화 선생이 직무 정지당한 사유는 민노당 당원이라서가 아니다. 기자 신분으로 정당 선거활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내규는 따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궤변일 뿐이다.

한겨레는 홍세화 선생이 홍보한 정당이 민노당이건 한나라당이건 하나로국민연합이건 똑같은 처분을 내렸을 것이다. 사내에서 논의중인 민감한 사안이었던 만큼, 홍세화 선생이 대선 기간 동안만이라도 신중함을 보였어야 했다.

사실 관계의 왜곡은 진중권의 특기인 만큼 또 한 번 드러난다. 홍세화 선생이 아웃사이더 편집인으로 방송에 출연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는 게 진중권의 주장이다.

거짓말이다. 한겨레 측에서 홍 선생의 MBC 출연 예정 사실을 미리 알고, 한겨레 기자인 사실을 적시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 편집인으로 출연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 관계부터 똑바로 알고 독자를 모독하건 말건 하기 바란다.

이 사안은 진중권이 콩팔칠팔 '안티 한겨레'를 외칠 일이 결코 아니다. 양비론을 써먹고 싶지는 않지만, 한겨레 측과 홍세화 선생 측 양쪽에 골고루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아울러 국내 정치계와 언론계의 미묘한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할 여건도 성숙되지 않은 국가에서 언론인의 정당 홍보 행위는 시기 상조다. 굳이 개개인의 책임을 따지자면, 한겨레는 징계를 내리며 지나치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한 것이, 홍세화 선생은 내규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방송에 출연한 것이 잘못이다.

개혁국민정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을 까는 재미로 살아가는 진중권이니만큼, 이 문제를 한겨레-<오마이뉴스>의 특정 후보 지지 여부와 연관짓는 치밀함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어떻게 홍세화 개인의 문제가 한겨레-<오마이뉴스>의 부도덕함과 직결되는지, 그 통찰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어쨌든, 진중권이 문제를 제기했으니 살펴보기는 하자. 과연 한겨레는 진보의 탈을 썼을 뿐 조선과 다를 바 없는 존재인가? <오마이뉴스>는 인터넷 룸펜들이 기웃거리며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발악'하는 언론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중권은 초점 자체를 잘못 맞추고 있다.

물론 한겨레는 국내 언론 가운데서는 가장 진보적인 언론 매체에 속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진보' 언론이 아니다. 이건 정말 애석한 일이다. 한겨레가 추구하는 가치는 사실 민주화 운동 세력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굳이 이념적으로 재단하자면, 민족주의 우파에 속하면 속했지 진보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열심히 일해 돈 벌고, 아들 군대 안 빼고 꼭 보내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환경 문제 등에 관심도 가지고, 외국인 노동자나 소수자에 대해 배려하고, 여중생 사망 사건 같은 범죄에 분노하는. 민족주의 우파적 이념을 지닌 신문이다.

이런 언론에게 진보적이지 못하다느니, 진보의 탈을 쓴 보수라느니 몽둥이질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한겨레가 특정 후보에 대해 친밀감을 보이는 것도 그런 이념적인 부분이 맞닿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진중권은 한겨레도 이제 끊겠다고 한다. 과연 진중권이 볼 신문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진중권은 이제 연합뉴스 보고, 고귀한 진보 언론 <슈피겔>이나 <가디언> 보면서 흐뭇해 할 생각인가?

조중동이 신문 시장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마당에, 한겨레가 못된 언론이라면 과연 제대로 된 언론은 존재하는가? 자그마한, 지엽적인 부분을 놓고 조중동에 대항하듯 막말을 늘어놓는 진중권이 안쓰러울 뿐이다.

한겨레가 사실 왜곡을 했나, 외국 언론 기사를 엉터리로 번역해서 이용해 먹었나? 아니면 권영길 후보 얼굴을 괴물처럼 그려 놓았던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치하는 후보에 약간의 호의를 나타낸 것 뿐이다.

홍세화 선생은 한겨레에 실린 최상천씨의 '누가 옳은가?'라는 칼럼을 문제 삼았다. 논리도 없이 특정 후보 지지하는 글은 괜찮고, 정당 활동은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질의서도 작성했다. 홍세화 선생도 잘못 알고 있다.

최상천의 칼럼 며칠 전에는, 민노당 당원 송경아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아예 까놓고 민노당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한겨레는 진보 언론은 아닐지 모르지만, 진보를 거르지 않고 받아들일 정도의 생각은 있는 언론이다. 진중권처럼 끊느니 기고 거부하느니 조중동과 다를 바 없다느니 욕먹을 언론은 아니란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대한 진중권의 지적은 자가당착 그 자체이다. 진중권이 누군가. 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노당 당원 신분으로 '강진 논쟁'을 일으켜 이문옥 후보 선거운동을 질펀하게 했던 인물이다. 서울 시민도 아닌 강준만 교수를 이용하고, 시민들이 쓴 기사를 받아들이는 <오마이뉴스>를 이용해서 이문옥 선거 운동을 했다. 진중권은 이해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오마이뉴스>에는 이회창이나 장세동 지지하는 글도 논리만 있으면 실린다.

특정 후보에 유리한 기사가 많은 것은 그 후보가 시대적 요구에 맞는 인물이라 그런가보다 해야지, <오마이뉴스>의 편파성을 운운할 일이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공개 지지 표명도 검토하고 있지 않은가. 진중권은 민노당 탈당하더니 자기가 예전에 했던 일들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진중권은 <오마이뉴스> 지면에서 이문옥 선거운동했던 과거에 대해서부터 참회하기 바란다.

결론은, 각 언론은 자기들 이데올로기에 맞는 후보에게 호감을 나타내기 마련이란 것이다. 단 이는 사실 왜곡이나 허위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유효하다. 그래서 민족주의 우파에 속하는 한겨레가 노 모 후보를 밀어주는 것도, 또는 장세동 지지 기사도 허용되는 <오마이뉴스>에서 유독 노 모 후보 기사가 창궐하는 것도, 다 이해할 만하다.

신문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조중동이 유독 이 모 후보만 예뻐하는 상황에서, 더욱이 예뻐하다 못해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기사화하는 마당에,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대척점에 선 후보를 예뻐하는 상황은 차라리 다행스럽다.

끝으로, 진중권의 그 가시 돋친 말, 독자더러 '인터넷 룸펜'이라고 손가락질한 것은 두고두고 진중권의 앞날에 장애물이 될 것임을 말해두고자 한다. 자기 글에 대해 반박하면 무조건 꼴통이라는 식으로 재단하는 진중권. 독자들이 댓글에 욕을 쓰기 싫어도 쓰고야 말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인물이다. 도저히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 진중권이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글로써 늘어놓더라도, 독자들은 '인터넷 룸펜'이라는 비난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강준만 교수나 김동민 교수가 괜히 거품 물며 진중권과 싸운 게 아니다. 진중권이 여지껏 교수 자리 못 따낸 게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인성이 피폐해서 그렇다. 인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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