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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겨레>를 절독하고 기고를 거부한다는 글을 올리자 여러 개의 반론이 올라왔다. 일단 거기에 대해 간단한 코멘트를 하고 넘어가자.

그중 하나의 논지는 한겨레의 내부 사정을 어떻게 알고 그러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는 기자 본인은 <한겨레> 사정을 얼마나 잘 알길래 그런 기사를 썼는지 모르겠다. 가령 손석춘씨의 자리에 김동민이 들어갔을 때, 나는 그 속사정을 몰라서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들면서도 그것에 대해 언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비판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드러난 사실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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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기고를 거부하며


또 하나의 논지는 <오마이뉴스>는 외려 더 편파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마침내 할 말을 잃고 만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가? '180cm의 키에 45kg의 몸매를 가진 사람을 찾는다'는 캠페인을 했던 매체가 어떻게 더 편파적일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언론'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을 아예 떼버리기 전에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게 한때 조중동의 편파성을 성토하던 그 매체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반론은 아니지만 언론의 객관성에 대한 철학적 문제제기도 있었다. 철학적 엄밀함을 가지고 본다면 세상에 객관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 일상언어에서 '객관적'이라는 낱말은 그렇게 높은 추상의 차원에서 사용되는 게 아니다. 아무리 그 기준이 모호하다 해도 우리는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편파적인 것과 공정한 것을 구별하는 대체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

물론 독자들 대신 판단을 내려주고 그들을 특정한 정치적 결정으로 동원하는 당파적 저널리즘도 있을 수 있다. 2차대전 전의 유럽 언론도 그랬고, 조중동이 그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언론개혁을 외치던 사람들이라면 정말 우리 언론이 어떤 길을 걸어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권은 단지 5년의 문제이지만, 언론은 신문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경계해야 할 장기적인 문제다. 미디어 윤리를 당파의 이해 관계에 종속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배성록 기자의 글은 고약한 구석이 있다. 일단 내 글에서 나는 "안티 한겨레"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 그것은 홍세화 선생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 글을 쓸 당시에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구독을 거부하고, 기고를 거부하는 것은 <한겨레>가 내린 부당한 조치에 대한 나의 '개인적' 항의의 표현이다. 나는 거기서 남들에게 나를 따라 하라고 선동한 바가 없으며, 그 항의에도 분명히 "징계조치를 철회할 때까지"라는 단서를 붙였다. 여기서 나는 배성록 기자의 독해력을 의심한다.

조중동이 언론의 본령에서 벗어났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해 왔던 <오마이뉴스>에서 <한겨레>에 대한 이 정도의 비판도 견디지 못해, 그것을 마치 <한겨레> 음해공작이나 되는 양 왜곡해 인신공격까지 퍼붓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조중동이 나쁘면 <한겨레>나 <오마이뉴스>는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가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오마이뉴스>가 해서는 안 될 짓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대학가의 조선일보가 되자." 90년대 중반 유명한 학생운동조직에서 하던 말이다. <오마이뉴스>는 정말 반대편에서 조선일보를 따라갈 작정인가?

배성록 기자의 글에서 그래도 흥미있는 부분은 진중권이 대학교수가 되지 못한 이유를 논하는 부분이다. 배성록 기자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진중권이 교수가 못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 학위가 없고, 둘째, 학위가 있어도 요즘 교수자리가 없고, 셋째, 설사 학위가 있고 자리가 나도 진중권은 그거 바라고 학교에 원서를 낼 만큼 우리 사회에 낙관적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것이 <오마이뉴스>의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정보라 생각했다면, 적어도 당사자인 내게 인터뷰라도 해서 그 이유를 물어봤어야 할 일이다.

내게 이 정도의 욕은 욕도 아니다. 공적인 매체에 이런 인신공격성 글을 올려놓는 배성록 기자의 "인성"이야 내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일생을 두고 해결해야 할 그의 인생의 과제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이런 글이 어떻게 1면 탑으로 올라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생나무 기사'라면 기자 본인의 책임이지만, 일단 채택된 기사의 책임을 '오마이뉴스' 측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저런 글이 기사라고 올라간 것은 편집부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

'오마이뉴스', 이렇게 밖에 못 하는가?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가? 이게 당신들이 외치던 "개혁"된 언론의 모습이란 말인가? 기껏 이런 꼴을 보기 위해서 안티조선운동을 해왔단 말인가? 조중동, 그리고 모든 신문이 <오마이뉴스>를 닮을 때, 그때 언론개혁운동은 드디어 그 찬란한 목표에 도달한다고 보는 것인가? 솔직히 나는 그렇게 개혁된 언론의 모습에 소름이 끼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심정은 매우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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