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신:23일 오후3시 30분> - (최경준 기자)
"'전자개표 부정 의혹' 재검표하라" 주장에
한나라 "이회창 후보 두번 죽이는 일" 난색
- 이 전 후보 지지자 100여명, 한나라당 연석회의 항의시위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 지지자 100여명이 23일 한나라당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장에 몰려가 "16대 대선 재검표, 수개표"를 요구하며 항의시위를 벌이는 등 '전자개표 부정의혹' 소동이 심화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전자개표 부정의혹' 소동이 "이회창 후보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원·지구당위원장·이 전 후보 지지자들의 반발 등을 감안, 입장을 표명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이회창 전 후보 지지자들은 이날 오전 10시30분경부터 한나라당사 앞에서 "한나라당은 수작업 개표 즉각 촉구하라", "전자개표 침묵하는 한나라당 각성하라" 등의 피킷을 들고 항의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또 오전 11시 30분경 "재검표, 수개표"를 외치며 한나라당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가 열리고 있는 당사 10층 대강당 안으로 몰려갔다. 이들은 당직자들의 제지로 대강당 복도로 밀려난 뒤에도 확성기를 동원, '재검표, 수개표' 등의 구호와 '이회창'을 연호했다.
이들은 특히 "전자개표 부정으로 온국민이 분노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안에서 세대교체니 당 쇄신이니 논의할 때냐"며 "한나라당은 각성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또 "이회창 후보는 정계은퇴를 철회하고, 돌아오라"고 외쳤다.
한 아주머니는 "밥맛도 없고, 살기도 싫다"며 "노무현하고 같이 살면서 대한민국을 팔아먹을 것이냐. 젊은 사람들은 정신차려라"고 울부짖었다. 또 다른 이 이 후보 지지자는 "한나라당이 여당인지 야당인지 헷갈린다"며 '전자개표 수작업' 요구를 거듭 촉구했다.
특히 확성기를 잡고 있던 지지자가 "지금 우리는 수개표 재검표를 요구하고 있는데 안에서 국회의원들은 '싱글벙글' 웃고 있답니다. 뜨거운 맛을 보여줍시다"라고 말해 지지자들 일부가 재차 대강당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과 당직자들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회창 후보 두 번 죽이는 일..." VS "국운과 당의 자존심 걸린 문제"
한편, 지지자들이 들이닥칠 당시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장에서도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는 '전자개표 부정 의혹'에 대한 대책을 두고 격론이 오갔다.
안상수(전 선대위 부정선거위원장) 의원은 참석자들에게 "개표 당일에는 각 지구당에서 이의제기가 없었기 때문에 후보가 패배를 승복했었다"며 "그러나 21일 밤 11시경 인터넷에 '국정원 중견간부 양심선언 형식'으로 글이 올라 '전자개표 조작'을 주장, 확산되고 있다"며 인터넷에 올려진 글을 소개했다.
안 의원은 또 △혼표 2건 △부재자투표 개표 중 오분류 1건 △투표자수, 투표용지수 불일치 1건 등 기계오류 등 문제가 되는 사례를 발표했다.
안 의원은 또 "포천지구당 등 상당수 지구당에서 절대 노무현 후보의 표가 나오지 않을 곳에서 노 후보가 압승을 거둔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출구여론조사가 발표 시점에서 번복되었다는 의혹도 있다"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각 지구당별로 개표현장에서의 각종 문제점을 추가로 상세하게 파악, 보고해 달라"며 "향후 당 차원의 추가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석회의가 끝나기 직전, 참석한 지구당위원장들은 "부정 사례를 모아서 중앙당 차원에서 투표함 보존 신청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원복(인천 남동)위원장은 "인천 남동의 경우 미분류표에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4.5% 차이로 졌는데 전체 결과에서는 9% 지는 것으로 나왔다"며 "미분류표는 전체 표의 셈플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전자개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광원(경북 봉화·울진) 의원은 "개표 종사원 중에 전교조출신이 있었다"며 당 차원의 조사를 촉구해 논란이 예상된다. 자신을 "대표적인 부정투표의 피해자"라고 소개한 임진출(전국구) 의원도 "부정선거에 대한 대책을 미뤄서는 안된다"며 "선거 분위기가 피워져 있을 때 같이 피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의원은 또 "선배 의원들은 어제 연석회의에서 이회창 후보를 두 번 죽이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을 했는데 이것은 국운과 당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며 "재검표 결과 우리가 이길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선거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 의원에 이어 심재철 의원이 발언을 위해 단상에 오르자 사회를 보던 최연희 의원이 "심 의원은 당직자 아니냐"며 자제를 요청했다. 그러자 참석자들이 "지금 뭐하는 거냐. 발언하게 해라. 연석회의에서 결정은 지도부가 아니라 지구당위원장들이 하는 것이다"라고 고성을 지르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편 서청원 대표 등 당 지도부는 당초 '당 쇄신과 단결' 문제 등을 놓고 논의하기 위한 자리에서 전자투표에 대한 성토가 예상밖으로 봇물을 이루고, 이 전 후보 지지자들까지 회의장으로 몰려온 사태에 대해 난색을 표하며 굳은 표정으로 회의를 끝냈다.
이와 관련 한 초선의원은 "(대선 패배 후) 일종의 통과의례"라면서 "그 만큼 패배에 대한 충격이 크기 때문"이라고 '전자투표 부정 의혹 소동'을 일축했다. 안상수 의원은 "내일(24일) 오전까지 사례들을 모아 당 지도부에서 논의한 뒤 최종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1신:23일 오전 9시> - (유창선 기자)
창사랑, 한나라당 그리고 <동아일보>
- 전자개표 부정의혹 소동을 보며 드는 단상
패자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것이 우리의 예법이다. 더군다나 대통령 자리를 눈앞에 두었던 이회창씨가 눈물을 흘리며 정계은퇴까지 한마당에, 초상집이 되어버린 곳을 향해 쓴 소리를 하는 것은 사실 내키지 않는 일이다.
자칫하면 분위기에 편승하여 패배한 쪽을 난도질하는 모습으로 비쳐질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분명 아직은 패자에게 회초리를 들 때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끝내 인내를 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게 되고 말았다. 그렇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풍경 1] '창사랑'의 수동 재검표 요구 서명운동
창사랑 회원들과 이회창 전 후보 지지자들은 21일 한나라당 당사 앞에 모였다. 이들은 전자개표 부정의혹이 있다며 '16대 대통령선거결과 재검표추진 국민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수동 재검표 요구'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중앙선관위의 전자개표가 조작됐다'는 주장이 담긴 글을 시민들에게 배포하며 "전문가들도 소프트웨어 집계과정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조작도 가능하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사태의 발단은 개표가 끝난 직후인 20일 새벽부터 몇몇 네티즌이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개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수작업 개표를 요구하는 글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어 21일에는 국정원 중견간부를 자처하며 개표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양심선언' 형식의 글, 전자개표 조작설을 제기하는 글들이 잇달아 일부 언론사와 정당 홈페이지를 통해 유포되었다.
경찰의 IP 추적 결과, 문제의 글은 지난 20일 울산의 한 PC방에서 작성되어 모 정당 홈페이지에 최초 게시된 이후 다른 곳으로 유포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관위는 전자개표 부정 주장에 대해 "개표 검증절차를 모르는 사람이 지어올린 전혀 사실과 다른 허위의 내용"이라며 일축하며, 검찰에 조작설 유포자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선관위는 개표참관인이 참여한 가운데 개표기를 가동했고, 개표기가 분류한 투표지를 개표사무원이 다시 육안으로 확인했으며, 개표 결과를 전송하는 과정에서의 조작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전산집계와 별도로 투표구별로 후보자별 득표수를 시.도 위원회에서 팩시밀리로 전송받아 전산집계와 대조했다고 밝혔다. 또 시간대별로 후보자별 득표수를 팩시밀리로 송부받아 전산집계와 대조하는 3중 안전장치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전자개표 부정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창사랑 회원들과 한나라당 당원들이 이에 관한 아무런 정황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지 믿을 수 없다, 한나라당 우세지역에서 어떻게 노무현 후보가 앞설 수 있느냐는 식의 것이다.
'국정원의 중견 간부'를 자처하며 인터넷에 올린 정체불명의 글을 보면 중앙선관위가 밝힌 개표과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구체적인 의혹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한마디로 난데없는 '소동'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풍경 2] 한나라당, 투표함 보전신청 여부 검토하기로
그런데 이 어처구니없는 소동을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하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인터넷에 올라온 출처불명의 글 하나가 원내 과반수 당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은 22일 선대위 의장단 및 자문위원장단 연석회의를 열고 전자개표 부정의혹과 관련하여 투표함 증거보전을 신청할지 여부를 신중히 검토키로 했다. 남경필 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각 지역에서 전자개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하는 사례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23일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당 차원에서 공론화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쯤되면 이제 일은 장난이 아니다. 만약 의혹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될 경우, 당장 '국정원 중견 간부'의 글 내용이 허위로 드러날 경우 그에 맞장구를 친 한나라당은 대선패배에 이어 두 번 죽게 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나라당은 경선불복을 한 이인제 의원이, 후보단일화 결과 승복을 파기한 정몽준 대표가 지금 어떤 신세가 되었는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지금 한나라당이 이번 대선에서 자신들이 패배한 원인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한나라당의 패인은 한마디로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제 한나라당도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걸맞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주문을 한다. 그러나 끝내 소귀에 경읽기인가. 한나라당은 전자투표는 믿을 수 없으니 다시 손으로 재검표하자는 주장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이럴 거면서 대선공약에서는 정보화를 말했던 것인가. 끝내 재검표를 손으로 하고 싶으면 그 엄청난 비용을 한나라당이 책임지겠다는 약속까지 하는 것이 공당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인터넷에 올라온 출처불명의 글 하나로 마침내 칼을 빼들려고 하고 있는 한나라당, 이번에는 전자개표 부정의혹 규명 국정조사라도 주장해야할 판이다.
차라리 이런 논법은 어떨까. 이번 노무현 당선의 배경에는 인터넷의 성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동안 정보화정책을 추진하며 인터넷 보급에 앞장섰던 것이 누구였던가. 바로 김대중 정권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결국 노무현 당선의 배후와 거대한 음모가 드러난 것이다.
이제 그 정보화 음모의 전모를 밝혀내기 위해 김대중 정권을 상대로 강력한 투쟁을 벌이겠다, 뭐 그런 식의 주장말이다. 애꿎은 전자개표 가지고 시비를 거느니 차라리 그런 주장이 낫지 않을까. 그냥 보기가 안쓰러워 해보는 말이니, 혹여라도 귀담아 듣지는 말기 바란다.
[풍경 3] <동아>, 인터넷을 통한 흑색선전에 이번에는 침묵
23일자 <동아일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대선 기간 내내 인터넷에 대한 비난에 목소리를 높였던 <동아일보>였다. '인터넷 권력…대선-반미등서 의견 다르면 언어폭력 난무' '인터넷매체는 무소불위인가' ''인터넷 권력'도 민주화해야' 등 기사, 사설, 칼럼 등을 통해 인터넷상에서의 언어폭력과 무책임한 정보, 특정 후보 편들기를 비난하고 나섰다.
심지어 <동아일보> 시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인터넷 민주주의의 의미를 평가한 MBC <미디어비평> 내용까지 비판하고, 이에 동조하는 독자의 편지까지 게재하였다. 쉽게 말해 '작심하고' 인터넷에 대한 공격에 나선 셈이다.
좋다. 선거철에 인터넷에 흑색선전과 비방이 적지않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 그같은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랬던 <동아일보>라면 울산의 PC방에서 '국정원 중견간부'를 자처하는 사람이 올렸다는, 인터넷상의 정체불명의 글에 대해서도 한마디는 있을 법했다. 바로 <동아일보>가 비판했던 무책임한 정보의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영향으로 원내 과반수 정당이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동아일보> 지면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무책임한 정보에 현혹되지 말자라든가, 글을 올린 사람을 찾아내라라든가 하는 소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안 올려도 될 대목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올리고, 정작 목소리를 올려야 할 대목에서는 침묵하는 모습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설마하니 필자가 정말로 23일자 <동아일보>에 그같은 글이 실렸기를 기대해서 신문을 뒤져봤겠는가. <동아일보>가 대선 기간중에 인터넷을 향해 무모한 공격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꺼낸 이야기임을 독자들은 다들 알 것이다.
필자는 다른 지면에서는 100년을 위한 '내셔널 아젠다'를 논하고 있는 <동아일보>가 어째서 인터넷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인터넷을 언어폭력과 비방의 공간으로 매도하고 나섰는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동아일보>가 무슨 수로 21세기 정보화사회로의 거대한 흐름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인터넷에 대한 부정과 편견으로 가득찬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정보화사회로의 발전을 논하고 있는 전세계 수많은 석학들과의 논전부터 벌여야 할 일이다.
대선이 끝나고 너도 나도 인터넷의 힘을 말하고, 인터넷이 참여민주주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말하고 있는 이 시간, 그래서 <동아일보>는 이제 무슨 말을 해야하는 것일까.
세 곳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그 공통점이 무엇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시대의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은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