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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인 "데칼로그(Dekalog)"는 열 가지 말씀 즉 십계명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십계명은 대략 기원전 13세기 초반경에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끈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신에게 직접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십계명"이라는 단어는 성서에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다. 출애굽기(20장)와 신명기(5장)에 나오는 신이 내린 계명을 후대에 편의상 열 개로 구분해서 십계명이라 칭하며 사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계명이 무엇이기에 아직도 생명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일까?

최근 우려해왔던 인간복제가 현실화되자 많은 사람들이 윤리의 실종, 공황 사태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삶의 보편적인 핵심 준칙을 제시하는 십계명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특정 종교 차원을 넘어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고 공감을 얻는데도 어렵지 않으리라.

독일 신학자 크뤼제만에 따르면, 실제로 유럽에서의 십계명에 대한 관심과 해석은 비좁은 신학적 주석에 머무르지 않고 TV광고, 드라마, 영화, 소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10부작 연작영화 <십계>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 정병진
이 책에서 저자는 철학, 신학, 영화를 가로지르면서 십계명에 담긴 그윽한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고 이미 지식소설 <알도와 떠도는 사원>으로 주목받았으며, <영화관 옆 철학 카페>를 쓴 저자가 자신의 탄탄한 인문학적 실력을 다시 한번 힘껏 발휘하여 내놓은 것이다.

그가 참조한 주요 텍스트는 고대 그리스 철학, 교부신학,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십계>, 독일신학자 크뤼제만의 사회사적 관점에서 본 십계명 해설서인 <자유의 보존> 등이다. 이것들이 산만하게 전개되지 않고 저자의 일관된 시각으로 한데 어우러지면서 읽는 이에게 독특한 재미와 풍부한 지적인 맛을 더해 준다.

지금까지 십계명을 해석하는 전통적인 입장은 십계명의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윤리와 계약의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런 시각에 반대한다. 십계명은 인간과 신이 맺은 쌍무계약이기 때문에 분명한 약속이 주어지므로 윤리처럼 지켜봐야 상응하는 보상도 없고 함께 참여하는 이도 없어 허무하기까지 한 기반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계약이 윤리의 근간이 될지언정 윤리 자체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저자는 신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이는 그가 윤리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존재론적인 시각에서 십계명을 조명하고 있다. 십계명은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존재"(야훼-나는 있는 자니라)라고 밝힌 신이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인 "존재의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전해준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십계명에 대한 이런 존재론적 해석은 파르메니데스 이래 존재론적 철학을 심도 있게 전개한 그리스 철학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더구나 키에슬로프스키의 연작 영화 <십계>도 저자의 이러한 존재론적 해석에 무리 없이 적용되어 맞아떨어지고 있다.

그 한 예로 여섯 번째 계명(개신교는 7번째 계명)에 해당하는 영화 <십계> 중에 "간음하지 말라"(극장판 제목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를 보자. 이 영화는 토멕이라는 청년이 독신녀 막다를 훔쳐보는 것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에 "관음증에 관한 영화"로 오해되곤 하지만, 저자는 정작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그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단서로 사랑을 성적 탐욕으로 이해했던 막다가 토멕에게 "사랑한다고? 그런 건 없어!"라고 주장하다가 "있어요!"라고 고집하던 토멕에게 "네가 옳았어, 네가 정말 옳았어!"라고 인정하는 장면을 적시한다. 즉 이 영화는 성적 탐욕에 대한 사랑의 승리를 말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간음하지 말라"고 한 신의 계명은 정결한 사랑이자 존재에 대한 사랑만이 성적 탐욕과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십계명의 제 1계명부터 제 4계명은 신에 관한 조항이며, 제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인간의 사회생활에 관한 조항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간음하지 말라"와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그리고 "도적질하지 말라"와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가 서로 중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리 굳이 나눌 필요가 없는 것들이 세분되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으며, 존재론적 해석에 의해 근본적으로 십계명은 단 하나의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계명은 제 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이다. 왜 그러냐면, 저자의 생각에는 십계명이 인간을 죄의 산물인 탐욕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롭게 하려는 오직 하나의 일관된 의지의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보기에 십계명은 죄와 탐욕과 자기 자신에서 해방되어 가장 포괄적이고 절대적인 자유인 존재 자체를 향유케 하는 "자유를 위한 위대한 선언"이다. 신은 인간에게 이러한 신적 자유를 부여하여 자신처럼 자유롭게 살도록 십계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데칼로그 - 김용규의 십계명 강의

김용규 지음, 포이에마(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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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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