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대선이 끝난 지 보름이 넘었는데도 <동아일보> '나대로 선생'의 심기는 여전히 편치 못하신 듯하다. '바라던 님'이 낙마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어둡고 울상이다.
(2003.1.3, 우측)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나 선생의 만화에는 희망 대신 염세의 한숨만 가득하다. 2003년 계미년 새해를 맞아 그가 '희생양 없는 세상'을 주문한 것만 봐도 그의 마음이 얼마나 눌려있는지 알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불과 한 해 전만 해도 그의 만화는 이렇지 않았다. 월드컵 16강의 함성과 16대 대선 당선자의 환호로 한반도 이남이 들썩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2002년 1월 1일 신년만화(좌측)를 보시라. 얼마나 활력이 넘치는가. 그런데 그 함성, 그 환호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혹 노무현 후보의 당선과 함께 땅 속에 묻히고 말았나? '16대 당선자'의 환희를 묘사한 예고편과 본영화가 따로 놀기에 한번 해 보는 소리다.
나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입을 딱 벌리고 경악 내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TV를 들여다보던 나 선생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2002.12.20, 우측) '대세론'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손도 안대고 접수할 것 같았던 이회창 후보가 단일화바람에 떠밀려 곤두박질치고, 민주당 내에서도 소외됐던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 당선자가 됐으니 그 충격이 어떠했겠는가. 차마 제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웠을 테지.
어쩌면 나 선생은 그때부터 소화가 안되고 불면증에 시달렸을 것임에 틀림없다. <중앙일보> '왈순아지매'도 이 후보의 패배와 더불어 손에서 붓을 꺾고, 19일밤 울분을 가누지 못해 폭음했던 이문열씨도 살맛을 잃어 이 땅을 떠난다는 설까지 나도는 마당에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인가. 더군다나 노무현의 당선으로 그가 싫어하는 노사모의 명계남씨가 기고만장 설치는 꼴을 지켜보는 것도 고문 중의 고문일 터.(2003.1.4, 좌측)
'이 모든 게 바로 그 놈의 2030 세대 때문이야. 그들만 나서지 않았어도, 아니 18일밤에서 19일 오후에 걸친 인터넷반란만 없었어도 이런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을.' 어쩌면 나 선생은 대선 결과를 이 모양으로 망쳐놓은(?) 젊은 세대들을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북핵으로 나라가 위태로운데도 젊은이들이 "걱정도 팔자야"라며 술잔을 드는 그림에서 2030에 대한 그의 울분을 읽을 수 있다면 지나칠까?(2002.12.27, 우측)
노무현의 승리로 대선이 마무리된 이후, 나대로 선생의 만화에는 세대간의 갈등과 대립. 반목을 부각시키며 5060의 불안을 조명한 그림이 부쩍 늘었다. 나이 드신 어른이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하고 한탄하는 왼쪽 그림도 그 중 하나다.(2002.12.21) 국론이 분열하고 나라가 뒤숭숭한 이때, 어르신들이라도 나서서 중심을 잡아주면 좋으련만 젊은 세대에 밀려 '한물간' 인간쯤으로 전락하고 만 현실을 고발하고 싶은 걸까?
오늘자(2003.1.6) 만화에도 세대갈등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장차관도 인터넷으로 추천받는 인터넷 세상"이 소재다. "열심히 일한 컴맹 떠나라"는 글귀가 적힌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우리 들으라는 얘기군"이라고 한탄하는 5060의 모습이 처연해 보인다.(우측)
남이사 뭐라든 말든 '나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데야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노무현 시대를 이렇듯 '2030'의 승리요 '5060'의 패배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만 재단하는 나 선생의 편향된 시각이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