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도자기,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세계적인 미술품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왜 뛰어난 예술품인지, 어떤 탄생 과정을 거쳤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또한 많지 않을 것이다. 그건 우리가 도자기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도, 역사적인 검증도 해보지 않은 때문이지 않을까?
지난해엔 우리나라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특히 미국과 관련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들먹이는 일도 있었다. 두 여중생의 죽음에서 촉발한 촛불시위는 한미소파를 평등한 관계로 개정하기를 바라는 염원의 함축이었다. 우리 민족이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민족적 자존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 민족 자존심도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지 안으면 안 된다.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남의 나라에 비해 우리가 나은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 중에 가장 먼저 거론되어야 할 것은 겨레문화이다. 우리만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전통문화가 빈약한 미국에게는 큰 무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에 사설박물관인 호림박물관이 여는 '구입문화재 특별전4'는 참으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호림박물관은 호림 윤장섭 선생이 출연한 유물과 기금을 토대로 설립한 사설 박물관이다. 문화를 푸대접하는 사회에서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짓고, 끊이지 않고 전시회를 여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일일 수밖에 없다.
호림박물관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남부순환도로 뒤편 성보중고등학교 부근에 호젓이 놓여있다. 연면적 1,400평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에 4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 야외전시장, 수장고, 세미나실, 자료실, 커피숍, 선물코너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토기 3,000여점, 도자기 4,000여점, 그림과 책 2,000여점, 금속공예품 600여점, 기타 400여점 등 1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국보 8점, 보물 36점의 국가문화재가 있어서 소장품의 다양성과 질적인 면에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조용한 자태를 배경으로 많은 수의 석장승과 돌탑들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어 인상적이다. 석장승이 먼저 반기도록 배려한 박물관의 의도에 흐뭇함이 느껴진다. 현관에는 마중 나온 이희관 학예연구실장이 반갑게 맞는다. 먼저 차를 마시면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 저는 민족문화운동가이면서도 부끄럽게도 아직 이런 훌륭한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 보니까 관람객이 적어 무척 한산한데 운영하시는데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박물관 특히 이번 특별전에서 우리가 좀더 고민했었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예산을 들여 한 이 특별전에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아 홍보도 어려웠을 뿐더러 가끔 교사들의 인솔로 학생들이 관람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회전문과 대리석이 깔린 화장실에만 관심을 쏟습니다. 그때의 전시실의 관람시간은 5분에 불과 합니다. 좀더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박물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누가 인솔해줘야만 관람을 하는 한국문화의 상황은 큰일입니다. 서울의 경우 제 기능을 하는 박물관은 겨우 10여개 남짓인데 서울과 규모가 비슷할 것으로 보이는 일본 도쿄는 무려 300여개나 됩니다. 제가 볼 때는 일본과 문화적 차이가 100여년 유럽과는 200∼300여년이나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 실장은 이런 이야기들을 30분이나 지속할 정도로 한국의 전통문화 환경에 대해 무척이나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특별전을 하면 오히려 일본이나 외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특별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여기엔 완벽한 정형, 아름다운 색깔과 그림의 도자기가 있는가 하면 삐뚤어지고, 색깔이나 그림이 좋아 보이지 않는 도자기도 눈에 띄었다. 그것은 왜 그럴까? 이 실장은 도자기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
-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청자라 이름이 붙여졌지만 색깔은 회색이나 암갈색이 다수 있었다. 청자라면 이름 그대로 파란색이어야 하지 않을까?
“도자기의 경우 태토(胎土:바탕흙)의 색이 반투명한 유약을 통과할 때 기포(거품) 때문에 산란되어 보입니다. 특히 유약 속의 이산화철이 1,300도 이상의 고온에 이르면 청자 특유의 비색(翡色)을 띠게 됩니다. 그런데 바탕흙 또는 유약을 잘못 쓰거나 만들 때 기술적인 문제로 산소가 들어가면 회색이나 암갈색 등의 색깔이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초기의 청자들은 색이 전혀 다릅니다.”
- 우리나라가 도자기의 기술이 발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의 물이 참 좋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그에 못지 않게 흙도 참 좋습니다. 우리의 흙들은 갯벌이나 논바닥의 흙으로도 도자기를 빚을 수 있습니다. 흙 속에 칼슘 성분이 풍부하여 1,3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울 때도 주저앉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자기의 발달을 쉽게 이룰 수가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서양의 흙들은 칼슘성분이 적어 빚을 때 칼슘을 첨가해줘야 합니다. 따라서 17세기 이전에는 도자기를 중국에서 수입해서 썼고, 17세기 이후에 중국에서 칼슘 첨가기술을 수입한 이후 본차이나를 만들어 냈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 도자기와 서양 본차이나의 차이를 알 수가 있겠다. 우리 도자기는 한 점 한 점 혼을 쏟아 정성스럽게 작품을 빚는데 알맞지만 본차이나는 자본주의에 의한 대량생산에 적합한 것은 아닐까?
이어서 이 실장은 ‘고려청자가 왜 역사적으로 혼란기라 부를 시절에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혼란기란 관점은 집권자의 처지에서 본 것이고, 고려청자를 만든 분권화된 지방민들이 볼 때는 오히려 안정기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의 간섭이나 공출이 적은 탓으로 마음놓고, 도자기를 빚을 수 있는 환경이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전시된 도자기들이 모양새가 정형화되지 않고 삐뚤어졌거나 조잡스러운(?) 그림이 그려진 것도 제법 눈에 띄었다. 그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도자기의 맥이 끊어진 이유도 아울러 궁금하다고 말했다.
19세기말 관요가 폐쇄되고, 민요에서 주로 도자기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도자기는 원래 큰 자본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나라가 운영할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자본이 영세한 민요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고, 도자기를 굽는데 절대적인 땔감을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됨은 물론 관에서 파견한 전문 화공이 아닌 도공이 그림을 그렸던 등의 이유로 형태는 물론 색깔, 그림 등에서 질이 좀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산된 도자기를 놓고 볼 때 관요와 민요의 차이가 생겨나게 됩니다. 관요는 나라에 공납하는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규격화, 획일화된 도자기가 나오게 되며, 민요는 지방색이 강하고, 다양하다는 점을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 관요에서 민요로 이행되면서 도자기의 발달은 정체되고, 결국은 맥이 끊길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나는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을 한다.
- 고려에서는 청자가 발달하고, 조선에서는 백자가 발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려는 불교와 귀족의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사후세계의 구원에 관심이 많았고, 환상적이며, 불교적, 귀족적 느낌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상감기법을 이용한 많은 무늬와 화려한 색깔의 청자가 발달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조선은 성리학이 중심이 된 나라입니다. 사후세계에는 관심이 없고, 현실적, 합리적, 실용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그릇으로서의 도자기는 무늬, 색깔보다는 견고하고, 기능적인 것을 선호합니다. 따라서 백자가 발달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찌 짧은 시간에 도자기를 모두 섭렵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도자기에 대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실장의 명쾌하고 쉬운 설명은 아직 도자기에 대해 문외한인 내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여기에 전시된 것들은 2001년도에 호림박물관에서 들여온 유물 중 특별한 것들만을 고른 것이라고 한다. 고려청자, 조선백자 외에도 분청사기와 중국의 도자기들이 있었으며, 박세당의 초상화와 와전(瓦塼:기와와 벽돌)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박세당의 초상화는 박세당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낼 만큼 생생한 묘사가 되어 있었으며, 기와나 벽돌들은 주로 삼국시대의 것으로 각 나라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구려는 웅장하고 활달하며, 백제는 부드럽고, 통일신라는 화려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었다.
이 특별전을 다 보고 나면 상설전시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청동기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 출토된 토기들이 있는 ‘고고실’, 고려청자, 조선백자, 분청사기 등이 전시된 ‘도자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불상과 불교미술품들이 있는 ‘금속공예실’, 그리고 김홍도의 ‘송하노승도’ 등 그림과 책들이 전시된 ‘서화, 전적실’을 모두 둘러보려면 충분한 시간을 담보해야만 될 것이다.
전시회를 관람하면서 특히 신경을 써야할 문제가 있다. 전문가가 아닌 다음엔 혼자 둘러봐야 잘 알 수도 없고, 남는 의미도 없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시회 관람은 연구원의 설명을 꼭 들을 필요가 있다. 이 특별전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연구원이 설명하고 있으니 시간을 맞춰 가는 것이 중요하다.
계미년 새해에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고,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 박물관을 찾는 문화인이 되어 일본에 100년이 뒤떨어졌다는 부끄러운 오명을 씻는 계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호림박물관 >
서울 관악구 신림11동 1707.
☎ 02-858-2500, 3874
http://www.horimmuseum.org/frame1.htm
호림박물관 구입문화재 특별전Ⅳ : 2002. 12. 20 ~ 2003. 2. 28
특별설명시간 : 매일 오전 11시, 오후 3시.
개관시간 : 10:00∼17:00
입 장 료 : 일 반 - 3,000원(단체 20인 이상 2,000원) 학 생 - 1,000원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
교통안내 : 지하철 - 2호선 신림역하차 난곡방향 도보로 10분 거리
버 스 - (서울시내) 26, 26-3, 114, 150, 150-3, 151, 560
(안양시내) 1, 9, 9-3 호림박물관 앞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