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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와서 되돌이켜 보면 대학 1학년 때의 나는 인식의 철부지였던 것만 같았다. 교양철학의 강의를 들었는데, 당시 교재는 문고판의 『콜롬부스』(세종출판공사, 1974)였다. 교수님은 한 학기 동안 그 책의 독서만 하게 하고 종강의 날에 평가를 했다. 그 날도 평소처럼 낡은 셔츠와 퇴색한 한복이지만 단정한 차림새의 윤노빈 교수님은 작은 액자 하나를 학생들에게 돌려 보이시며 그 이의 이름을 적게 하셨다. 그것이 한 학기 강의의 평가였다. 액자 속의 인물은 구한말 개화기 이후 관료들의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학생들은 거의 '애국지사 민영환'이라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평가의 시간은 그다지 많이 소요되지 않았다. 답지를 걷고 난 후 교수님은 "이 자는 을사 오적의 한 놈인 이완용 쌔끼이다"고 하시고는 강의를 마치셨다. 우리의 뒷통수를 두드리는 아픔이 부끄러움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철학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보의 홍수 시대라 그런지 수많이 발간되는 책자들 중 어느 것을 읽을까 고민하는 가운데 중학교 때부터 구독해 오던 <독서신문>에서 D.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의 안내 서평을 접하게 되었다. '앵글로색슨의 프론티어 십에 의한 서부개척사는 사실 다름 아닌 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의 슬픈 수난과 멸망의 역사'라고 하는 것으로 요약되는 서평이었다. 일전에 TV를 통해 운디드니 언덕에서의 인디언 축제 의식을 시청한 바 있고 더욱이 S.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읽으며 분개하고 있던 판에 그 책을 구해 읽으며 올바른 인식을 실천적인 아이덴티티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논픽션의 작가인 디.브라운의 이 책은 저자가 수집한 방대한 양의 재판과 회의의 기록물과 생존 인디언들의 구술 등을 통하여, 소위 '서부 개척'이란 미명 아래 자행된 백인들의 잔인한 약탈과 그에 대항하는 인디언들의 눈물겨운 투쟁 그리고 비운의 멸망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한 인디언 역사의 고전이며 기록문학의 걸작에 해당한다.

1492년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400여 년간 '이방인' 백인이 '땅주인' 인디언에게 가했던 무참한 학살극에 대한 고발적 기록이다. 특히 인디오의 운명을 결정짓는 1890 년의 '운디드니 사건'을 중심으로 인디언들의 비장하고 치열한 생존 투쟁과 백인들의 폭력과 협잡 그리고 살육 등 야만이 횡행하는 '폭거 30 년'의 기록이 정밀하게 짜여져 있다.

인디언 멸망의 비극적 역사가 신대륙의 발견에서부터 인디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운디드니 전투에 이르기까지의 400여 년간의 인디언과 백인 사이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해설해 주는 제 1장, 1860년-1890년에 이르는 30여 년간 백인들이 여러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고 몰아내는 과정과 '왜 인디언들이 백인들에게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인디언들이 지닌 삶의 철학과 삶의 모습들을 서술한 부분들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백인에 의한 인디언들의 슬픈 수난과 멸망을 담고 있는 제2- 1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우리 독자들에게 올바른 인식의 즐거움과 의분을 안겨다 준다.

이 책을 읽어갈 때에는 적지 않은 집중력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기존의 의식을 바탕하여 독서한다면 무척이나 당황하게 된다. 작중의 사건들과 등장인물의 이름 등이 다소 낯설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10여 년 전 우리에게 소개된 C.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이란 영화를 통해 인디언들의 아이덴티티를 알고 있었다면 덜 당황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근대화를 추구하며 우리가 모델로 여기던 미국의 야만성을 확인하는 본연의 휴매니즘의 순수를 새긴다면 읽기에 큰 무리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당대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연보와 인디언의 말을 먼저 인용하고 본문의 곳곳에 사진 자료들을 배치하여 전체적 이해를 돕고도 있다.

제 2장에서부터 제 19장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벌어지는 인디언들의 학살, 고향을 잃은 인디언들의 피 맺힌 절규, 양심을 져버린 백인들의 만행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일들이 이 땅에서 수없이 벌어졌다. 백인들은 우리의 땅을 가로질러 갔다. 그 백인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핏자국밖에는 없다."
"그 땅 위에 희망은 없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잊은 듯이 보였다."
-믿음의 땅인 '운디드니'에서 오글라라 수우족의 인디언 '붉은 구름'이 한 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피눈물을 흘리며 공감의 페이소스로 읽다 보면 우리는 다음 부분에서 인디언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묵상에 잠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620년 북미의 플리미오에 상륙한 영국인 필그림들은 원주민들의 따뜻한 도움이 없었더라면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들 백인들이 '인디언'이라 불렀던 원주민들은 이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었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옥수수 씨앗을 나눠주었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결국 땅마져도 내어주고는 '멸족'으로 내몰리고 말았으니 그 후예들은 빼앗긴 땅에서 여전히 노래를 부른다.

"노인들은 말했지./ '영원한 것은 이 땅뿐'이라고/ 자네가 말했네/ 자네 말이 지당하이!/…"

미국인은 지금도 그들의 서부 개척의 역사를 이렇게 호언한다.
"우리의 서부 개척사는 호전적이고 야만적인 토착인 인디언들을 계몽하고 굴복시켜온 정의로운 기록의 역사이다"라고. 하지만 우리가 이 책을 독서한다면 그 감상문에 이렇게 쓸 것이다. "이 책의 독서를 통하여 올바른 인식의 즐거움과 의분을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문명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란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지금도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비애와 회한에 젖은 채 햄버그를 씹어 먹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살아가는 '전사들의 후예'의 눈길에서 연민과 분노를 느끼다 보니 갑자기 대학 시절에 즐겨 듣던 팝송인 라비어와 레이더스의 노래를 듣고만 싶었다.

Indian Reservation

They took the Cherokee nation
Put us on this reservation
Took away our ways of life
Tomahwak and the bow and knife
Took away our native tongue
Taught their English to our young
And all the beads we made by hand
Are nowadays made in Japan
Cherokee people, Cherokee trive
so proud to live, so proud to die
They took the whole nation
Locked us on this reservation
hough I wear a shirt and tie
I am still part erdman deep inside
But maybe someday when they have learned
Cherokee nation will return.

올바른 인식의 즐거움과 의분을 되새길 수 있는 실로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덧붙이는 글 | D.Brown (최준석.역)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다오.』(원제: An Indian  History of American West) 2002.07.20 나무심는사람.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길(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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