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응원열기에 이어 촛불시위로 달궈진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이 이제 노란색 풍선으로 물든다. 1월 11일 오후 3시 시청 앞 광장에 기독교인 5만 명 이상이 운집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일제히 노란 풍선 1만 개를 서울 하늘에 날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기도회의 노란 풍선은 자칫 한국 기독교 전체를 향한 '옐로우 카드'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어느덧 대한민국 국민의 민족적 응집력이 표출되는 대중문화의 성지가 되어 가고 있다. 월드컵 응원과 촛불시위의 원동력은 민족적 자긍심에 바탕을 둔 자발적 참여이다.
하지만 이번 기도회의 가장 절박한 주제인 '미군철수 반대'는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불붙은 촛불을 꺼트리기엔 부족한 안보중심의 획일적 논리와 갈등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기도회를 주최하는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촛불시위가 명백한 반미행위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국민적 정서를 왜곡하는 것 중의 하나다.
또 '미군철수 반대'는 기독교가 말하는 평화가 진정한 '하나님이 주신 평화'라기 보다는 단순히 안보논리에 함몰된 '지엽적인 평화'라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더구나 이 기도회가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해 깊이 애도하는 내용을 호소문에 담긴 했지만 정작 소파개정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어 결국 촛불시위를 겨냥한 반 촛불시위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성격 때문에 네티즌들은 벌써부터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있으며, 보수교단을 대표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한명수 목사도 "남남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촛불시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수많은 시민들은 시청 앞 광장에 떠오른 노란풍선을 통해서 두 여중생의 죽음을 싸늘한 허공으로 띄워 버리는 몰인정한 '종교심'과 미국의 핵우산 속에 언제까지나 안주하려는 성직자들의 '새가슴'을 바라볼 지도 모른다.
이번 기도회의 개최 배경에 수구적 안보 논리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조갑제(월간조선 편집장), 지만원(사회발전연구소 소장) 등 소위 보수권을 대표하는 논객과 뜻을 같이 하며 80년대 '미군 철수 반대론'을 펼쳤던 김한식(57) 목사는 이번 기도회의 준비위원으로 당당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나 '언론개혁' 등에 하나님의 뜻을 내세우며 강하게 반발한 경력도 있는 등 소위 '색깔론'에 심취한 인사다.
이런 경력을 보유한 김 목사는 단순히 이번 기도회의 준비위원으로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도회가 단 1주일만에 급조될 수 있게 한 기초작업까지 수행했다. 김 목사는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와 김홍도 목사(금란교회) 등 서울의 대형교회 목사를 찾아가 미군철수 불가론을 주창했다. 또 최근 경기도 '연천 구미리'와 '화성군 지화리'에서 제 5, 6 땅굴을 발견한 것처럼 주장해 한반도 안보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결국 이번 기도회는 '미군철수 불가론'과 촛불시위와 북핵 위기 등을 내심 불안감을 갖고 지켜보던 김한식 류의 한국기독교 내 보수층 정서가 서로 융합되면서 잉태된 셈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날 기도회를 알리기 위해 당초 <국민일보>와 <조선일보> 등 2개 신문에 전5단 광고를 게재할 방침이었다. <국민일보>는 어차피 기독교계 일간지인 만큼 한기총이 광고를 하는 것은 부자유스럽게 보이지 않지만 하필 촛불시위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조선일보>가 선정된 것은 자신들의 속내를 감추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한기총은 후에 쏟아질 비판을 우려해 최성규 목사(KNCC 회장)의 의견에 따라 9일 <한겨레>에도 광고를 내기로 결정했다. 한국교회 진보적 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회장인 최성규 목사(순복음인천교회)의 강력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기도회 불참을 결정한 것은 미군철수 반대에 대한 '교회적 미합의'와 더불어 기도회가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정체성'의 한계 때문이다.
KNCC 회장 최성규 목사는 한국교회 진보와 보수세력 모두가 참여하는 교회적 합의 속에 이번 기도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고 개인 자격으로 이번 기도회에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최 목사는 비록 KNCC를 끌어들이는데는 실패했어도 이번 기도회가 그나마 김한식 류의 '미군철수 반대' 일변도 집회로 흐르지 않도록 했다고 말하고 있다.
최 목사는 촛불시위가 한국은 물론 해외 교포에까지 확산되면서 미국 내부에서 한국에 대한 반감이 싹트고 있으며, 이 반감이 자동차 등 한국상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미군 철수론'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을 주시했다. 또 미군철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즉 북한이 미국과 이라크 전쟁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 목사는 "미국과 이라크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종교전쟁'으로 비쳐지면서 대부분 중동국가를 자극하고 있다"며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미국은 이슬람 세력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북한까지 싸잡아 '악의 축'으로 명명하고 현재의 위기상황을 조작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곧 최 목사 지론처럼 촛불시위와 반미감정 고조로 인한 한반도 안보 및 경제위기 상황을 막기 위해 미군철수 반대와 평화를 외치는 대규모 집회의 필요성은 안보논리와는 별개로 이번 기도회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중요한 논리적 기반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도 주말마다 시청 앞 광장을 수놓았던 수 만개 촛불의 열기를 노란색 풍선에 담아 하늘로 날려버리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충분한 교회적 합의 없이 단지 조용기 목사 등 몇몇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지시에 의해 동원된 기독교인들의 기도가 과연 얼마만큼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번 집회는 촛불시위의 숭고한 열기 속에 드러난 국민적 정서를 계승하면서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화해와 평화를 노래하는 쪽으로 '승화'됐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KNCC를 비롯해 많은 성직자들과 교인들은 앞다퉈 시위에 참여하고, 촛불을 들고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서 미국의 사과와 소파개정을 요구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열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노란풍선에 '미군철수 반대' 기도제목을 매달아 허공에 날리는 것은 한 입으로 쓴 것과 단 것을 동시에 내뱉는 모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