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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언론사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착수할 때만해도 법정까지 가도 문제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법원 판결을 보니 안심할 수 없었다. 2002년이 가기 전에 과징금 문제를 털고 가지 않으면 대법원에서 공정위 조사의 정당성 자체가 훼손되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공정거래위원회의 고위책임자 A씨)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www.ftc.go.kr)의 '언론사 과징금 취소' 결정 이면에는 작년부터 법원이 <조선> <동아> 양대 일간지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공정위 관료들의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오마이뉴스>는 10일 경기도 과천정부청사를 방문, 공정위 고위간부들을 만났다. 이 중에는 지난해 12월30일 공정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상임위원들도 포함됐다.

2001년 조사국장으로서 부당내부거래 조사 결과를 직접 발표했던 이한억 상임위원은 "내가 지휘한 조사 결과를 번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며 "문제가 이 정도로 확산될 줄 몰랐다. 청와대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충분히 사전 조율이 이뤄졌더라면..."하고 아쉬움을 표명하기도.

조학국 사무처장도 같은 날 오전 언론단체 간부들과 면담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조 사무처장이 '공정위 전체회의에서 토론이 자유롭게 되려면 회의록이 공개돼서는 안된다. 대신 감사원에서 특감을 나오면 전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알려왔다.

'정권-언론 타협설' '청와대 외압설' '공정위 독자행동설' 등 이번 사태에 대한 갖가지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공정위 고위간부들의 진술은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의 진술을 10가지 문답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단, 당사자들의 요청에 따라 진술자들의 신원은 밝히지 않는다. (편집자 주)


1. '과징금 취소' 파문이 엄청나게 커졌는데, 요즘 심경이 어떤가?
기분이 좋을 수야 없지. 솔직히 이 정도로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연말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져서 대통령과 인수위에 소상하게 보고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감사원 특감까지 받게 됐으니 우리는 사실대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한 부서(조사국)에서 일했던 하부 직원들(공무원노조 공정거래위원회지부를 지칭)까지 해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들도 전후 사정을 들었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ADTOP7@
2. '과징금 취소' 결정과정에 대한 의혹들이 난무하고 있다.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달라.
언론사별 과징금 규모

▲동아일보 62억200만원
▲조선일보 33억9000만원
- 본사 22억8500만원
- 디지털조선일보 10억5000만원
- 스포츠조선 5500만원
▲한국일보 16억500만원
▲국민일보 15억3700만원
- 본사 14억1100만원
- 국민일보판매 1억2600만원
▲SBS 15억1300만원
▲중앙일보 14억원
▲MBC 12억9800만원
▲KBS 10억8300만원
▲대한매일 1억4000만원
▲경향신문 3600만원
- 미디어칸 3300만원
- 본사 300만원
▲세계일보 3600만원
▲한겨레 1500만원
작년 12월12∼13일에 5개 회사가 과징금을 줄여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조선일보, 스포츠조선, 디지털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인데 언론사별로 나누면 3개사가 되는 셈이다. 이들 세 신문사에 언론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과징금이 부여됐다.

그런데 심판국에서 청원서를 검토했고 "과징금을 직권 취소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올라와 사무처의 검토를 거쳐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사실 2001년 이후 과징금을 내지 않으려는 언론사들의 '지연작전'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그해에 몇몇 언론사가 과징금 부과에 이의신청을 냈지만, 문화일보를 빼고는 모두 기각했다.

7월이었나? 과징금을 빨리 내라고 독촉하니 일부 언론사들이 갑자기 '분할 납부'를 요청했다. 조금 지나니 유예 요청, 연기 요청을 하다가 작년 12월 청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한편으로는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신문사들은 "과징금을 납부하면 경영에 심대한 악영향이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는데, 우리가 놀란 것은 법원에서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작년 3월에는 <동아>의 '납부명령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10월에는 <조선>에 대해 효력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이 같은 정지처분이 내려지면 대법원에서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 해당 신문사는 과징금을 낼 필요가 없게 된다. 우리는 과징금 산정과정에서 30대 기업집단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때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는데, 법원에서는 "대기업과 언론사에 거의 같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같다.

만에 하나 대법원에서 패소할 경우 다른 언론사들의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판이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과징금 문제를 덜지 않으면 승소를 확신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이와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

@ADTOP8@
3. 법원 판결을 의식한 결정이었다는 말인가?
법원에서 그 동안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대해 기업 편을 들어준 전례가 없었는데, 작년 <조선>, <동아>에 대한 정지처분은 정말 이례적이었다. 2001년 조사 때도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법부를 비판하지는 말아달라. 우리를 도와줄 곳은 법원과 시민단체들뿐이다.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건설교통부 등등이 모두 공정위를 좋게 보지 않고, 2001년 이후에는 거대 신문사들과도 관계가 아주 불편해졌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언론사 과징금' 문제로 공정위와 법원이 대립하는 모양새는 별로 좋지 않다.

우리에게는 '과징금 부과'보다 언론사에 대한 시정명령이 정당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법원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언론사에서 또 다시 잘못을 저질러도 검찰고발이든 뭐든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지 않겠나? 솔직히 이런 얘기들이 가급적 기사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4. 언론사는 봐주면서 일반기업들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고려했다"고 하지만, 일부 언론에 대해 "전혀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여론도 많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2001년과 달리 지금은 각 언론사들의 재정이 극히 악화됐다는 것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일보의 경우 소송도 제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돈을 안 내겠다고 계속 버텼다.

하루하루 빠듯한 상황에서 과징금을 강제 징수하려면 재산을 가압류해야 하는데, 회사 윤전기까지 뜯어가야 할 상황이다. 신문사 문을 갑자기 닫게 하면 한국일보 독자들은 어떻게 되나? 우리 정서상 그걸 어떻게 바라보겠나? 다들 언론탄압으로 생각하겠지...지금은 언론도 입장이 갈려 어느 쪽 말을 들어야 할 지 난감할 때가 많다.

5. 청와대 등 권력핵심으로부터의 외압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있다. 오늘만 해도 '청와대 사전보고설 논란'이 불거졌다.
사실 청와대도 피해자다. 이번 결정을 '정권과 언론의 타협' '정권말기 봐주기 행정'으로 보지 말아달라. 잘못이 있다면 그런 결정을 내린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먼저 결정을 내리고 청와대에 알려줬다. 외압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닌 얘기로, 청와대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다고 권력이양기에 통하리라고 보는가?

결정이 내려진 다음날 김대중 대통령이 박지원 비서실장을 청남대로 불러 "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냐?"고 질책하고, 노무현 당선자 역시 "취소 경위를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을 듣고 "이거 큰일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우리가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청와대도 어쩔 수 없었다.

우리 딴에는 현 정부의 현안을 김 대통령 임기내에 매듭지어 새 정부에 부담을 안 주려고 머리를 쓴 것인데, 정반대로 "인수위가 정부 출범 전부터 언론과 타협을 시작한다"는 여론이 조성돼 아주 곤혹스럽다. 노 당선자에게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6. 당일 전체회의 분위기는 어땠나? 민간인 출신 비상임위원들이 반대했다는 얘기가 들리는데...
30일 오전에 모여 30∼40분 정도 얘기했다. 박상조 상임위원이 주심을 맡았는데, 주심이란 게 올라온 보고서를 꼼꼼히 검토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박 위원이 무슨 대단한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이남기 위원장은 국무회의 때문에 못 왔고, 윤창호 교수(고려대경제학과)도 강의 때문에 못 온다고 하더라. <한겨레> <문화일보> <한국일보> <연합뉴스>에 민간인 출신 비상임위원 4명이 반대했다고 보도하는데, 그렇지 않다. 3명이 참석했고, 이들의 동의를 얻어 전원합의로 통과했다.

전체회의라는 게 원래 반대질문도 하고 토론도 한다. 이견이 안 나올 수 없지. 그러나 그날은 민간위원들도 '(취소결정에) 법률적 하자는 없냐?'는 정도의 질문만을 했다. 민간위원들중에 변호사인 정명택, 이임성 위원은 오후 재판 일정 때문에 의결서가 작성될 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먼저 갔다. 나중에 이들 사무실에 가서 서명을 받아왔다. 일부 이견은 있었지만, 오전에 전원합의가 이뤄졌다.

7. 의혹 해소를 위해서라도 회의록을 공개하면 어떤가?
"일반에 회의록을 공개한 전례가 없다. 전체회의에서 토론이 자유롭게 되려면 제약이 없어야 하는데, 아무개가 몇 월 몇 일 몇 시에 무슨 말을 했더라 하는 내용이 나가면 위원들이 위축돼서 다음에 업무를 볼 수가 없다. 회의록에 기업의 영업비밀이 담겨있을 수도 있는데, 이런 것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법규정도 있다. 대신 감사원에서 특감 나오면 전적으로 협조하겠다."

8. 지금이라도 취소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나?
일반기업의 경우 부과된 과징금을 감액해준 적은 있지만, 전액 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기업이 망하거나 워크아웃처리됐을 때 과징금 부과를 정지한 예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디까지나 언론사의 공익성과 특수성을 감안했다. 위원회 결정이 취소되기는 힘들 것이다. 감사원에서 이같은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겠다.

9. 의결 날짜를 왜 작년 12월30일로 잡았나?
2002 회계연도에 꼭 처리를 해야 했다. 해를 넘기면 이미 낸 과징금에 대한 환급절차가 지연되는데, 연말까지 취소하면 즉각 환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31일은 종무식이 있어서 분위기가 어수선하니 30일로 잡았다.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연말연시에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언론플레이를 한 게 아니다.

10. 이 모든 해명들이 국민들의 실망감을 달래는 데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국민들이 공정위가 엄정한 법집행을 하길 바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품 전쟁' 등 신문시장의 혼탁상을 바로잡는 게 더 중요하지, 언론사의 부당내부거래는 부차적인 문제아닌가? 신문고시는 신문협회에 자율적으로 시행하도록 얘기했지만, 잘 안되고 있다. 신문협회에서는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공정위에서는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문고시를 제대로 시행할 방안을 강구하겠다. 솔직히 과징금 문제도 제대로 처리 못한 상태에서 신문고시를 제대로 시행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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