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에는 9일 새벽 분신자살한 고 배달호(50)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 현재 43명의 노동자가 3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 집행 중에 있다. 어떤 이는 집이 저당 잡혀 있어 재산권 행사를 전혀 하지 못하고, 대부분 맞벌이로 살아가고 있다.
외식과 같은 가족의 단란함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다. 맞벌이를 해야 하는 탓에 자녀들을 일부러 놀이방에 보내기도 하고,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다니던 학원 수를 줄인지 이미 오래다. 오는 3월이면 학교에 들어가는 자녀들이 많아 학비 걱정도 있다. 생계 어려움 때문에 가정파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고 배달호씨는 '신종 노동탄압'이라 불리는 노조와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가압류에 시달리다 자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인은 이를 유서에서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나는 매일같이 고민을 해 본다"고 털어놓았다.
"얼마전 징계자들이 출근정지가 끝나고 현장에 복귀하였지만 무슨 재미로 생산에 열심히 하겠는가. 이제 이틀 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 받아 본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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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에 걸쳐 총 65억원 손해배상, '신종 노조탄압' 지적
두산중공업은 지난 해 5월부터 7월까지 47일간 장기 파업을 했다. 2001년 단체협약합의 사항인 집단교섭에 기본협약갱신요구를 하였으나 회사측이 응하지 않았다며, 노조가 파업을 했던 것이다. 회사는 이때 파업을 불법이라 보고, 노조와 노조 간부들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3차에 걸쳐 모두 65억원을 내야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고 배달호씨는 1차 때 43명에게 30억원이 부과될 때 가압류가 되었다.
고 배달호씨와 함께 재산과 임금 가압류 조치를 받았던 사람들은 요즘도 매월 월급을 떼이고 있다. 매월 세금을 공제하고 난 임금에서 50%를 회사가 가져가고 있다. 총 부과금을 사람 수에 나누어 부과했다. 고 배달호씨와 같은 시기에 월급 가압류 처분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 1월 현재 남아 있는 금액이 개인적으로 4200만원부터 1억3000만원까지다. 43명은 이전에 받던 월급의 절반만 받고 있다.
민주노총은 분신사망사건 발생 이후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가 '신종 노조탄압'이라 분석했다. 민주노총은 "최근 유행병처럼 번져온 '구속 해고로 안 되면 돈으로 노조를 깨라'는 손배가압류가 결국 참담한 비극을 부르고 만 것"이라고 보았다.
민주노총은 2000년~2002년 6월 사이 노동부 자료를 분석해 보았더니, 손해배상 가압류가 전국적으로 39개 사업장에 1264억원이라 밝혔다. 가압류 44개 업체(1076억원), 손배청구 58개 업체(535억원)라는 것. 철도청은 지난 해 11월 9개월 파업과 관련해 노조원 92명에게 78억원의 가압류 신청을 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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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어려움 많아, 집도 없는 해고자는 갚을 길 막막
임금 가압류를 받은 두산중공업 노조원들의 생활은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고인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다"거나 "빠른 시일 안에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제2, 제3의 배달호씨와 같은 사람이 나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남궁성민(34)씨도 고 배달호씨와 같은 시기에 가압류 처분을 받았다. 남궁씨는 6900만원이 배정되었고, 지난해 6월부터 매달 절반에 해당하는 월급 90만원이 회사에 압류되어 빠져나가고 있다. 그가 다 갚기로 예정되어 있는 기한은 2004년 9월까지다.
월급 가압류로 인한 가정의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자녀 둘을 둔 그는 아이들 걱정이 제일 크다. "이전에는 집사람이 아이들을 돌보았다. 큰 애가 유치원에 갔다오면 같이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이 들은 놀이방과 유치원에서 생활한다." 그 이유는 부인도 맞벌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남궁씨의 부인은 보험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그는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지 못하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를 못한다"면서 마음 아파했다.
손해배상금을 갚아나가고 있는 조합원들은 한결같이 "그래도 우리는 좀 괜찮고,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있다. 해고된 사람중에 집도 없는 사람이 있어, 수천만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한 푼도 갚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해고자 강웅표(45)씨는 13일부터 노동자광장 옆에 천막을 쳐놓고 단식농성 중이다. "달호 형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은 거 아니요. 단식이라도 해야 미안함이 줄어들 것 같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강씨는 지난해 8월말에 해고를 당하면서 퇴직금을 받아, 그 돈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 회사는 그로부터 퇴직금 중에 900만원, 3개월간 급여 중에 300만원, 상여금 중에 140만원을 가져갔다. 지금은 퇴직금이라고 받은 60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이마저도 가압류 상태에 있다.
강씨는 "집사람이 아파트라도 팔아서 버텨보자고 한다. 그런데 가압류가 되어 있어 그것도 어렵다.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강씨는 파업 당시 노조 지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가 이같은 '짐'을 지게 된 것이다.
재산과 임금의 가압류를 받은 사람들에게 "노조 활동했던 것을 지금은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한결같이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었다. 자존심 꺾이지 않기 위해서 해왔다"고 말했다. 교섭위원들은 "교섭을 잘못해서 재산 피해를 입혔다"며 자책감에 쌓여 있기도 하다.
남궁성민씨는 "솔직히 말해, 인간이기에 후회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면서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