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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 '피투성이' 그리고 '김대업' 그들은 우리 사회의 금기를 깨려했던 사람들이다.

'앙마'의 제안으로 시작된 촛불 시위는 두 여중생의 죽음으로 짓밟힌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미국이란 나라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참가한 우리 나라의 주권 회복운동인 이 촛불 시위가 우리 사회의 전통적이며 절대적 금기인 '반미'의 물결로 진화될 것을 두려워한 친미 세력은 '앙마'의 사소한 실수를 꼬투리 삼아 그를 매장시키고 촛불 시위의 의미를 폄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피투성이'는 어떤가? 감히 보잘것 없는 일개 시민의 힘으로 정치인을 평가하려 나섰다. 물론 그는 수많은 다양한 '살생부' 작자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음모를 캐내려던 구시대의 정치세력과 언론권력에 의해 얼떨결에 '뜨게' 되었다. '음모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구시대 정치인들은 내친 걸음을 멈추지 못하고 사법 처리의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이어나간다.

그도 '앙마'와 마찬가지로 '떴다'. 하지만 그도 '앙마'와 같이 사소한 꼬투리 잡기의 '필살기'로 무장한 기득권세력에 의해 비정하게 매장 당하게 될 것이 참으로 염려가 된다. 2000년 총선때도 정치인들을 평가하겠다고 나선 쟁쟁한 시민운동가들조차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물며 철공소 노동자쯤이야 우습지 않겠는가?

그러면 김대업씨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기대에 걸맞지 않는 죄목으로 구속되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의 자식들이 병역에 특혜를 받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김대업씨는 감히 정치인중에서도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다수당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겁 없이 병역비리의 금기를 향해 돌진하였다. 그런데 본질과는 상관없는 사소한 혐의로 구속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노무현이 당선되었으니 그 정도로 끝난 것이라고 김씨는 위안을 삼아야 할까? 그가 병역비리를 향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동안 한 개인에게 퍼부어 진 '명예 살인'은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하나? '사기꾼', '파렴치한 전과자', '역겨운 인상의 파렴치한' 한나라당과 족벌 언론들이 그에게 쏟아 부은 언어 폭력들이다. 그도 천부의 인권을 타고난 한 인간이다.

그가 애초에 주장한 것은 이정연씨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것과 1997년에 그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기 위해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질은 어디 가고 사소한 잘못을 들춰내어 그를 또다시 범법자로 몰아넣고 있다.

국민들은 김대업씨가 SBS 골프닷컴에 글을 올린 적이 있는지, 국사모의 명예를 훼손했는지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김대업씨가 주장한대로 이정연씨가 돈주고 병역면제를 받았는지, 1997년 당시 국가기관까지 동원한 조직적인 은폐음모가 있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다. 부담스런 정치권에 대한 핵심적인 수사는 젖혀두고 힘없는 개인에게 올가미를 씌우면서 국민적 관심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니 검찰이 불신을 받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구세력들은 국민들의 상식적인 욕구가 봇물같이 쏟아져 나올 때면 숨죽이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불길을 잠재우기 위해 항상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약점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앙마'도, 김대업씨도 그런 일격에 당한 것이다.

과거에 그들을 당할 자는 없었다. 공권력, 정치권, 언론이 한 통속으로 힘을 나눠 갖고 보태주고 하는 세상에서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들만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이 필요할 때만 그럴 필요가 있는 정보를 흘려주면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치명적인 사실이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경우엔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광주민주항쟁의 진실을 틀어막은 결과로 군사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박종철 열사의 죽음의 진실이 알려지고 나서 맞은 민중의 항쟁에는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야흐로 작금의 인터넷 시대에 국민적 여론을 구시대의 방식대로 막을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앙마'를 매장시키고, 김대업을 구속시키고, '피투성이'를 피투성이로 만들 수 있겠지만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복제되는 또 다른 '앙마', '피투성이', '김대업'을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그 추운 광화문 거리에 자발적으로 모인 촛불 시위 행렬은 '앙마'의 선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또 다른 '앙마'였기 때문이다. '피투성이'의 살생부를 퍼 나르고, 그 글에서 후련함을 느낀 사람들은 모두가 '피투성이'였다.

김대업씨는 구속되었다. 당분간 그의 입을 막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김대업씨가 옳은지, 이정연씨가 결백한 것인지 명백히 밝히지 못하고 힘없는 김씨를 구속하고 어물쩍 넘어 간 검찰은 훗날 그 순간에 또 한번의 치욕을 맞이할 것이다. 물론 '김대업 죽이기'에 앞장선 일부 정치인들과 족벌 언론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금기를 깨는 단초를 제공한 '앙마', '피투성이' 그리고 김대업씨의 건투를 빈다. 그리고 앞으로 수없이 나타날 '앙마'와 '피투성이', '김대업'에게도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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