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선생님? 노무현 후보가 지난해 7월 18일 배명중학교 1학년 9반에서 일일교사로 50분간 특별수업을 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노무현 선생님? 노무현 후보가 지난해 7월 18일 배명중학교 1학년 9반에서 일일교사로 50분간 특별수업을 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해 7월 18일 대통령 후보가 아닌 '노무현 선생님'이 배명중학교 1학년 9반에 나타났습니다.

당선자께서는 2001년 가을 경남 진해시 웅동중학교에서 특별수업을 한 뒤 두 번째로 교단에 서는 것이라고 하셨죠.

30명 남짓되는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쳐다보며, 당선자께서는 "늘 읽어도 감동적이고 가슴 뭉클한 글"이라며 어느 신문에 실린 글을 읽어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6월 15일자 <한겨레>에 실린 김선주 논설위원의 칼럼이었습니다. '잔치 끝에 마음 상해서야'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당시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가 아직도 후끈거릴 때 쓰여진 글이었습니다.

@ADTOP1@
"… 우리는 히딩크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아는 바 없다. 안정환이 베컴이 호나우두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관심이 없다. 우리 선수들의 프로필엔 다른 나라 선수들의 프로필엔 없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의 학력이 즐비하다. 선수가 골을 넣으면 골을 넣은 선수들의 모교들이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고 있다. 홍명보가 어느 대학을 나왔다고 하여 그 대학이 축구명문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하나도 없다. 히딩크는 학연과 지연, 연공서열주의를 철저히 배제하여 선수들의 능력을 폭발적으로 키워냈는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연고주의를 떠받들고 있다. 이것도 레드카드감이다. ……."

낭독이 끝나자, 아이들이 우렁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당선자께서는 "내가 이야기할 때는 조용하더니 김선주 선생님의 글을 읽어주니까 박수를 치네요"라며 빙긋이 웃었습니다. 그런 뒤 아이들에게 되물었지요. "외국 선수들의 프로필을 보면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나오지도 않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쭉 기록돼 있다"며 "어느 학교 졸업한 것이 무엇이 중요하냐"고.

이날 당선자께서는 50분 동안의 특별수업을 마친 뒤 교직원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교사·학부모들과 간단한 '교육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나라 교육부장관은 단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어느 학부모의 지적에 당신은 "이 문제만큼은 답을 명확히 드리겠다"며 "대통령이 된다면 교육부장관의 임기는 대통령의 임기와 같이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선자께서는 아이들에게 "학연과 지연, 연공서열주의가 아닌 능력 위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학부모와 교사들에게는 "교육부장관은 대통령의 임기와 같이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선자께서는 그 약속의 첫 단추를 꿰야 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당선자의 선택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누가 과연 지연·학연·연공서열주의 등 연줄사회를 깰 수 있는 사람인지, 누가 과연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할 사람인지. 당선자께서 뽑을 교육부 장관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관련
기사
오명 총장, "설사 인선이 돼도 고사하겠다"

@ADTOP2@
교육부장관이 특정학교 동문회여서는 안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존의 상식을 깨십시오.

김대중 정부에서는 이해찬·김덕중·문용린·송자·이돈희·한완상·이상주 등 7명의 교육부장관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평균 8.5개월이라는 '단명 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송자 전 장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다는 게 더욱 마음에 걸립니다. 특히 이들 가운데 문용린·이돈희 전 장관과 이상주 현 장관은 모두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출신이었습니다.

YS-DJ 정부의 역대 교육부 장관들 YS 정부 때의 오병문·김숙희·박영식·안병영·이명현 장관(위 왼쪽부터). DJ 정부 때의 이해찬·김덕중·문용린·송자·이돈희·한완상·이상주 장관(아래 왼쪽부터). ⓒ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
YS-DJ 정부의 역대 교육부 장관들 YS 정부 때의 오병문·김숙희·박영식·안병영·이명현 장관(위 왼쪽부터). DJ 정부 때의 이해찬·김덕중·문용린·송자·이돈희·한완상·이상주 장관(아래 왼쪽부터). ⓒ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

서울사대는 진주사범(현 진주교대) 출신과 더불어 우리 교육계의 '주류 중의 주류'였습니다. 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교육계의 주요 학맥과 인맥을 장악했던 교육관료 집단의 '성골'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들 가운데 장관이 나오고 핵심 부서를 차지하는 게 기존의 상식이었습니다. 물론 서울대 출신 장관 모두를 폄하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교육부 장관직이, 재벌이 대를 물려 세습하듯 특정학교 선·후배들의 '동문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상주 장관이 임명되었을 때 당시 국회 교육위원장이었던 이규택 한나라당 의원이 이례적인 환영 보도자료를 내려다가 철회한 해프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이 "이제 한국 교육은 서울사대가 책임지게 됐다"는 겁니다. 교육부의 장·차관과 국회 교육위원장이 모두 '서울사대'이니 반가운 마음에 그랬겠지요. 사람들이 교육계의 특정 학교 출신을 빗대 '마피아'라고 불렀던 게 '이유없는 무덤'은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의 불패 신화로 이어지는 기존의 상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교육 체계는 크게 초등·중등(중·고교)·고등(대학)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동안 역대 정권이나 교육부에서도 고등교육 못지 않게 초·중등 교육이 중요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지 않도록 강조해왔습니다. 교원이나 학생 수로 보자면 초·중등이 고등을 훨씬 능가할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역대 교육부(문교부) 장관 44명 가운데 과연 누가 초·중등 교육자 출신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잠깐 동안 초·중등 교사를 지낸 분들은 혹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조차 최종 이력은 대학교수이거나 교육계 이익집단의 수장이었을 겁니다. 결국 우리나라 교육부 장관의 절대 다수는 대학교수나 총장 출신이었습니다.

가깝게 YS-DJ정부 때를 살펴보지요. 10년 동안 12명의 교육부 장관을 배출했습니다. YS정부에서는 오병문 전남대 총장, 김숙희 이대 교수, 박영식 연대 총장, 안병영 연대 교수, 이명현 서울대 교수가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또 DJ정부에서는 이해찬 의원, 김덕중 아주대 총장, 문용린 서울대 교수, 송자 연대 총장, 이돈희 서울대 교수, 한완상 서울대 교수, 이상주 서울대 교수가 바통을 이어 받았습니다. 전체 12명 가운데 1명을 빼고는 모두 대학 교수·총장 출신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또다시 우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교육부장관 후보는 '반드시 대학교수나 총장 출신이어야 한다'는 법 규정이 있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교수나 총장 출신이 아니고서는 우리나라 교육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자가 없는 걸까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편중이 나타난 근본 이유가 무엇인지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단명(短命)·단신(單身) 장관을 만들지 마십시오

이런 쟁쟁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장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교육에 대한 불만이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걸까요. 더욱이 YS-DJ정부는 문민정부·국민의 정부라는 수식어를 달며, 이전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는데도 말입니다. 교육계 인사들은 '단명(短命)장관'이자 '단신(單身)장관'의 한계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YS정부에서 두번째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김숙희 전 장관의 이야기입니다. 김 전 장관은 고대에서 해직됐다가 다시 복직한, 교육계에서는 신망이 높은 김용준 전 교수의 동생이자, 최근 <문화일보> 기자로 맹활약중인 도울 김용옥씨의 누나이기도 합니다.

교육시민단체와 끈끈한 연을 맺었던 김 전 교수는 동생인 당시 김숙희 장관에게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적인 단체와 인사들의 견해를 전달하거나, 대화 자리를 주선하곤 했습니다. 그동안 교육정책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교육부의 수장이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요. 당시 김 전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김 장관에 대해 묻자 그가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요즘 동생(김숙희 장관)이 부쩍 외로움을 많이 탄다. 혼자 고민하는 시간도 늘고. 가끔씩 내게 자신 스스로 교육부 안에서 '섬'이 되고 있다고 하소연을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지 막막한 모양이더라. 애초 생각한 것보다 (교육관료들의) 벽이 단단한 것 같더라."

적지 않은 전임 장관들은 흔히 무엇을 하나 바꿔 놓으려 해도 혼자 힘으로 기존 관료들의 벽을 깨기란 쉽지 않다고 고백을 합니다. 속된 말로 '능구렁이' 같은 관료들은 누가 장관이 되더라도 3개월이나 6개월쯤 '뺑뺑이'를 돌리며 티 안나게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농반 진반의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 듯 합니다.

95년 5월 12일 국방대학원에서 군인들을 상대로 "베트남 전쟁은 우리가 용병으로 참여했던 전쟁"이라고 했다가 김숙희 장관은 소명 기회도 없이 해임됐습니다. 당시 일각에서는 그가 외형적으로는 '매카시즘'에 의해 중도 탈락됐지만, 내용적으로는 '관료집단의 두터운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란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여기에서 굳이 김 전 장관의 교육철학이나 중도하차의 이유에 대해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장관 한 사람이 바뀐다고, 곧장 기존의 시스템이나 정책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교육의 체질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으려면 적어도 단명과 단신인 교육부 장관이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이 청와대와 내각을 아우르며 한 팀이 되어 국정을 운영하듯이, 교육부 장관도 그와 호흡이 맞는 '네트워크'와 '팀 워크'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기존의 관료집단으로 이런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이 어렵다면, 새 사람들과 팀을 이뤄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백 그라운드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머리와 팔·다리가 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언론에서 거론되는 교육부 장관 후보를 보면 '기존의 상식'에 적합한 인물들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리곤 합니다. 한편에서는 현 교육부에서 이미 '특정인 장관만들기'에 돌입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지난 1월초 서울대 교육학과 신년하례회 때는 이런 언론의 하마평을 근거로 '이번에도 우리 과 출신의 장관이 나오는 것 아니냐'며 분위기가 고조됐다는 소문도 돕니다.

어쨌든 간에 여러 개 가운데 무엇 하나를 고른다는 건 나머지 것들을 버린다는 것이겠지요. 교육부장관 한 사람을 고르는 것도 후보군에 속한 많은 '카드'를 버리는 과정일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잘된 인사를 한다는 것은, 과거 잘못된 인사 기준과 원칙을 버리는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선자께서 후보 시절, 역설적인 '뺄셈의 정치'를 이야기했듯이 말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