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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교육청은 설을 코앞에 둔 2003년 1월 30일, 2004학년도의 고입전형부터 내신성적과 선발고사를 병행하는 방법으로 실시한다고 기습적으로 발표하였다. 교육감 선거과정에서 약속한 교육주체간의 정책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전라남도교육청이 제시한 보도자료를 보면 전라남도교육청의 고입전형방법의 전환은 특별한 교육철학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단지 2000학년도부터 실시해온 내신성적에 의한 고입전형이 학습부진 학생 양산 등 학력저하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사교육비 절감효과나 학습방법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교육청은 내신성적에 의한 전형방법의 문제점을 한국교육개발원에 용역을 의뢰하여 연구한 결과 '△내신에 의한 선발이 기초학력 저하 심화 원인(성적 부풀리기 등) △학습의욕 저하 등으로 교실붕괴 현상 초래 △내신을 올리기 위한 방안으로 사교육비 부담이 오히려 증가됨 △동료학생간 비정상적인 경쟁을 격화시켜 인성교육에 악영향을 초래 등을 열거하고 종합의견으로 "전남의 고교 입학전형 방안은 무엇보다도 학생의 학력과 교사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내신과 선발고사를 병행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선 전라남도교육청이 말하는 내신성적에 의한 고입전형의 문제점 지적이 과연 논리적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검토해 보자.
내신에 의한 선발이 기초학력 저하 원인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대상 연구를 시계열에 의한 방법으로 사례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즉 여건이 비슷한 두 학생 집단을 비슷한 교육여건 하에서 내신성적에 의한 선발과 선발고사에 의한 방법으로 나누어 일정기간(적어도 5년 정도) 비교하여 연구해 보아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발고사를 주장하는 현임 교육감이 취임한 것은 채 1년이 되지 않았고 따라서 이 연구는 충분한 연구 기간을 갖지 못했다는 사례연구의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선발방법의 문제점은 여론조사로 파악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면 기초학력 저하의 문제는 왜 나타날까?
첫째, 전형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농어촌지역이 많은 전남의 인구이동에서 찾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일 것이다. 전출해 가는 학생들의 다수가 가정경제가 비교적 여유가 있거나 학력이 비교적 나은 학생들이라는 것은 농어촌 지역에 근무하는 교사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둘째, 학력저하 현상은 지난 5년여간 우리나라의 교육계를 강타한 이른바 '열린교육운동'에 있다. 열린교육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이 제도가 시행됨으로써 교사들은 연구·시범학교 운영을 하여 승진점수 따는데 바빴고, 아이들은 개념과 원리의 이해보다는 발표 위주의 학습을 한 결과, 발표는 활발하나 발표의 내용은 이해를 잘 못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셋째 이유는 잘못된 승진제도에 있다. 승진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교사는 아이들의 인성지도나 학력향상보다는 자신의 점수관리에 더 바쁘고, 이런 교사들이 아이들만 바라보고 교육하는 교사들보다 승진이 더 빠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넷째 이유는 각종 연구·시범학교의 운영이다. 연구·시범학교로 지정되면 교사들의 업무는 크게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마다 연구·시범학교를 유치하기 위하여 분주하다. 목적은 하나다. 연구·시범학교를 운영하는 관련 교사에게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학습의욕 저하 등으로 교실붕괴 현상이 초래되었다는데, 과연 그러한가? 교실붕괴라는 말은 한 때 일본에서 '학교붕괴'라는 말이 나돌았는데, 국내의 모 신문이 이를 원용하여 '교실붕괴'라는 말을 쓰자, 이 말이 비판 없이 전국적으로 전염되어 쓰인 말이다. 내신성적에 의한 고입전형이 이들이 말하는 교실붕괴의 원인이라는 것은 지극히 자의적인 판단이다. 또 학교붕괴니 교실붕괴니 하는 표현은 교육당국이 함부로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내신을 위한 방안으로 사교육비 부담이 오히려 증가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선발고사를 부활하면 오히려 교과 중심의 과외가 더 성할 것이라는 것이 더 분명한 사실이다.
내신성적에 의한 고입선발은 비정상적인 경쟁을 격화시켜 인성교육을 해친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말이다.
현행 내신성적은 교과성적, 출석, 특별활동, 봉사활동, 각종 수상실적 등 학생들의 다양한 학교활동을 두루 포함하고 있어서 인성교육에 더 바람직한 제도이다. 과거 선발고사를 치르다가 내신성적에 의한 전형으로 바꾸었던 전남의 시 지역 중학교에서 최근에 학생축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교과활동뿐만 아니라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서 얻는 것이 더 클 수도 있다. 또 선발고사를 부활하면 내신에 의한 전형을 할 때보다 오히려 동료학생간 경쟁이 더 격화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선발고사를 치르면 교사의 책무성이 강화된다고 하는데, 교사의 책무성이 입학전형방법에 따라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교사의 교육에 대한 책무성은 개별교사의 품성의 차이일 뿐이다.
다음으로 선발고사를 부활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을 알아보자.
첫째, 교과중심의 선발고사 부활은 정상적인 교육과정운영에 지장을 초래한다. 교과의 운영은 자연 선발고사의 예상문제 풀이에 맞추어 이루어질 것이다. 원리와 탐구중심의 학습보다는 문제풀이 중심의 학습이 주를 이룰 것이다. 또 선발고사 과목에서 제외된 교과의 학습은 소홀해지고 교과 외의 다양한 학생활동은 위축될 것이 자명하다.
눈앞의 고입시가 바쁜데 인성교육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잘 이루어질 리가 없다는 것은 현재 일반계 고등학교의 파행적인 학사운영을 보면 너무나 뻔한 일이다. 현재 일반계 고등학생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생활한다. 전에는 3학년만 그러하더니 우리 아들을 보니 최근에는 1학년부터 시작이다. 특기·적성교육은 보충수업으로 악용되는 것이 허다하고, 0교시 수업에다 새벽부터 심야까지의 강제적 자율학습, 학생활동의 제약 등 학사운영에 문제점이 허다하다.
둘째, 학부모의 사교육비가 증가될 것이다. 이른바 일류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하여 입시문제풀이 중심의 사교육에 의존하고자 하는 경향이 심해질 것이다.
셋째, 고입선발고사 부활은 초등학교 교육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과거 고입선발고사가 치러졌을 때 초등학교까지 과외열풍이 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중학교 입시, 고등학교 입시, 대학교 입시를 모두 치렀다. 그 아픈 기억을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반복하자는 것인가?
넷째, 동료학생간에 경쟁이 격화되어 바람직한 인성교육이 소홀해질 것이다. 학교가 갖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장점을 살리기 어려워진다. 이렇듯 선발고사에 의한 고입전형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경쟁을 격화시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한창 꿈을 가지고 성장해야 할 시기를 입시를 위한 경쟁 속에서 지내야 하는 고통으로 보낼 것이 자명하다.
다섯째, 교육주체간의 충분한 대화가 부족한 가운데 무리하게 밀어붙이기 식으로 선발고사를 실시할 때 나타날 교육주체간의 갈등은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도교육청이 이미 발표한 시책이라 할지라도 문제점이 나타난 이상 이를 수정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것은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시정할 줄 아는 진정한 용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전라남도교육감에게 요구한다. 합리적인 논리적 근거도 없고, 특별한 교육철학도 뒷받침하지 못한 채 많은 문제만을 드러낼 고입선발고사를 철회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난 1월 초 학부모, 교사,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갤럽에 의뢰하여 조사한 결과, 70%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을 보인 목포, 여수, 순천지역의 고교평준화를 즉각 실시하여야 한다. 당초 교육감은 찬성률이 2/3가 넘으면 평준화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전라남도교육청에서 2000학년도부터 시행한 내신성적에 의한 고입전형은 정착단계에 와 있다. 이제 여수, 목포, 순천 지역의 평준화까지 이루어지면 내신성적에 의한 고입전형은 완성되는 것이다. 애써 마련하여 이제 정착되고 있는 제도를 충분한 검토 없이 신임 교육감이 취임했다고 해서 기존의 시책들을 갑자기 바꾸려는 것은 교육적인 처사가 못된다. 책임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기존의 것을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기존의 것 중에서 좋은 것은 유지,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 교사들은 학생의 학습능력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또한 학력 못지 않게 학생의 인성교육을 중요시한다. 학생들의 학력향상을 목표로 삼는데 교육감과 교사들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문제의 원인 규명과 원인에 따른 처방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 차이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육철학의 차이이다. 교육감은 학생에게 드러나는 외면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그 인간의 내면을 깊이 헤아리는 성찰을 하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김옥태 기자는 전남 화순북면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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