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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몇년째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저에게 인터넷은 변화하는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열린 창문입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남북 정상회담 소식도 들을 수 있었고 월드컵의 함성도, 또 한편의 드라마 같았던 작년 대선 소식도 한국과 거의 같은 시간대에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인터넷 창문에 얼마 전부터 제법 낯설지 않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그저 상상으로만 가늠할 수 있는 액수가 함께 써 있기도 했고 간간히 걱정스럽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우려의 목소리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어제는 급기야 누군가가 그것 때문에 달려오는 열차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이 단어가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은 아무도 없을 거 같습니다. 바로 국민 한사람당 평균 3장 정도를 구입했다는 '로또'라는 것입니다.

이 로또는 제가 있는 이곳 독일에서도 어디서나 쉽게 살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처럼 가게 앞에서 열심히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전에 이웃에 살던 독일인 아저씨는 아예 로또를 정기주문해서 매주 집으로 로또가 우송되어 오기도 하더군요. 꽤 잘 짜여진 사회복지 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런 목돈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여하튼 사람은 어디나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로또 소식을 들으며 늘 생각만 하고 있다가 오늘 학교 가는 길에 있는 로또가게에 들렸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로또를 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로또를 사는지 주인이랑 이야기를 해보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한국의 로또 열풍을 설명하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이곳 상황을 물어보니까 이곳에서 로또는 그냥 누구나 가볍게 즐기는 재밋거리 정도라고 하더군요. 보통 한번에 10Euro 정도를 쓰는거 같다고 그랬구요. 10 Euro면 약 12000원인데 참고로 이야기드리면 이곳에서 한번 차를 타는데 2 Euro가 조금 더 듭니다.

▲ 로또가게에서 집어온 로또용지
ⓒ 강구섭
혹시 이곳에도 로또에 중독된 사람이 있거나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그런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고 아마 한국에 로또가 들어간지 얼마 안돼어서 그런 일이 생기는거 아니겠냐고, 조금 지나면 괜찮아 지지 않겠냐고 이야기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의 제법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저 역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상점을 나왔습니다.

로또 가게 주인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곳의 상황을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여하든 한국의 현재 상황이 보통이 아닌 것은 분명한 것 같고 작은 로또 용지가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작은 종이 조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에게도 로또는 아니지만 복권과 관련된 작은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 3학년때 활동을 하던 동아리에서 목돈이 좀 필요한 적이 있었습니다. 목돈이라야 사실 백만원 정도 였는데 –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요즘은 하도 억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서 꼭 그렇지도 않은거 같습니다 - 당시의 상황에서 그돈을 마련할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궁리를 하다 생각해 낸 것이 500원짜리 즉석 복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이전까지 복권을 사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복권 판매소 앞에서 열심히 복권을 긁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최대한의 경멸의 눈길을 던졌었구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처음으로 복권을 살때 적지 않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무슨 죄 짓는거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후딱 사서 얼른 주머니에 넣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한번 두번 즉석 복권을 샀었는데 가끔 500원에 당첨되기도 했고 드물게 천원에 당첨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5000원에 당첨되어 바꾸러 갔더니 복권판매소 아주머니도 ‚큰게 맞았네’ 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처다보면서 다시 복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종종 복권을 샀었는데 가장 높은 당첨액은 그 5000원 한번이었고 그 이외에는 좀처럼 천원짜리도 잘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복권을 긁는 일은 그 이후 얼마 가지 않아 끝났지만 그 작은 경험을 통해 저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한가지 이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사람은 어떤 가능성, 희망 같은 것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복권이라는 것이 당첨될 확률은 참 희박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 다는 그 가능성 – 어떻게 보면 비판의 소지도 없지는 않지만 – 그것이 의외로 삶에 적지 않은 활력이 되는거 같았습니다.

별로 사는 재미도 없고 삶의 비전도 보이지 않고 그래서 오토바이 폭주를 유일한 낙으로 즐긴다는 가스배달 청년의 이야기를 한참 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복권 한장이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아주 잠시 나마 자신의 꿈을 그려볼 수 있는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그렇게 비판만 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 작은 경험 이후로 저에게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는데 길에서 복권을 긁는 사람들을 더 이상 경멸의 눈으로 처다보지 않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 로또 숫자 고르는 법에 대한 간단한 설명(2월의 별자리를 이용해 숫자를 고르는 요령)
ⓒ 강구섭
전국에 로또 광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을 읽으면서 나의 부모 형제,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몇년 후면 내가 살아가야할 그 땅이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재미가 없는, 그다지 희망이 없는 곳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주 작은 재미로 로또를 사고 그냥 빙긋 웃으며 ‚꽝’이 되어버린 로또 용지를 처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작은 종이에 너무 커다란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무거워지구요.

아쉽게 당첨이 안된 사람은 아깝게 사라진 꿈을 생각하며 또 얼마나 안타까워 하며 그 빗나간 숫자 하나를 원망할까요. 차라리 '꽝'이 하나도 없는 그런 로또가 있어서 아무도 조마 조마 하지 않고 편안하게 숫자를 확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이란 작은 창을 통해서만 그 땅을 바라 볼 수 있는 제가 공연히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그저 기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참 기쁠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살아가는 희망이 넘치는 그래서 로또 쯤은 그저 작은 재밋거리가 되어 버리고 마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로또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가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요.

로또가 아니라 우리가, 내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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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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