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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식장 중앙에 태극기가 없다. 게릴라들에게 조국은 어디인가?
식장 중앙에 태극기가 없다. 게릴라들에게 조국은 어디인가? ⓒ 황종원
나는 오마이뉴스 창간 3년 기념식이 진행되는 1시간 동안 내내 비디오를 찍었다. 오마이뉴스의 사진기자와는 다른 시점에서 나는 나대로 찍었다. 나는 3년 전 2월22일 오후 2시를 기억을 하고 있다. 그날 그 시각을 시작으로 창간을 한다는 오마이뉴스의 광고를 보고 나는 재미있게 느껴졌었다. 날짜까지야 그렇다손 쳐도 시간까지 맞춰 말하는 그 자세는 마치 동화속의 소년처럼 순진하게 느껴졌었다.

나는 오연호 대표기자가 mbc 여성시대에 출연하여, 오마이뉴스 창간 전에 이러 저러한 인터넷 신문이라고 했을 때 느꼈던 열의로 오마이뉴스 창간 준비호의 게시판에 글 하나를 올렸었다. 게시판의 글이 나도 모르게 잉걸로 올라가고 부터 3년 동안 나는 줄곧 진정 나만의 오마이뉴스만을 써왔다.

접수대에 놓인 책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저자 자신말고 누구?
접수대에 놓인 책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저자 자신말고 누구? ⓒ 황종원
나의 오마이뉴스와 너의 뉴스가 어울리면서 이 시대의 큰 그림이 그려지리라. 내 믿음이었다. 나는 꾸며내는 이야기에는 약하다. 고지식하게 내 이야기를 쓰는 데는 익숙하다. 나의 이야기가 이 시대의 증언이기를 바라고 풍습이기를 바라며 진정한 야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기본적인 소양인 맞춤법과 띄어쓰기조차 서툴다. 그러면 아래한글의 도구에 들어가서 검색을 하며 틀린 글자를 고쳐 쓰는 말 그대로 글쓰기의 기초조치 되어 있지 않은 게릴라이다.

내게 오마이뉴스 상근기자에게서 열흘 전에 전화가 걸려 왔다. 3주년 행사에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기사로 만들어진 책을 전시도 하고 선전도 할 계획이 있다고 하였다. 15권을 보내 주면 책값도 온라인으로 송금도 시켜 주겠다는 말은 고마웠다.

내 책은 이제 인터넷이나 책방에서 구할 수 없다. 베스트 작가가 아닌 내 책이 서점의 서가에 아직 있을 리가 없다. 이제 내게도 몇 권 안 남은 책, 그 책을 다시 내 자력으로 만들려면 몇 백만 원이 들어 갈 책이었으나 오마이뉴스 공으로 세상에 나왔으니 몇 권을 보관용으로 내게 남기고 오마이뉴스에 보냈다.

내가 꿈꾸던 일은 3주년 식장에서 책의 저자를 한 군데 모아 놓고 인사라도 시키게 되면 한 마디를 할 궁리까지 하였다. 이런 말이었다.

" 조선 시대의 서민이 자기 생활에 대하여 남긴 말을 지금은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시대에 살던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 일을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저는 중단 없이 계속 써 갈 것입니다."

막상 식장에는 정·재계, 언론계의 기라성들이 상석을 차지하고 게릴라들은 게릴라처럼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런 행사를 많이 했을 행사장에는 태극기조차 걸려 있지 않으니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애국가도 없었다. 게릴라에게도 조국은 있는 법이다. 대구지하철 희생자에 대한 묵념이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 시대에 너무 얄팍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이왕 할 바에는 '순국선열과 대구 지하철 희생자에 대한 묵념'으로 하면 문제가 생겼을까.

나는 2002년 게릴라 기자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별도의 자리에 앉아 있고, 상장 받고 꽃다발을 받고 나와서 소감을 말하기까지 했다.
책을 낸 사람들에 대한 설명은 누가 무슨 책을 지었다는 말이 기총 소사처럼 숨 가쁘게 지나가니 나는 내 이름과 책 이름을 말하는 것을 얼핏 들었으니 다른 사람들 귀에 무슨 소리로 들리기나 했을까. 2002년 게릴라 기자들이 상 받을만 하지만 책을 낸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이 되었어야 했다.

인생에 책 한 권내기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얼마나 많은 글을 오마이뉴수에 쏟아냈던가. 출판사 사장들이 오마이뉴스를 보면서 책을 만들 때는 많은 망설임이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게릴라 기자들은 또 새로운 책들을 만들 것이다. 이미 책을 만든 사람들과 만들 사람과의 대화의 자리가 없었다. 가슴에는 명찰을 달고 있지만 아무나 잡고 이야기를 하기는 아주 불편한 입장이었다.

잔칫날이었으나 나는 외로웠다,
오마이뉴스에 어쩌다 드나들어 아는 상근기자와 묵은 이야기를 잠시 하니 할 말도 없었다. 식장 한 구석에 뷔페 음식이 있지만 나는 테이블 한쪽에 있는 빵으로 요기를 한다.

이들은 다 행복할까.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은 없을까. 해장국 하나 놓고 막걸리 한 잔하며 이야기 할 상대가 목마르게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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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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