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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넘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연 '전근대(前近代)'를 극복했는가? 나는 이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변할 자신이 없다. 과거에 비해서 우리의 생활은 하루가 다르게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과 각종 물질 문화의 발전으로 이미 첨단의 '디지털(digital)' 시대를 맞고 있다. 이에 반해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낡은' 관습과 봉건적 규범들이 그대로 온존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근대성의 지표는 물질 문화의 측면에서보다 의식(意識)의 측면에서 운위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의식과 규범적 질서는 아직 '근대(近代)'를 향한 계몽(啓蒙)의 도정(道程)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흔히 '근대(近代)'라 지칭한다. 근대 사회는 견고한 신분 질서 속에서 절대 군주의 명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곤 하던 '전근대(前近代)'와는 명확히 구별된다. 따라서 '합리적 사고'와 '주체(개인)의 발견'이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가장 뚜렷한 지표라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봉건(封建) 사회에서는 엄격한 신분제의 틀과, 국가 혹은 전제 군주로 상징되는 집단의 명분이나 일방적인 명령 앞에서 모든 개인의 권리는 아무런 제약 없이 유보될 수 있었다.
집단의 이념이 개인의 모든 것을 억압하던 봉건 사회의 면모는, 개인이 행동의 주체로 설 수 있는 근대 사회의 그것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물론 조선과 같은 봉건 사회에서도 유학(儒學)이라는 나름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이념적 틀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天)'과 동일시되었던 절대 왕권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가능한 '합리성'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체제에 반하는 행위는 '하늘을 거스르는(逆天)' 것으로 처단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절대 권력자의 행위조차도, 그것이 어떤 동기에서 발생했고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든 대체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어느 사회, 어느 국가이던지 근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희생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러한 의식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봉건적 구호가 통용되는 학교와 '상명하복(上命下服)'이 절대적인 진리인양 인식되는 군대 사회는 비민주적 요소를 지닌 가장 대표적인 현장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군대와 교육은 '신성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현실과 의식의 괴리에서 빚어지는 비합리적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가 바라본 한국 사회의 초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우리들의 대한민국>은 우리 주변에 온존하고 있는 의식과 규범의 '전근대성'을 적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귀화인의 시각으로 대학과 군대, 그리고 역사를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시선은 여전히 불합리한 측면이 온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필치로 펼쳐내는 저자의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은 책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방인의 눈을 가졌으나 가슴은 한국인'인 저자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깊이 자각할 수 있었다.
박노자는 구 소련 출신으로서 한국으로 귀화하여 1999년 2월에 한국인이 되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영화 <춘향전>을 보고 한국을 접하게 된 그는 대학에서 조선역사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3개월의 짧은 유학 생활을 통해 접해본 한국 생활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이 시절의 '행복한 경험'은 그를 다시 한국 대학의 교수로 이끌었고, 한국인 아내와의 결혼에 이어 한국인으로 귀화하게 된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다시 노르웨이의 오슬로대학 한국학 교수로 부임하기까지의 과정을 책의 서문이라 할 수 있는 '짧고도 긴 한국과의 만남'이라는 글에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의 신문과 잡지에 왕성하게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의 시선은 아직도 전근대를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등의 '소수자(minority)'에게 큰 관심을 보내고 있다. '아직도 감옥에 있는 모든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는 그의 시선의 방향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종교적·양심적 이유에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믿는다. 오히려 일상 생활에서 견고하게 관철되고 있는 비합리적인 '군대식 문화'가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대학 사회에서도 아무런 비판없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을 질책하고 있다. 늘상 '우리'를 외치면서도 외국인 동포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이율배반적 민족의식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1부는 '한국사회의 초상'이다. 역사학자인 저자에게 독재자인 박정희를 존경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현상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긴 그러한 현상이 나조차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현대성'을 바라보는 저자의 눈은 세종로에 세워진 이순신 동상으로 향한다. 일본의 오무라 동상과 연관시켜 그것을 박정희가 추종하는 군국주의적 코드로 읽어내면서, 북한의 거대한 김일성 동상이 지닌 의미와 연관시키고 있다. 도덕성 유무와는 무관하게 일방적 충성을 강요하는 남한과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아주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친구조차도 철저히 거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대학생, 조선족 등의 동포에게 가해지는 일상적 차별, 만인에게 군림하는 사립대학의 '오너'들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목도한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인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밖에도 스스로의 뿌리를 부정하는 영어 공용화론의 문제, 독신적(瀆神的) 행위가 지배하는 대학 선교 모임의 행태, 군대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의식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역사학자답게 저자는 역사적 사실과 그것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열거하면서, 현재적 관심에서 역사를 바라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제목의 2부는 우리나라 대학 사회의 비합리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공적이고 평등한 동료 지식인의 관계여야 할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상명하달의 원칙이 엄격한 사적인 추종의 관계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특히 조교를 마구 부리는 교수에 관한 일화와, 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면서도 '상아탑의 노예'로 전락한 시간강사의 문제는 그 과정을 직접 경험한 나에게 아픈 각성의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또한 교주(校主) 중심의 봉건적인 사립대학의 운영체제와 그에 따르는 구조적 비리의 실상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다.' 이 말은 그 실상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믿고있는 '명제'이다. 그리하여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얼마나 우월한 민족인가를 반복적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단일 민족'이라는 사실과 타민족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이 과연 일치할 수 있는가? 3부인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에서는 우리의 인식 속에 암묵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민족주의의 허구성에 대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민족의식과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속에는 개인의 존엄성은 어느덧 사라지고 만다. 즉 민족을 위해서는 개인의 가치는 무시되고 만다는 전근대적인 관점이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우리'라는 의식을 강조하면서도, 중국 동포에 대해서는 지극히 배타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를 목도하곤 한다. 따라서 '한국적 민족주의'라는 것은 오히려 개인의 존엄성보다는 국가의 안전을 내세우는 '국가주의'라고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이 책의 4부는 교수 출신의 몽골인이 이 땅에 불법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종주의와 대한민국'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가혹한 환경과 배타적인 시선을 인종주의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서구에 대한 동경과 그들의 문화를 추종하면서도, 제3세계에 대해서는 멸시적인 시선으로 대하는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인 셈이다. 저자는 이러한 의식이 19세기 말엽의 애국계몽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각종 기록을 통해서 확인하고 있다.
박노자의 글을 읽다보면, 나 자신도 어떤 측면에서는 아직 전근대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느끼게 된다. 평등한 인간 관계와 합리적 사고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간혹 관념과 실제가 어긋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봉건적 관념이 지배담론으로 자리잡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현실 탓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이처럼 체화(體化)된 무의식적 사고 때문에 전근대적인 요소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문득문득 자신을 돌아보면서 의식적으로 전근대적인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아울러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는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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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한겨레출판(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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