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현암사에서 바라본 청남대. 원안에 있는 흐릿한 건물이 청남대 내부 경비병들이 묵는 숙소. 건물 뒷쪽으로 청남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암사에서 바라본 청남대. 원안에 있는 흐릿한 건물이 청남대 내부 경비병들이 묵는 숙소. 건물 뒷쪽으로 청남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기동
그러나 청남대 개방 소식에도 불구하고 아직 청남대는 일반인들에게는 더 이상의 진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개방 검토 지시가 내려진 마지막 남은 지방청와대 청남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채 "더 이상 출입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표지판과 함께 굳게 잠긴 철문만이 고압적인 자세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대부분 방문객들은 대청호반의 빼어난 경치와 어우러져 잘 정돈된 청남대 진입로를 따라 들어오다 갑자기 맞닥뜨린 2중, 3중의 바리케이드와 굳게 잠긴 철문을 보곤 황급히 차를 돌려 빠져나갔다.

일부 시민들의 경우 애써 찾아온 청남대를 직접 확인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듯 차에서 내려 닫힌 철문을 멀리서 바라보며 주변을 서성이다 이내 차를 돌려 사라졌다.

"개방 안할 이유가 없죠. 권위주의의 산물이고 당연히 개방 돼야 합니다."

지난 86년 군복무 기간 중 장교로 청남대 외곽 경비를 서기도 했다는 한 시민은 "청남대가 개방된다고 해 옛날 기억도 나고 해서 찾았다"며 청남대 개방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당시가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는데 대통령 아들이 유학 갔다 귀국해 친구들과 연예인들을 청남대로 데리고 온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도 경비병들은 대통령이 내려올 때처럼 똑같이 경비를 서야 했다"며 "당시 지역 주민들은 성묘를 가기 위해서도 사전에 허가를 받고 경비병이 따라 붙어야 근처라도 올 수 있었는데 왜 그래야 하냐"며 청남대 개방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인근 대전에서 청남대가 개방된다는 소식을 듣고 주말 오후를 짬을 내 부인 김복순(47) 씨와 청남대를 찾은 정영순(47) 씨는 "청남대가 개방됐다고 해서 왔는데 아직 안됐네"라며 아쉬운 감정을 내비쳤다. 정씨는 "개방이 된다면 하루빨리 됐으면 좋겠다"며 "청남대를 현 상태로 그대로 놔두고 역대 대통령 박물관을 만들어 활용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며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민관광단지 부푼 꿈, 대통령 말 한마디에 사라져

마지막 남은 지방청와대 '청남대'

지난 1983년 12월 만들어져 전두환 대통령을 시작으로 최근 퇴임한 김대중 대통령까지 4명의 대통령이 전용 별장으로 사용해온 청남대는 마지막 남은 '지방 청와대'로 불린다.

충북 문의면 신대리 대청호변에 위치한 청남대는 지난 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당시 7곳에 이르던 '지방청와대'를 개방 방침에 따라 나머지는 모두 개방됐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지방청와대'이다.

현재까지 청남대의 구체적인 규모나 시설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지역주민과 일부 언론의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약 30만평-50만평 규모로 대통령 전용 별장 시설과 간이 골프연습장, 낚시터 등이 조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쪽의 청와대'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들이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구상을 주로 하는 곳으로 알져지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이 청남대를 이용하는 기간은 일년에 많아야 서너 차례, 채 20일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전용 시설인 만큼 청남대의 경비는 철통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남대 내부를 경비하는 부대가 따로 배치돼 있고, 이와는 별도로 인근 공수부대 4개 대대가 1개 대대씩 교대로 청남대 외곽을 경비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남대 접근은 인근 지역 주민들조차 허가를 받아야만 성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통제됐지만 김영삼 정부시절 1검문소의 출입이 허용돼 아직 개방되지 않은 2검문소 앞까지는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하다. 현재 이 지역은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최근 2-3년 전부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이기동 기자
청남대 개방 소식이 알려지자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지난 20여년 간 청남대로 인해 고통을 받아온 인근 문의면 지역 주민들이다.

문의면 지역 주민들은 노 대통령의 청남대 개방 검토 지시가 내려진 다음날인 7일 약 500여명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돼지도 잡아가며 대규모 환영대회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높아지고 있는 청남대 개방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는 달리 누구보다 청남대 개방을 원했던 인근 문의면 주민들은 청남대 개방 소식을 접하고서도 정작 깊은 시름에 잠겼다.

지난 20여 년 동안 수몰민이라는 설움도 모자라 대통령 한 명만을 위해 존재하는 '청남대' 인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규제와 제약을 받아왔던 주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청남대 개방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는 믿지만 실제 청남대 개방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속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문의 지역주민들이 청남대 개방을 환영하면서도 여전히 기대만큼이나 걱정이 앞서는 것은 그 만큼 청남대에 대한 애증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초만 해도 문의면 주민들은 당시 대청호 개발계획에 따라 문의면 지역이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면서 전국에서 제일가는 호반도시로 탈바꿈될 것이라는 부푼 기대 속에 이주보상금에 빚까지 내 지금의 미천리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국민관광단지의 미관을 해칠 수 있다며 대로변의 집들은 2층으로 짓도록 유도했고, 심지어 골목의 건물까지 페인트 색깔을 지정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80년 말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이 지금 청남대가 위치한 신대리 지역에 대통령 휴양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에 주민들의 부푼 꿈은 일순 허물어지고 말았다. 주민들도 모른 채 들어선 청남대는 이후 지역 주민들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옥쇄가 돼 각종 규제와 통제로 20년 전 개발 당시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개방 검토 지시가 내려진 마지막 남은 지방청와대 ‘청남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채 “더 이상 출입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표지판과 함께 굳게 잠긴 철문만이 고압적인 자세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개방 검토 지시가 내려진 마지막 남은 지방청와대 ‘청남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채 “더 이상 출입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표지판과 함께 굳게 잠긴 철문만이 고압적인 자세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 이기동
문의면 개발대책위원회 이찬희 위원장은 "당시 정종택 의원이 출마하면서 이 지역 사람들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앞으로 공무원연수원(현 청남대)이 들어서 사람들도 많이 찾게 되면 문의도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며 "그러나 당시 짓겠다고 하던 공무원연수원은 들어오지 않고 청남대가 들어서게 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통령 별장이라고 하더라"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위원장은 "청남대 얘기만 나와도 골머리가 아프다. 아주 원수처럼 생각해 왔다"며 청남대로 인한 길고 긴 악연을 설명했다.

대청댐 수몰민으로 이주보상금을 받아 20여년째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이문갑(67. 여) 씨는 "청남대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배도 뜨고 낚시꾼들도 많이 와서 장사도 잘 됐지만 청남대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살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며 "자식들도 더 이상 이곳에서 살수 없어서 다 떠나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보상금 받아 외지로 나갔다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텐데 여기 정착한 사람들만 정말 힘들게 살고 있다"며 "바로 건너편 오리집은 2천만원이나 들여 내부 공사까지 했지만 불과 3~4개월 장사하다 안돼서 작년에 내놨는데 아직까지 들어오려는 사람이 나서질 않고 있다"며 위축될 대로 위축된 지역 상황을 전했다.

실제 당시 주민들의 이주보상비와 빚으로 세워진 미천리는 현재 각종 규제로 인해 개발이 답보상태에 머물면서 상가로 지어진 주민들의 건물 곳곳은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굳게 문이 닫힌 채 방치돼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대청호반을 끼고 있어 최근 들어 인근 대전과 청주 지역에 드라이브 코스로도 소문이 나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차량만이 오갈 뿐 주말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미천리를 찾는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기대 반 우려 반, 이제 주민들도 살게 해달라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역주민들은 그 동안 피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청남대 개방과 더불어 지역주민들의 생활고를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규제 완화와 지역개발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청남대 개방에 앞서 그 동안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먼저 반영해 향후 활용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청남대 개방 검토 지시가 내려진 후 찾은 문의면. 청남대가 들어선 이후 이주보상비와 빚까지 얻어 지은 도로변 건물 곳곳이 자물쇠로 굳게 잠긴채 청남대 개방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만이 한적한 거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청남대 개방 검토 지시가 내려진 후 찾은 문의면. 청남대가 들어선 이후 이주보상비와 빚까지 얻어 지은 도로변 건물 곳곳이 자물쇠로 굳게 잠긴채 청남대 개방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만이 한적한 거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이기동
미천리 파출소 옆에서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이종희(46. 남)씨는 "도지사가 청남대를 관광지와 영빈관 등으로 사용한다고 하는데 권력자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지난 23년 동안 지역주민들이 피해만 보고 살아왔는데 개방 못하면 진짜 안 된다"며 청남대 개방에 따른 시너시 효과가 문의 지역에 미치기를 바라고 있었다.

김홍기 문의번영회장은 "23년 동안 상수도보호구역으로 묶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상수도보호구역 안에서도 할 수 있는 부분을 정부에서 지원해 주면 되는데 그것을 안 해주고 있다"며 "2년 전 청원군에서 만들어 국무조정실에 제출된 문의종합개발계획이라도 우선적으로 시행해 달라"고 호소했다.

지역 시민단체 역시 과거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청남대 개방에 환영하면서도 청남대 소유권 자체를 주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충북시민사회연대회의는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청남대는 과거 권위주의적인 박정희 독재권력의 상징이자, 지역주민에게는 각종 규제와 불이익을 주는 상징적인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며 "청남대의 단순한 개방 차원이 아니라 지역주민이 실질적으로 이용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시설로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사무국장은 "청남대를 철폐하고 주민들에게 되돌려 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어떤 시설이나 용도로 쓰자는 것을 지금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관리권과 소유권을 도로 이전 받고 그 동안 불편을 겪었던 지역주민들과 도민의 입장을 수렴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의개발대책위원으로 활동해온 이민수(55세, 남)씨는 "자칫 기대가 큰 만큼 더 실망을 줄지도 모르겠다"며 "문의 주민들은 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의 설움과 청남대로 인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대청댐과 청남대, 문의주민이 같이 살수 있는 공존공생관계가 유지된다면 청남대 폐지를 굳이 주장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청남대 개방만으론 모든 문제 해결안돼
지역주민들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줘야"
[인터뷰] 이찬희 문의면 개발대책위원장

▲ 이찬희 문의개발대책위원장
ⓒ이기동
지난 6일 노무현 대통령의 청남대 개방 검토 지시가 내려진 후 그 동안 문의면 개발대책위원장을 맡아 청남대 철폐 등을 요구했던 이찬희 씨는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만 하더라도 노 후보의 청남대 개방 공약에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정작 개방이 기정사실로 다가온 지금 과연 청남대 개방이 그 동안 소외됐던 문의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기대섞인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이찬희 위원장은 청남대 개방 소식에 대해 "환영한다"면서도 청남대 개방 효과가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청남대가 개방되다 하더라도 관광객을 개별적으로 출입시킨다면 오히려 지역의 환경파괴와 함께 그 동안 소외 받은 지역주민들을 또 한번 소외시키는 것"이라며 "관광객들이 문의면에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문의면 지역을 관광단지로 조성하고 문의에서 청남대까지 셔틀버스와 유람선을 운행하는 등 청남대 개방과 함께 지역주민이 함께 살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8일 이찬희 문의면 개발대책위원장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 6일 노 대통령이 청남대 개방 검토 지시를 내렸는데 소감은?
"사실 선거기간 중에는 반신반의 했다. 지금까지 23년 간 속아 왔기 때문에 그 양반(노 대통령)이 된다해도 약속을 지키겠나 싶었다. 그러나 6일 청남대 개방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연락을 받고는 꿈인가 생신가 싶었다."

- 청남대가 들어선 이후 주민들의 피해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청댐을 만들고 수몰되면서 박 대통령이 문의면을 전국 제일의 관광단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간선도로변 상가는 2층으로 올리라고 하고 골목에 지은 집들까지 페이트 색깔까지 지정해 줄 정도였다.

실제 문의면은 국민광광휴양지로 지정 돼 유람선이 2척이나 있었고 마을주민들이 보트를 20여대를 사는 등 주민들이 보상비에 빚까지 내서 상가를 짓는 등 기대를 많이 했었다. 당시 정종택 의원이 출마하면서 이 지역 사람들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앞으로 공무원연수원(현 청남대)이 들어서 사람들도 많이 찾게 되면 문의도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옥천 장계리까지 운항하던 유람선이 3개월 만에 갑자기 취소됐다. 당시 짓겠다고 하던 공무원연수원은 들어오지 않고 청남대가 들어서게 됐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통령 별장이라고 하더라. 그 뒤 국민관광단지도 취소되고 유람선도 취소돼 지역 주민들이 허탈해 했다. 유람선이 폐지되는 바람에 상가가 완전히 죽었다. 그 뒤 20여년 동안 주민들은 각종 규제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

- 사전에 청남대가 들어선다는 설명이라도 없었나.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했다. 말로는 상수도보호구역이라 국민관광단지가 안 된다는 이야기만 있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불만이 있어도 함부로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됐다."

- 청남대에 대한 애증이 많은 것 같다.
"청남대 얘기만 나와도 골머리가 아프다. 말도 마라. 아주 원수처럼 생각해 왔다."

- 문의면 주민들이 주민대책위를 구성해 정부에 지속적으로 항의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민대책위는 95년에 만들어져 지금 9년 정도 됐다. 86년에도 주민들이 시위를 했는데 그때 정부에서 10억원의 장학금을 내려 준 것이 주민들에게 해준 것의 전부이다. 95년 주민대책위를 구성 후 청남대 철폐와 취수탑이전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정부에서는 포도, 배, 표고버섯 등 작목반을 만들며 지원해 준게 전부였다. 실질적으로 문의면 주민들을 위해 정부가 해준 것이 거의 없다."

- 앞으로 청남대가 어떻게 활용됐으면 좋겠나.
"청남대 개방만으로는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갖가지 규제로 인해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청남대가 개방되다 하더라도 관광객을 개별적으로 출입시킨다면 오히려 지역의 환경파괴와 함께 그 동안 소외 받은 지역주민들을 또 한번 소외시키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문의면에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문의면 지역을 관광단지로 조성하고 문의에서 청남대까지 셔틀버스와 유람선을 운행하는 등 청남대 개방과 함께 지역주민이 함께 살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 일부에서는 청남대를 개방하고 대통령 휴가 때에는 대통령이 사용하는 방법도 제안하고 있는데.
"그 동안 피해 받은 주민들을 배려하고 그렇게 쓴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에게 환영받는 대통령이 와서 쓴다면 지역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영해 줄 것이다." / 이기동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전충남 민언련 매체감시 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