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이 넘도록 무대를 지켜 온 배우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관객으로서 흔치 않은 행운이다. 체력의 한계와 기억력의 감퇴로 조로 현상이 심한 연극계에서 40년이 넘도록 무대를 지킨 배우도 별로 없을뿐더러 노배우의 원숙함이 묻어나는 연기는 그 자체가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권성덕씨의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는 소중하고 박수 받을 만한 무대이다. 60년대 초 연극을 시작한 그는 70년대 초부터 20여년간 국립극단의 배우였고 94년에는 국립극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현재는 국립극단을 나와 후배들이 만드는 무대에서 여전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는 그가 작년에 수상한 '이해랑연극상'의 기념공연으로 기획되었다. 이번 작품은 그의 대학 은사이신 이근삼 선생이 쓴 희곡에 대학 후배인 중앙대 고승길 교수가 연출을 맡았다.
악극단 출신 노배우의 말년을 쓸쓸하게 그린 이 작품은 국립극단에서 오랫동안 같이 무대에 섰던 오영수씨가 친구역으로 출연해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3월 14일 오후,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가 공연되는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40년이 넘도록 연극무대를 지킨 연극배우 권성덕씨와 인터뷰했다.
-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는 어떤 연극이고 맡으신 배역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 작품은 해방이후 오늘까지 한 악극단 출신의 배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파 배우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청년기에 데뷔해서 6.25를 지나고, 사회 냉대를 이겨내면서 오늘날까지 살아온 악극단 출신 배우의 슬프고, 서러운 인생이야기이다.
내가 맡은 역은 서러운 인생, 슬픈 인생을 살아온 신파 배우 서일(徐一)역이다. 무대에서 인물의 나이는 68인데 내 실제 나이는 64이다. 4살 차이가 난다. 그 만큼의 인생은 살지 못했지만 한 배우로서 사회의 냉대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온 또 다른 배우의 인생을 표현한다."
- 이번 공연이 작년에 수상하신 '이해랑 연극상'의 수상 기념 공연이다. 이 작품을 기념 공연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초연 때 윤주상씨가 공연하는 것을 보았다. 이 작품은 우리 창작극중에서 중요한 작품이고 배역도 재미있다. '나도 기회 있으면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작가(이근삼)가 대학 은사라 더 큰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마침 연출을 맡은 고승길 교수가 내 뜻에 동조를 했다. 고승길 교수도 이근삼 선생님의 제자이다. 60이 넘은 두 제자가 선생님 작품을 무대에 올리게 됐다."
- 작품 속 '서일'은 국립극단장을 지낸 선생님의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다. 이 공연을 하면서 모델이 되거나 기억나는 선배, 동료들이 있다면?
"특별한 모델은 없다. 우리 세대보다 한참 먼저 살았던 세대들, 제가 젊었을 때 선생님으로 모시고 따랐던 그런 분들이 몇 분 계셨다. 지금은 다 돌아가셨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그 선생님들 생각이 났다. 예를 들면 고설봉 선생님이라던가 강계식 선생님, 이기용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다. 이 분들은 악극단 출신이면서도 현대극을 겸해서 했다. 현대극부터 시작한 분들께 괄시받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 베테랑 연기자들의 호흡이 잘 맞는다. 특히 오영수씨와 함께 하는 장면은 극을 활력 있게 만들어 준다.
"오영수씨와는 국립극단에서 같이 있었고 국립극단 이전부터도 같이했다. 서로 경륜이 있어서 말 없이도 잘 통한다. 그래서 호흡이 잘 맞은 것 같다. 작품 속 우정을 그려내는데 오영수씨가 잘 해주셔서 저에게 큰 힘이 됐다."
- 연극배우로서 무대에 서신지 40년 정도 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공연이 배우로서 중간결산의 의미를 지니는데 그 동안 해오셨던 많은 작품 중 스스로 어떤 작품을 대표작이라 뽑을 수 있는가?
"대표작을 꼽으면 뒤렌마트의 <로물루스 대제>, 괴테의 <파우스트>,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들에서 독특한 성격의 주인공을 했다.
그런데 이번 역이 그 역보다 더 힘들다. 극장도 작고, 시작과 동시에 등장해서 극이 끝날때까지 무대위에 있어야 한다. 소극장 무대에서도 공연을 했었지만 원래 대극장 무대에서 소리를 힘차게 지르는 연기를 주로 했었다. 그러다 관객이 코앞에서 쳐다보니까 겁도 나고 힘들다."
- 대학로 연극인들이 대부분 후배들일텐데 후배들에게 한마디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면?
"요새는 다들 영악하고 잘한다. 그러나 한마디하면 '작은 역에도 충실하라'는 것이다. 작은 역이라고 해서 깔보면 안 된다. 매사가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연극도 작은 배역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욕심부리지 말라. 무대 위에서 내 것만 갖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갖은 모든 것을 풀어놓아라. 상대방이 가져가게끔. 그러면 상대방도 풀어놓는다. 난 풀어놓은 것을 줍기만 하면 된다. 미리부터 주머니에 있는 것 뺏으려고만 하지 말라."
- 극을 아직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자기 공연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게는 말못하겠다.
배우의 이야기이면서도 노년을 살아가는 인생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노년에 접어들면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노년의 우수랄까. 대학로에 와서 인생을 한번 곱씹어 볼 연극을 선택한다면 이 연극을 선택한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공연정보>
공 연 명 :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공연기간 : 3. 12 ~ 3. 30
공연장소 :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문의전화 : 02-762-4604